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빅이슈코리아 Jan 11. 2022

나의 방탄소년단 LA 콘서트 원정기

코로나19 시대 이전까지 콘서트에서 “make some noise!(소리 질러!)”는 ‘안녕하세요!’ 같은 의미였다. 아티스트와 팬이 마주 보고 서로의 존재감을 부딪치는 박력 넘치는 인사. 팬데믹이 시작되고 무관중 온라인 콘서트가 보편화되며 “make some noise!”는 아티스트에게 팬의 존재가 아닌 부재를 확인시키는 외로운 외침이 되었다. 그래서 방탄소년단의 2년 만의 대면 콘서트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Permission to dance on stage)’를 보러 2021년 11월 말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갔다. 가지 말아야 할 현실적인 이유들이 끈질기게 발목을 잡았지만, 망설임은 항공권 가격만 높일 뿐이었다. 방탄소년단의 “make some noise!”에 대답하고 싶었다. 여기에 있다고. 계속 여기에 있었다고. 나를 움직여온 것은 언제나 사랑이 있는 곳에 삶이 있다는 믿음이었다. 


LA 가는 멀고도 험난한 


사랑이 있는 곳에 삶이 있지만, 삶이 있는 곳엔 신용카드 대금 결제일이 있다.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새 직장을 구하긴 했지만, 이전에 다니던 회사가 망해서 밀린 월급을 못 받고 그만둔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2년 만에 비행기를 타고 무려 미국까지 가는데 출근 때문에 콘서트만 보고 돌아와야 하는 짧은 일정이 아쉬웠다. PCR 검사 5회, 영문 예방접종증명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서약서 등 준비할 서류와 절차가 많아 심리적인 장벽이 높았다. LA 현지 콘서트가 온라인으로 생중계될 예정이라 굳이 갈 필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장 걱정한 건 교통편이었다. 대중교통 사정이 열악하기로 악명 높고 치안 수준도 낮은 LA에서, 운전면허증이 없는 내가 혼자 공항과 숙소와 콘서트장을 오갈 자신이 없었다. 구구절절 이유가 많지만, 결국 방탄소년단을 보고 싶은 마음이 다 이겼다. LA에 가야 했다. 21세기 최고의 현자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나.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방탄소년단 콘서트 투어 인증샷

갈까 말까 할 때는 가야 하지만, 발걸음이 잘 안 떨어질 때도 있다. 너무 늦게 LA행을 결정해서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우선 가장 중요한 콘서트 티켓은, 4회차 공연의 21만 4천여 석이 완전히 매진된 지 오래였다. 정가의 일곱 배 정도 ‘웃웃웃돈’ 주고 5층 ‘하나님석’ 재판매 티켓을 사야 했다.(미국 티켓 판매 사이트는 합법으로 재판매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수료를 뗀다) 방탄소년단 특수를 맞은 주변 호텔과 한인 택시 가격도 천정부지로 오른 상황이었다. 공항 근처, 다운타운, 한인타운 세 곳 중 가격, 교통, 치안 수준이 나은 호텔 몇 곳을 점찍고, 교통수단과 짐 보관소 위치를 조합해 최적의 경우의 수를 궁리했다. 

항공 일정은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고려해서 확정했다. 1년 중 LA 공항 이용객이 가장 많은 추수감사절 주간이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미국에서, 감염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국내선 이용객들과 최대한 접촉을 피해야 했다. 그래서 추수감사절 당일인 11월 25일, 화려한 만찬의 주인공이던 칠면조 통구이가 잘려 접시에 담기고, 뼈로 수프를 끓이고 있을 밤 시간에 도착해서, 27일 4회차 공연의 첫 회 콘서트만 보고 28일 아침 일찍 LA를 떠나기로 했다. 순 체류 기간은 62시간. 한국에 도착하면 29일 저녁, 30일 하루는 셀프 자가격리와 PCR 검사, 12월 1일에는 출근하는 테트리스 게임 같은 일정이었다. 방탄소년단의 콘서트를 보러 수만 명의 팬들이 LA로 향했다고 보도됐다. 미디어에서는 방탄소년단을 너무 사랑해서 바다를 건넌 아미들의 경쾌한 덕질 원정기로만 비춰졌지만, 팬데믹 상황에서 LA로 가는 길은 멀고 험난했으며 많은 고민과 계획이 필요했다.


