최근 어느 날 아침에 출근했더니 같이 일하는 사회복지사가 다급하게 얘기한다. “실버(별명) 님이 오늘 아침 7시도 안 되어 나갔어요. 제가 한참을 쫓아가며 이 시간에 나가는 건 위험하다고 말렸는데도 그냥 가버렸어요. 어쩌죠? 날도 추운데 옷도 얇게 입고 나갔어요. 경찰에 알려야 할까요?”
일시 보호시설은 거주 시설이 아니고 노숙 위기를 맞았을 때 찾아오는 이용 시설인데 경찰에 뭐라고 알릴 수 있겠는가. 시설을 이용하러 왔던 분이 갔어요, 할 수도 없고, 가출신고를 할 수도 없고, 참 난감한 일이다. 사회복지사를 뿌리치고 새벽같이 나간 그 여성분은 전날에도 시설을 나갔다가 당일 새벽 1시가 넘어 경찰이 모시고 왔었다. 새벽에 시설 인근 보건소 앞에 서 있는 여성을 발견한 어떤 시민이 경찰에 연락해 함께 왔었다. 그런데 들어온 지 몇 시간 만에 다시 나간 것이다.
짐작하겠지만, 거리에서 지내는 건 매우 고단하고 위험한 일이다. 잠자는 것부터 그렇다. 조용한 자리가 아니면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말소리 때문에 잠들기 힘들고 숙면을 취하기는 더욱 어렵다. 위치에 따라서는 시설물 관리인이 잠자리를 치우라 하는 통에 바닥에서 올라오는 찬 기운을 막아주는 박스를 정리해야 하는 때도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선 채로 밤을 지새우고 낮에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꾸벅꾸벅 졸면서 모자란 잠을 보충한다. 햇빛이 비치는 광장에서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누워 잠들어버리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으니 기온 변화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다. 여름엔 비가 와 축축할 때가 많고 모기 같은 벌레에 물려서 힘들다. 여름에 거리 생활을 하는 분들은 온몸에 벌레에 물린 자국이 붉고 검게 나 있는 일이 흔하다. 날이 차가워지면 추위를 견디기 힘들뿐더러 위험하다. 거리 생활로 몸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는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에 사망 사고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기온이 영하 10 ℃ 이하로 떨어지는 한겨울을 거리에서 나야 한다면 위험한 사고는 언제든 생길 수 있다.
여성은 가정할 수 있는 거리 생활의 애로와 위험 요소가 남성에 비해 훨씬 더 크다. 겨울마다 아웃리치 활동가들 눈에 띄어 일시 보호시설을 찾았던 수선화(별명) 님. 그녀는 거리에서 지낼 때 힘들었던 점이 뭐냐고 묻자 잠깐 생각하더니 씻는 거였다고 답했다. 먹는 건 급식소를 찾아가기도 하고 자원봉사자나 기관에서 나눠 주는 빵이나 우유로 때워도 되는데, 씻는 건 쉽지 않았단다. 보통은 공중화장실에서 씻는데 사람들이 들어올까 봐 눈치가 보이고 조심스러워 제대로 씻을 수도 없는 터라 생리를 할 때는 위생 관리가 더욱 힘들었다고도 했다. 노숙한 지 10년이 넘은 또 다른 여성 순이(가명) 님은 “아무래도 술 먹고 싸우고 하는 사람들이 무섭지.” 한다. 밤에 술에 취해서 소리 지르고 난동을 피우는 사람들이 많고 여자 혼자 있으면 자꾸 와서 같이 술 마시자고 치근대서 아주 귀찮고 힘들었단다. 그럴 때 어떻게 했느냐니까 “그럼 나도 막 악쓰면서 욕하지. 그래야 저리 가버리고 귀찮게 하지 않으니까.”라고 했다.
십 수 년 동안 수없이 많은 홈리스 상황의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지금도 가끔 같이 활동하는 사회복지사들과 이야기하곤 한다. 도대체 그이들은 어떻게 그렇게 춥고 더운 걸 견디면서, 불편과 불안과 위험을 감내하면서 거리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느냐고. 어떤 사람들은 이골이 나서, 어떤 사람들은 자존심 때문에, 또 어떤 사람들은 다른 원하는 선택지가 없어서... 뭐, 다양한 이유와 사정이 있겠지만 말이다.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고 도울 방법을 찾기 위해선 적극적으로 만나는 수밖에 없다. 우리를 찾아오기만 기다릴 수는 없어서 찾아가서 만나려고 노력한다. 노숙 현장으로 찾아가 만나서 상담한 뒤 필요한 지원을 연계하는 아웃리치 활동은 지원 영역으로 들어오지 못한 홈리스들을 돕는 주요한 활동 중 하나다. 특히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탈진과 사망 위험이 높은 때, 겨울철 기온이 급강하해 동사 위험이 커질 때는 찾아가는 활동이 더욱 필요하다.
