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요즘 기어서 지하철에 타고 있다. 휠체어에서 쏟아지듯 떨어져 바닥에 쿵 하고 엎드린다. 지하철 바닥을 긴다. 좌석에 앉아 있는 비장애인 승객의 발 사이를 지나간다.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어 팔 힘으로만 기어야 한다. 한 번 기고, 숨을 고르고, 다시 한 번 기고, 숨을 고른다. 이 과정을 반복한다. 현장을 진압하는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오체투지 하는 장애인들 사이를 징검다리 건너듯 넘고 다닌다. 하반신 마비인 이들에게 “일어나세요.”라고 말한다. 오체투지 현장을 촬영하고 기록하는 게 내 일이지만, 지하철 바닥을 기는 이들에게 카메라를 대는 게 죄스럽다. 이 광경을 매일 보고 있자니 일하기가 싫다. 카메라고 나발이고 용산 집무실에 던져버리고 싶다.
장애인들은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할 것을 외친다. 장애인권리예산은 장애인이 이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예산을 뜻한다. 이동권 보장을 위한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국비 지원, 탈시설·자립생활 권리를 위한 활동지원서비스 예산, 장애인평생교육 국비 지원 등이다. 예산 편성 책임은 기획재정부에 있다. 그간 장애인은 정권을 어느 정당이 잡았는지와는 상관없이 대통령과 기재부를 향해 장애인권리예산을 편성하라고 요구해왔다. 문재인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홍남기 기재부 전 장관은 이 요구를 끝내 무시한 채 지난 9일, 3년 5개월 임기를 마쳤다. 현재 장애인들은 새로 임기를 시작한 윤석열 대통령과 추경호 기재부 장관을 향해 투쟁하고 있다.
지하철 투쟁 현장에 있다 보면 시민의 거센 항의에 직면한다. 욕설, 혐오 발언 중 가장 많이 듣는 말 하나가 “왜 지하철에서 하느냐. 넓은 데 가서 해라.”다. “왜 하필 지하철에서 시위해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나?”라는 질문에 강혜민 <비마이너> 편집장은 “지하철에서는 왜 시위하면 안 될까?”라고 반문했다. 이 반문에 담긴 뜻을 자세히 설명하고 싶다.
우선 법을 살펴보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2조 2항에 따르면 시위란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불특정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라 정의돼 있다. 장애인 지하철 시위는 보통 열 명 내외의 휠체어 이용자가 지하철을 천천히 타면서 진행된다. 열차와 승강장 사이가 넓어 휠체어 바퀴가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역무원이 이동식 발판을 가져올 때까지 기다린다. 비장애인 승객으로만 꽉 찬 열차에 휠체어 이용자 탑승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서울교통공사 직원에게 요청한다. 휠체어에서 내려와 이동식 발판부터 열차 안까지 기어서 탑승하기도 한다. 이렇게 천천히 지하철을 타는 행위를 ‘위력 또는 기세’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열차에 타 있는 승객 수백 명에게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에 관해 설명하며 ‘불특정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준다. 이로 인해 비장애인 승객만 지하철을 이용할 때보다 열차 출발이 늦어지니 ‘제압을 가’한 게 된다. 즉, 장애인들은 법에 나와 있는 대로 시위하고 있다.
또한 지하철 시위는 ‘옥내집회’에 해당되는데, 집시법에 옥내집회에 관한 신고 조항은 따로 없다. 집시법 어느 조항을 봐도 지하철 시위를 불법이라 할 만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처벌도 집시법으로 받지 않는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전차교통방해, 업무방해 등으로 서울교통공사로부터 고소당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합·불법을 떠나 지하철이라는 장소의 성격을 이야기하고 싶다. 지하철은 장애인이 이동하다 죽고 다친 대표적 공간이다. ‘살인 기계’라 불리는 리프트 때문에 많은 장애인이 추락해 사망하고 중상을 입었다. 리프트는 얇은 와이어 몇 개에 의지해 휠체어 이용자를 태우는 판 같은 건데, 와이어가 끊어지면 장애인은 속수무책으로 계단 아래로 추락한다. 이에 장애인은 21년간 “지하철 타다 죽고 싶지 않다.”고 외쳐왔다. 이 투쟁 덕분에 지금은 엘리베이터가 많이 설치됐지만 아직도 미설치 역사가 29개(서울교통공사 관할 21개, 한국철도공사 관할 8개)나 된다. 좀 세게 말하면, 29개 역에는 장애인 살해에 대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장애인이 지하철에서 이동권이 아닌 다른 권리까지 보장하라고 이야기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장애인들은 “우리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고 있는데,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건 이동권뿐만이 아니다. 학교와 직장에 가고, 집단생활을 해야 하는 장애인 거주시설이 아니라 내 공간에서 홀로 혹은 내가 원하는 사람과 살 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은 생명을 위협하는 지하철, 그 바닥에 자신의 존엄을 내려놓고 기어가면서, 이런 평범한 삶을 누릴 권리를 외치고 있다. 존엄하게 살기 위해 존엄을 내던졌다. 죽음의 공간에서 울리는 살고 싶다는 외침. 추경호 기재부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이 들어야 한다. 듣고 응답해야 한다.
글. 하민지/ 사진. 황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