정국이보다 빠르게남들과는 다르게 달린 이유


11월 27일, 해가 완전히 진 저녁 6시 30분. 방탄소년단 콘서트가 열리는 ‘소파이 스타디움(Sofi Stadium)’에 도착했다. 전날 미리 와서 곳곳을 둘러봤기 때문에 낮 동안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 촬영지 투어를 하고 느지막이 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한 시간 후인 7시 30분에 콘서트 시작인데 아직 입장하지 못한 팬들이 스타디움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엔트리 1’로 입장해야 했는데, 그 앞에서 시작된 줄이 스타디움 부지 바깥까지 나와 펜스를 빙 두르고 있었다. 대열의 끝을 찾아 줄 섰을 땐 7시가 거의 다 되어 있었다. 물리적으로 이 많은 사람이 30분 안에 입장을 마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핸드폰 와이파이가 먹통이 되어 예매 사이트 앱에서 콘서트 모바일 티켓도 로딩할 수 없었다. 좀 더 빨리 왔어야 했는데, 미리 티켓을 전자지갑에 저장해야 했는데…. 후회가 더 큰 후회를 만들었다. 예상대로 7시 40분이 넘을 때까지도 줄은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아직 수천 명이 입장하지 못한 상황이라 이대로 콘서트가 시작되지 않을 거라고 애써 생각했지만, 스타디움 안에서 입장을 마친 팬들의 함성이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나는 저 함성을 안다. 보지 않았지만 알 것 같았다. 최신곡 뮤직비디오가 전광판으로 흘러나오고 있었을 거다. 그건 곧 콘서트가 시작된다는 의미였다. 

소파이 스타디움 전경

7시 43분 즈음, 스태프 두 명이 근처에서 심각한 얼굴로 말을 주고받는 게 보였다. 그 순간, 한국인만의 야생동물 같은 생존 본능이 깨어나며,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마음이 수면처럼 잠잠해졌다. 본능이 나에게 속삭였다. 때가 되었다고. 곧이어 스태프 중 한 명이 뭐라고 소리쳤다. 잘 듣지 못했지만 아무 데나 빈 입구로 뛰어가라는 말 같았다. 굽 3cm짜리 샌들을 신고 가장 가까운 입구를 향해 죽음 힘을 다해 뛰었다. ‘아이돌 육상대회’ 달리기 챔피언인 멤버 정국과 대결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줄 끝에 서 있었는데 다 따라잡고 세 번째로 도착했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백신접종확인서와 여권, 겨우 로딩에 성공한 모바일 티켓을 준비했다. 그러나 입장할 수 없었다. 카메라가 문제였다. 렌즈 지름이 6인치 이하인 카메라는 반입 가능하다는 공식 규정이 있다고 열심히 설명했는데, 무조건 짐을 맡기고 오라고 했다. 심장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느낌이 무엇인지 깨달으며 짐 보관 트레일러를 향해 다시 달렸다. 조금 울었던 것 같다. 카메라를 맡기고 핸드폰 번호를 말해야 했는데, 너무 긴장해서 숫자를 한 번에 대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입장 대기줄로 뛰며 내가 방탄소년단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마나 간절히 오늘을 기다려왔는지를 깨달았다. 

겨우 스타디움 안으로 발을 디뎠을 때, 오프닝곡인 ‘ON’의 전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ON’은 2년 전에 발표된 방탄소년단의 첫 비대면 활동곡으로, 연말 가요시상식 등에서 이미 여러 번 공연했고, 팬데믹 기간 동안 열린 두 번의 온라인 콘서트의 오프닝곡이기도 했지만 이번이 제대로 된 ‘컴백’ 무대였다. “make some noise!”에 가장 큰 소리로 호응해주고 싶은 노래였다. 0.1초도 더 낭비하고 싶지 않아 계단을 세 칸씩 뛰어올랐다. 그리고 드디어 공연장에 들어선 순간, 기대한 만큼 압도적인 장관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필 무대 정 뒤편으로 들어와 방탄소년단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지만, 팬클럽의 상징인 보라색 불빛을 밝힌 5만여 관객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방탄소년단이 지난 2년 동안 가장 그리워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각자의 사정과 각자의 꿈을 안고 소파이 스타디움으로 온 팬들을 보며, 사람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정신없는 와중에 사진을 찍었다. 이 순간을 영영 잊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내 좌석을 찾아 다시 뛰기 시작했다. 과감하게 한두 무대를 포기하고 최대한 빠르게 이동해야 할까 고민했지만, 조금 뛰고 멈춰서 다시 무대를 보고를 반복하다 세 번째 곡인 ‘쩔어’가 다 끝나고 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7시 58분이었다. 억겁 같은 15분이었다. (다행히 다음 날 콘서트부터 입장 지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2 만의 라이브 공연을 보며


