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키, 대칭으로 물결치는 앞머리, 늘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귀여워서 내가 ‘요정님’이라고 부르는 남성이 있다. 요정님은 웬만하면 웃는 얼굴로 온화하게 말한다. 그런데 내가 공유한 에피소드를 듣고 드물게 격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여기서 잠깐, 탱고를 추지 않는 사람이 해당 에피소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전 지식이 필요할 것 같아 설명의 시간을 갖겠다. 탱고를 추고 음료를 마시며 사람들과 교류하는 장소를 밀롱가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음악이 나오는 문법이 있다. 바로 딴다(tanda)이다. 딴다는 ‘차례’ 또는 ‘층’을 뜻하는 스페인어로, 탱고에서는 한 명의 상대와 이어서 춤을 추는 단위를 말한다. 이것은 음악을 묶는 단위이기도 하다.
탱고 음악은 탱고, 발스, 밀롱가 세 가지 장르로 분류된다. 탱고 네 곡, 발스 세 곡과 ‘밀롱가’(여기서는 장소가 아닌 음악 장르를 뜻한다) 세 곡을 각각 한 딴다로 묶은 뒤, 음악이 흐르는 순서를 탱고 두 딴다, 발스 한 딴다, 탱고 두 딴다, 밀롱가 한 딴다, 다시 탱고 두 딴다, 발스 한 딴다(이 구성은 DJ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보통 4/4박자인 탱고와 달리 발스는 3/4박자, 밀롱가는 2/4박자이고 표현하는 정서도 형식도 사뭇 다르다. 이 때문에 세 장르를 모두 잘 추는 사람은 드물고 그러기 위해 따로 수업을 듣고 연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 장르를 모두 그럭저럭 출 수 있다면 밀롱가(이쯤 되면 헷갈릴 것 같은데 여기서는 장소를 뜻한다)에서 즐길 기회와 시간은 더 늘어날 것이다. 나 역시 밀롱가와 발스를 즐기고 싶은 욕심이 있어 수업을 열심히 들은 적 있다. 그 뒤 밀롱가에서 예전에 수업에서 만난 적 있는 R과 우연히 만나 함께 ‘밀롱가’를 추며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와 같이 걷는 순간 ‘조졌구나’ 싶었다. 밀롱가는 2/4박자를 바탕으로 빠른 템포와 리듬의 ‘흥’을 특징으로 하는데, 그 흥을 표현하려다가 많은 리더들이 우를 범한다. 지 혼자만 신나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탱고 수업을 참여하고 강사들의 춤을 보았을 때 가장 놀란 점은, 그 모든 것이 즉흥으로 움직인 결과라는 사실이었다. 상체에는 고요한 에너지가 흐르는데 하체는 바쁘게 걷고 점프하고 서로의 다리 사이를 채찍처럼 휘감으며 아주 난리가 나는 게 경이로웠다.
이를 위해 두 사람은 한 팀이 돼야 한다. 다른 영역에서도 그렇듯, 좋은 팀이 되기 위해서는 각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협력하는 구성원이 필요하다. 구성원의 역할을 편의상 ‘리드’와 ‘팔로우’ 둘로 나눠보자. 탱고를 출 때 두 사람은 매 순간 리드와 팔로우를 주고받지만, 소셜댄스에서는 큰 틀에서 계획을 세우며 더 많이 리드하는 이들 ‘리더’로, 그에 응하며 춤을 완성시키는 이를 ‘팔로워’로 부르곤 한다.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어 각자 기술 또는 능력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박자감, 음악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예술성, 자기 몸의 중심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신체 능력 등등. 하지만 이를 갖춘 두 사람이더라도 ‘좋은 팀’은 되지 못할 수 있다. 나는 팀의 목표를 서로 잘 연결되어 기분 좋은 순간을 창조하고, 더 나아가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것으로 보는데, 이를 위해 리더는 상대방이 움직일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상대가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뒤 본인도 움직여야 한다. 분명히 리드하지 않거나, 팔로워의 움직임을 확인하거나 기다려주지 않은 채 혼자만 급히 움직인다면 역할을 정성껏 하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는 불쾌한 순간과 보기 싫은 몸짓이다. 나는 대부분의 팔로워가 자신을 ‘추하게’ 만드는 리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평소 그럭저럭 리드하던 사람도 ‘밀롱가’(음악 장르)에서는 망가지는 경우를 종종 목격했다. 탱고와 밀롱가의 리드 방법이 다르기도 하고, 웬만큼 숙련된 리더가 아니면 짧은 순간 선명한 리드를 주는 행위를 계속 이어가기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빠른 음악은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기 쉽기에 우왕좌왕 허덕이는 두 사람이 탄생하기 딱 좋다.