이맘때인 11월 중순이 되면 정부에서 홈리스 등의 특별보호 정책도 발표한다. 특별보호 정책에 따른 활동 지침으로 노숙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어떻게 발견하고, 어떻게 응급조치를 취하고, 어떻게 보호할지 아주 세부적인 내용을 공유한다. 활동의 초점은 당연히 찾아가는 아웃리치를 강화하는 것이다. 거리 생활을 하는 홈리스들이 많이 발견되는 주요 노숙 지역을 순회하면서 잘 곳을 연계해주기를 원하면 시설을 안내하고, 시설에 갈 의사가 없다며 겨울밤을 무사히 날 수 있도록 겨울 점퍼나 내복, 담요 같은 겨울나기 물품을 나눠 준다. 따뜻한 물을 페트병에 담아 전달하기도 하고 차나 커피를 줄 때도 있다. 요즘처럼 코로나19로 인한 감염병의 위험이 큰 때에는 마스크를 나눠 주고 잘 쓰고 있는지, 또 백신 접종에 대해 알고 있는지 확인하고 의료 시설에 연계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활동이다. 어쨌든 거리보다는 조금이라도 환경이 나은 다른 지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선택을 도와야 하지만, 본인들이 원치 않는 경우에는 거리 현장에서라도 생명을 보존할 수 있도록 돕지 않을 수 없다.
실버 님은 그날 어찌 되었을까. 그녀는 그날도 경찰에게 발견되었고, 쉽게 설득되어 일시 보호시설로 돌아왔다. 도대체 왜 매일 반복되는 행동으로 그리 애를 태우는지 야속하고 피곤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러나 어찌 되었든 분명한 건 다행이라는 사실이었다. 실버 님은 올해 초, 겨울 한파가 닥친 거리에서 해당 지역 아웃리치 활동가에게 발견되어 몇 달에 걸친 끈질긴 설득 끝에 우리 시설로 연계된 분이다. 당시 실버 님과 동행한 아웃리치 활동가는 그 과정이 기적처럼 느껴진다며 흥분했었고, 이후 가끔 실버 님의 안부를 묻는 전화를 했다. 거리로 돌아가지 않고 시설에 잘 있다고 하면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다. 반면 우리 사회복지사들은 한두 달 머무를 수 있는 일시 보호시설을 아직 떠나지 못하고 다른 대안을 찾기 힘든 실버 님이 늘 걱정거리였던 터라 함께 기뻐하지 못했었다.
더구나 그녀는 시설에서도 거리에서 지낼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여 도무지 변화가 없다고 생각될 때도 많았다. 거리에서 지낼 때처럼 잘 씻지 않거나 샤워를 하더라도 물만 끼얹고 나오곤 해 그녀의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같은 방을 쓰기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다른 이용인도 많았다. 길거리에서 담배꽁초를 주워 피운다는 지역 주민의 민원도 있었고, 몇 달을 구멍 난 티셔츠와 반바지로 버티며 동네를 산책해 이상하게 바라보는 눈초리를 목격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그녀는 거리에 머물지 않고 시설로 돌아왔다. 경찰의 손에 이끌려서라도 거리가 아니라 안전한 울타리가 있는 시설을 찾으니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지난겨울을 거리에서 버틴 걸 생각하면 다시 안 올 거라 포기할 뻔했는데, 몇 달을 설득해도 거리를 떠나지 않는 홈리스 여성들도 있는데, 얼마나 다행인가. 오죽하면 실버 님과 한 방을 쓰기 싫다고, 같이 지내기 너무 힘들다고 불만을 제기하던 다른 홈리스 여성들도 “실버 님 찾았다며요?” 하며 반가움을 표한다. 속단할 수는 없지만 실버 님의 이번 겨울나기는 지난겨울보다는 덜 힘겨울 것 같으니 참 다행이다.
글. 김진미
여성 홈리스 일시 보호시설 '디딤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