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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May 27. 2022

300원으로 지키는 미래

한 아버지에게 두 자녀가 있다. 아버지에게 5억의 돈이 있고, 두 자녀도 각각 5억을 갖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가 두 자녀에게서부터 5억을 모두 빼앗아 써버렸다. 두 자녀는 쓸 돈이 없어졌다. 아버지는 그것으로 모자라 두 자녀 이름으로 5억씩 빚을 내고 또 다 썼다.

사실 내겐 자녀가 없다. 단지 내가 상상해본 나의 모습이다. 지구라는 한정된 자원 속에서 살고 있는 나 말이다. 나는 내가 가진 5억을 사용하고도 더 많은 것을 누리기 위해, 자녀로부터 5억씩을 빼앗고, 추가로 5억의 빚을 내어서까지 빼앗는 아버지는 아닐까?

지구의 자원은 유한한데, 무한한 것처럼 내가 분수에 넘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반성한다. 한정된 지구의 자원을 아끼기 위해 시민들은 분리배출, 쓰레기 줄이기, 장바구니 들고 다니기 등 많은 실천을 한다. 그리고 큰 영향력을 가진 국가와 기업에 책임을 요구한다.

시민들의 대표적 실천으로 텀블러 사용이 있다. 일회용컵을 대신해 텀블러를 사용하고 쓰레기를 만들지 않을 수 있는 좋은 실천이다. 그러나 일회용컵을 사용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에 사용하고 난 일회용컵을 조금 더 아껴 쓰기 위한 제도가 다음 달에 시행된다. 바로 ‘일회용컵 보증금제’이다. 소비자가 일회용컵을 사용할 경우 300원의 보증금을 내고, 소비자가 매장에 일회용컵을 반납할 때 소비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는 제도이다. 올해 6월 10일부터 커피·음료·제과제빵·패스트푸드 업종의 전국 3만 8000여 매장에서 시행된다.

일회용컵에 대한 규제가 완화된 상황에 커피 사용량이 늘면서 일회용컵 사용량이 급증했다. 하지만 일회용컵의 회수와 재활용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일회용컵은 다양한 재질로 만들어져 있기에 선별장에서 선별하기가 까다로워 재활용률은 5% 미만이며, 나머지는 결국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이에 일회용컵의 재질을 통일하고, 회수 체계를 갖춰 고품질 재생 원료로 활용하고자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시행됐다.

하지만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이번에 처음 시행되는 제도가 아니다. 지난 2002년에 관련 업계와 자발적 협약으로 시행되어 수년간 지속됐다. 그러나 2008년 규제 완화로 제도는 폐지되고 말았다. 14년의 시간이 흘러서야 제도가 부활하게 됐다. 업계에서도 이번 제도의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보증금제 시행 시 업계는 컵 관리와 반환에 대한 업무 증가로 인건비를 걱정하고, 컵 반환 시 잔여물로 인해 직원과 소비자 사이의 갈등이 잦아질까 우려하고 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 우리에게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 먼저 생각해볼 것은 환경문제의 대원칙이다. 원인 제공자에게 해결의 책임이 있다. 일회용컵으로 인한 환경오염의 원인 제공자는 컵을 생산한 업계와 컵을 소비한 소비자 모두이다. 

먼저 업계의 우선 과제는 5%라는 충격적인 재활용 수치를 높이는 데 동참하여 환경문제에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제도 시행을 하지 못하는 이유부터 찾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시기에 소비자와 함께 어떻게 더 보증금제를 잘 시행하고 소비자로 하여금 환경을 생각하고 있다는 자긍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소비자에게도 보증금제가 번거롭고 불편할 수 있다. 컵을 세척하고 매장에 반납하는 과정이 힘들겠지만 조금만 불편을 감수한다면, 길거리 투기로 인한 공공의 관리 부담을 감소시킬 수 있고, 버려져 소각되는 일회용컵을 재활용해 온실가스 배출도 줄이고, 자원도 아낄 수 있다. 무엇보다 일회용컵을 사용한 원인 제공자로서 쓰레기 재활용 과정까지 책임지는 시민이 될 수 있다. 

보증금제의 정착은 앞으로 또 다른 영역에서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시민의식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많은 시민이 일회용컵 보증금제의 시행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은 협력하여 원활한 제도의 시행을 위한 과정과 시민 에티켓 등을 홍보하고, 예기치 못한 문제에 대해 발 빠른 대응을 해 제도를 보완해나가야 할 것이다. 부디 300원으로 시작한 보증금 제도가 우리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고 우리들의 삶의 터전과 미래를 지키는 데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 이지수(녹색연합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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