노래가 시작되고, 그와 함께 몇 걸음 걸었을 때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지만 어찌어찌 세 곡을 버텼다(한번 같이 춤을 추기 시작하면 웬만하면 한 딴다 내내 같이 추는 것이 예의이므로 함께 춤출 사람을 고르기 위해 스테이지 위의 사람들을 신중하게 지켜보는 탱고의 경향성에 대해서는 이전에 언급한 바 있다). 그동안 아마 코르티솔이 잔뜩 분비됐을 것이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견디며 밀롱가 한 딴다를 마무리한 내게 같이 춘 리더 ‘R’은 “수업 더 들으셔야겠네요.”라고 말했다! 표정이나 말투로 농담이라는 걸 인지했지만 그 당시 나는 ‘니가 할 말이냐?’ 싶어 곱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욱하며 가운뎃손가락을 세워버렸는데…. 이전에도 여러 사람 보는 데서 가운뎃손가락을 들었다가 물의(?)를 일으킨 적 있으면서 또 세워버린 스스로를 자책하게 됐다. 이에 하소연하듯 해당 에피소드를 요정님께 말했고, 이야기를 들은 요정님은 “그건 R이 잘못했다.”며 “이건 속된 말이지만 그건 혼자 딸X이 치는 거지!”라며 정색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탱고를 섹스에 비유한다. 요정님은 “상대를 한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며 이기적인 섹스를 한다면 그것은 자위와 같다.”는 맥락에서 ‘딸X이’를 말한 것 같다. 그리고 섹스도 탱고도, 그런 이기적인 행위는 상대에게 존중받지 못했다는 불쾌감과 공허를 남길 뿐이다.
나는 대화에 비유하고 싶다. 상대가 반응할 틈을 주지 않고 혼자서만 길게 떠드는 사람, 상대의 감정이나 기색은 살피지 않고 신나서 자기 말만 일방적으로 퍼붓는 사람과의 대화는 곤욕스럽다. 반면 나를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최대한 선의로 해석할 것이라는 신뢰를 주는 사람과 생각과 감정을 충분히 주고받은 대화 뒤에는 일종의 포만감과 생기, 영감이 수급된다. 코드 맞는 이와 ‘척 하면 척’ 합이 맞는 유머를 주고받고 난 뒤의 즐거움도 좋은 대화의 산물로 꼽고 싶다. 이런 대화를 위해서는 발성이나 발음, 현란한 말솜씨 같은 ‘기술’보다 공감과 존중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탱고도 마찬가지라고 보고.
공감 능력 좋은 요정님은 ‘딸X이’ 발언 뒤 본인도 예전에 그런 적 있었다며 아스라이 과거를 회상하는 눈빛을 비췄다. 그의 눈빛을 보자 나도 회상에 빠졌다. 나도 분명 누군가에게 짜증나는 팔로워였을 것이다. 특히 탱고 시작하고 1년 무렵 스스로의 중심을 책임지지 못하고 리더에게 의존하거나, 혹은 리더의 의도와 다르게 자꾸 무게중심과 발을 바꿔서 난감하게 만들었던 흑역사를 떠올리니 남에게 더 관대해야겠다는 다짐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태도를 잃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거 너무 식상한 마무리인가?
글. 최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