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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an 11. 2022

사업하는 인문학, 걱정 마 길은 반드시 있어

경험이 많지 않은 조교수가 감히 연구 용역 사업에 대하여 말을 하는 것이 다소 조심스럽지만, 신입생 충원율과 관련하여 연일 보도되고 있는 문과대학의 위기 앞에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듯하여 기사화되고 있는 인문학의 얼굴 외에 또 다른 면모들이 있음을 전하고자 한다.


연구 사업의 심장보조연구원


처음으로 연구 용역 사업을 경험한 것은 아득한 석사 시절의 일이다. 그때에도 지금만큼은 아니었으나 돈의 운용과 거리가 있는 인문학 전공들이 곧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경고들이 범람했다. 대규모 랩실로 운영되는 이공계 대학원과 달리 국문과 대학원의 연구실이란 사전과 언어 관련 자료들, 먼지 앉은 국어학 서적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그중에는 정말 입학과 동시에 졸업을 할 때까지 전업 박사로 개인 연구에만 몰두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간간이 아르바이트나 단기 직장을 병행하며 학점을 채우는 학생들도 있었다. 학교와 도서관밖에 모르던 나에게 지도교수님께서는 국가의 연구 용역 사업에 보조연구원으로 참여할 기회를 주셨고, 그렇게 인문학 전공의 사업을 처음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업에서는 한국어 학습자를 위한 어휘를 연구하고 선정하여 목록을 제시하는 일이 이루어졌는데, 선정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기초 자료들을 수집하고, 한국어 교재를 컴퓨터로 문서화하여 대규모 언어 자료를 구축하고, 교재의 어휘를 분석하고, 관련된 선행연구 목록을 정비하여 그 내용을 요약·정리하는 것 등이 보조연구원들에게 배당된 주요 업무였다. 전임 교수로 구성된 공동연구원 선생님들과, 연구책임자이신 지도교수님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는데, 당시에는 스스로 하고 있는 역할이 어떤 것인지조차 모르면서 선배 연구원이 지시하는 것들을 하루하루 처리하는 데에 급급한 나날이었다. 선배가 정해준 마감일을 놓쳐 꾸중을 듣기도 하고, 연구실에서 밤새도록 컴퓨터를 두드렸던 그날들이 지니는 의미를 그때에도 알았더라면, 그랬다면 조금은 더 보조연구원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었을까?

출처: Unsplash


온라인 교육으로서의 한국어 보급 사업


온라인 교육에 대한 열풍은 최근의 일이 아니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의 장기화와 더불어 온라인 교육에 대한 수요가 증폭하였고, 이에 한국어 교육에 있어서도 온라인 교육으로서 한국어를 보급할 필요성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보조연구원 시절 화가 난 박사 선배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교재 말뭉치를 입력했던 그날의 어린 석사가 이제는 온라인 한국어 보급 사업의 책임자로 연구 용역 사업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이 사업에서는 발주처에서 개발한 한국어 교육 자료와 콘텐츠를 토대로 한국어 교사를 채용하여 해외의 학습자들에게 실시간으로 한국어 수업을 제공하는 일을 주요 업무로 하였는데, 국내 체류 중인 한국어 학습자와 상당히 다른 해외 현지 학습자의 성향 및 교육 환경에 대하여 분석하고, 한국어 보급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해외 파견을 갈 수 없게 된 한국어 교사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회의 인문학당신이 보지 못한 인문학의 얼굴들


“인문학이 위기다.” “문과대학 지원자가 줄고 있다.” 과연 정말 이것만이 오늘날의 인문학이 지니고 있는 얼굴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전 세계적으로 실용성을 강조한 학문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경향성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인문학이 위기라는 그 말에는 인문학자들이 발굴해내고 있는 그 무수한 기회들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서, 오히려 그 기회들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만 같아서 내심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인문학도 사업을 한다. 아니, 인문학이라서 사업을 한다. 사업의 결과로 눈에 보이고 즉각적인 쓰임이 있는 어떤 발명품을 개발해내는 전공도 의미가 있지만, 인문학에서는 사업의 결과로 국가의 중요한 결정 사항을 위해 꼭 필요한 기준들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타 전공과는 결이 다른, 상당히 무거운 책임을 수행해오고 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인하여 비대면 수업을 연장하고자 할 때, 비대면 수업과 대면 수업 중 어떤 것이 학생들의 학습 능력 증진에 더 효율성이 있는지를 국가는 연구 용역의 결과물 없이는 선뜻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신문에, 뉴스에, 세상에 큰 소리로 보도되고 있지 않아서일 뿐, 국가의 크고 작은 모든 결정들에는 작은 사업부터 큰 사업까지 연구 용역 과제 수행을 통한 인문학 전공자들의 사업 결과가 중요한 근거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사진: 김강희


걱정 길은 반드시 있어


대학 입시를 앞두고, 아직 스물이 되지 않은 고등학생들은 주변의 무수한 말들에 흔들리고 또 흔들리며 전공이라는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된다. 지속적으로 인문학이 위기라는 사람들에게, 정말 당신이 알고 있는 인문학의 위기가 인문학의 모든 얼굴들을 담고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길이 있다. 반드시 길이 있다.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그 길은 더욱 뚜렷하게 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지금은 인문학이 위기라고 말하는 사람들보다, 그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움직여야 할 때이다. 비행기가 날 수 없게 된 코로나 시국 속에서 온라인 교육 사업으로 국경을 넘어 내는 일처럼, 인문학은 길을 만들어왔으며, 앞으로도 길을 반드시 만들어갈 것이다. 그 일에 동참할 사람들, 그 사람들을 간절히 만나고 싶다.


글/ 김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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