솔직히 말하면 콘서트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순간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집중을 방해했다. 그래서 수능 전날 긴장으로 잠 못 드는 수험생이 모든 눕기 자세를 시도해보는 것처럼, 전광판을 봤다가 샤프심 굵기만 해 보이는 방탄소년단을 봤다가 나중에는 눈을 감고 라이브만 듣기도 했다. 2년 만에 열린 대면 콘서트를 축하하기 위해 축포가 초반부터 많이 터지고, 보통 엔딩 무대 직전 순서인 ‘토롯코’(관객석 사이를 오가는 이동차)도 일찍 타서, 공연 중반부터 곡이 바뀔 때마다 ‘벌써 끝인가?’ 혼자 조바심이 들어 더 집중하기 어려웠다. 입장은 다르지만, 멤버 RM도 콘서트 이후에 한 라이브 방송에서 4회 공연 중 첫날 공연은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했는데,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그토록 염원하던 재회의 순간이라서 비장하고 울먹울먹한 분위기가 만들어질 줄 알았는데, 방탄소년단과 관객 모두 감정을 터트릴 타이밍을 잡지 못했던 것 같다. 

방탄소년단 콘서트 현장 (출처 방타소년단 공식 페이스북 ⓒHYBE)

콘서트가 열린 소파이 스타디움은 보통의 대형 콘서트장과 조금 달랐다.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을 예로 들면, 보통의 스타디움은 원형 야외 체육 시설로, 그라운드가 넓어서 무대를 크게 세울 수 있고, 축포 등으로 공연을 다이내믹하게 구성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소파이 스타디움은 타원형 구조로 가로와 세로 정점의 길이가 다르다. 최대한의 관객 수용을 위해 지름이 짧은 쪽에 무대를 세우기 때문에, 무대가 작고 여유 공간이 적어 다양한 세트 연출이 어려운 단점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잠실종합운동장은 좌석 위치에 따라 소리의 도착 시간이 다른데, 소파이 스타디움은 실내 체육 시설로 최대 10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객석 간 거리가 촘촘하고 층이 높아 관객이 음벽이 되어 소리를 안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라이브의 생동감이 남다르다.

콘서트장에서 방탄소년단 팬라이트 아미밤을 들고.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는 팬들의 호응이 높은 곡들을 모은 올스타전이었다.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동감 있는 라이브로 관객과 하나가 되어 호흡하는 것에 더 중점을 뒀다. 소파이 스타디움은 이 의도를 구현할 최적의 콘서트홀이었다. LA 콘서트 한 달여 전에 같은 제목으로 온라인 콘서트가 먼저 열렸는데, 두 공연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큐시트를 제외하고 똑같은 건, 둘 다 제이홉의 “Make some noise” 외침으로 시작한다는 것밖에 없었다. 2년 동안 공백기 아닌 공백기를 보냈지만, 방탄소년단의 라이브 기량은 더 성숙해져 있었다. 그동안 방탄소년단도 나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구나, 새삼 코로나19 시대를 함께 버텨나가는 동료 시민으로서 애틋함을 느꼈다. 그렇게 나의 방탄소년단 LA 콘서트 원정기가 끝났다. 공연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고, 앞으로 갚아나가야 하는 신용카드 할부도 잔뜩이지만 후회는 없다. 할부 개월 수보다 더 오래 그날들을 기억할 테니까. 2022년이 밝았다. 다음 방탄소년단 대면 콘서트는 올해 3월로 예고되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팬데믹 상황에서 대면 콘서트가 실제로 열리게 될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다시 만나게 된다는 걸.  


글, 사진/ 최이삭(케이팝 칼럼니스트. 인스타그램 @isakchoi)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