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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un 13. 2022

나라 없는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며, 드라마 '파친코'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산(離散)’이라는 의미의 디아스포라(Diaspora)를 소재로 한 프로젝트는 필연적으로 거대한 규모를 전제로 한다. 수많은 이주자, 그리고 그들이 이동한 거리, 흩어진 면적,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기까지의 시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광대해질 수밖에 없다.

애플TV+의 <파친코>는 본질적으로 그런 거대함을 목표로 하는 드라마 시리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가 쓴 베스트셀러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미국 프로덕션에서 4대에 걸친 조선인의 일본 이민사를 다룬다. 거기에 한국어와 일본어, 가끔 등장하는 영어까지 3개 언어를 사용하는 드라마를 제작해 글로벌 플랫폼에서 방영한다는 것 자체가 대담하기 이를 데 없는 시도다. 미국 내 한국인 이민사를 다룬 <미나리>에 출연해 세계적 명성을 얻은 윤여정이 주연으로 출연한다는 사실도 관심을 모았다. 언론 프리미어 이후에 비평가들의 호평이 쏟아진 것도 공개 전 기대감을 높였다.

ⓒ애플TV+

막상 작품이 공개된 후 많은 사람이 이 드라마 시리즈에 대해 남긴 감상을 보면, 긍정적인 감정을 공유하더라도 <파친코>를 이해하는 방식은 각각의 입장에 따라 다르다는 인상을 준다. 가령, 한국 관객 중 적잖은 수는 글로벌 시청층을 상대로 하는 이 드라마가 오프닝에서 일제의 수탈에 대해 명백한 언어로 기술한 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민족적 일치감을 느꼈지만, 어떤 이들은 후반부에 조선인으로 태어나 일본의 야쿠자로서 살아간 고한수(이민호)라는 인물에 대해 너무 많은 서사를 부여한 점에는 불편한 감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미국을 포함해 다른 나라 시청자들이 영상미와 멜로드라마적 접근, 여러 세대에 걸친 디아스포라 서사의 재구성에 초점을 둔 것과는 조금 다른 감상 방식이다. 이런 차이는 <파친코>가 가진 다문화적 정체성에서 유래한다. 드라마 안의 표현으로는 ‘stateless’, 나라 없이 주변인으로 살아간 이들의 삶은 문화적 관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대개 임의로 소비된다. (이민자들이) 떠나온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민자에 대해 말할 때 같은 민족이라는 연결 고리를 편의적으로 떼었다 붙였다 하기 마련이며, (이민자들이) 이식된 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민자를 ‘비국민’으로 분류하고 자기들의 체제에 동화되길 강요한다. 여러 곳에 속하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인물들이 공유하는 정서가 <파친코>를 구성한다.

<파친코> 시즌 1의 8화 마지막에 명시적으로 언급되었듯이, 이 드라마는 고국을 떠나 외국에 이식되어 살아온 한 여자의 서사다. 1910년대에 조선의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 일본의 오사카로 이주해 살아온 선자가 겪은 역사를 그리는 작품이다. <파친코>의 포스터나 화면 구성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선자의 얼굴 클로즈업이다. 

1회는 어린 선자(전유나)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 아버지와 잠자리를 두고 마주 본 채 웃는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거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2회의 엔딩에서는 한수를 만나서 여자로서 처음 사랑을 알게 되는 젊은 선자(김민하)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4화는 1989년이 되어서야 다시 영도 바다 앞에 선 노년의 선자(윤여정) 얼굴로 끝난다. 8화 마지막에서는 1930년대의 오사카에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거리로 김치를 팔러 나온 젊은 선자의 모습이 보인다. 거칠게 지나가는 사람들은 선자가 겪어야 할 이방인으로서의 혹독한 삶을 상징하고, 선자는 거기서 잠시 넋을 잃지만 결국 다시 정신을 차리고 세상에 맞선다. ‘어머니가 담근, 우리나라의 김치’를 팔아서 삶을 꾸리기로 결심한 선자의 얼굴 표정을 보며 우리는 그의 감정과 공명한다.


다시디아스포라

디아스포라가 기독교의 바빌론 유수와 그 이후의 사건들을 의미하는 말이듯, 선자가 겪는 고난에는 종교적 알레고리가 있다. 하지만 상징적으로만 바라보기에는, 선자라는 인물이 피상적인 전형을 뛰어넘는다. 선자에게는 어머니 양진에게서 물려받은 강인함, 자기 인생은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의지가 불꽃처럼 타오른다. 드라마는 그의 생명력을 잡아내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젊은 선자 역을 맡은 김민하 배우가 프리미어 당시 인터뷰에서 선자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면서 “선자에겐 자기만의 세계가 있다.(She has her own universe.)”라는 표현을 썼는데, 시즌 1은 선자가 자기 방식으로 세계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내적인 변화를 선명하게 포착해냈다.

드라마 <파친코> 스틸 ⓒ애플TV+

그렇기에 <파친코>의 내러티브 구성은 실험적인 동시에 산만하다. 원작 소설이 사건을 시대순으로 배치한 반면 드라마는 현재와의 연결을 강조하면서 시대가 혼재하도록 제시하는 방식을 택했다. 젊은 선자가 겪는 사건들이 펼쳐지는 한편, 현재 노년의 선자와 손자 솔로몬(진하)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방식이다. 시대적 맥락과 맞물려 역사극적 전개로 펼쳐지는 과거 서사와 개인 가족사 중심으로 가는 현대의 서사 사이에 긴장감의 편차가 있기 때문에 이런 방식을 쓴 것이 아닌가 추측되지만, 선자의 삶을 꾸준히 따라갈 때 나오는 추진력은 좀 떨어진다. 다만 이는 디아스포라 서사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이민자들의 삶은 한 점에서 시작되어 사방으로 흩어지고 네트워크로 뻗어나간다. <파친코>의 복합 시제 구성은 여러 시점에 있는 선자 가족의 삶을 통합해 동시에 바라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파친코> 시즌 1은 한반도에서 시작해 오사카로 이주하면서 정착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수에게 배신당한 선자에게 전도사 이삭(노상현)이 손을 내밀어 다른 땅으로 옮겨 갔고, 거기에서 부부는 노아와 모자수라는 아이를 낳았다. 시즌 2는 본격적인 이민사를 묘사하며, 선자의 가족이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해가는 과정에 주목할 것이다. 결국 다문화적 제작의 산물인 <파친코>는 전 세계 시청자에게 이 ‘나라 없는 사람들’, 혹은 그들과의 공동체를 상상할 것을 요청하는 드라마이다. 혹은 상상 속 공동체의 존재를 다시 생각할 것을 요구하는 드라마다. 선자의 눈으로 세계를 봐주기를, 그렇게 주변의 관점에서 세계를 다시 건설해보기를. 그렇게 보면 <파친코>

는 이제껏 본 것과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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