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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un 15. 2022

'개그콘서트', 'X파일'이 망한 이유

드라마 <X 파일> 스틸 

〈X 파일〉이라는 전설적인 드라마가 있었다. 빠-바바-바바바--빠-바바-바바바-- 글자만 보고도 콧노래가 자동 소환되었다면, 동지여 반갑다. 인트로 마지막에 뜨던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The Truth is Out There.)”는 문구를 기억한다면 최소 30대 인증. 

〈X 파일〉은 1993년 미국에서 처음 방영됐고, 한국에서는 바로 다음 해에 KBS에서 공식 수입해 더빙 방영했다. 지금이야 넷플릭스를 비롯한 각종 OTT 서비스로 드라마 좀 본다는 한국인들은 웬만한 미국인보다도 미국 드라마를 더 많이 보지만, 당시에는 이 정도 인기를 끌고 인지도가 높은 외국 드라마가 흔하지 않았다. 당시 머나먼 동쪽 나라, 그것도 공영방송에서 수입해 정식 방영한 것만 봐도 전 세계적으로 〈X 파일〉이 얼마나 큰 인기를 끌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2016년, 콘텐츠 시장이 글로벌화되고 복고 바람이 불자 제작사인 FOX는 당연히 〈X 파일〉을 다시 소환했다. 이제는 부모가 되었을 올드팬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방부제를 먹고 산다*는 주연배우 둘을 불러와 그대로 멀더와 스컬리 역을 맡겼다. 전 세계가 들썩였고, 드라마가 나오기 전에 이미 다음 시즌까지 제작까지 들어갔다. 히트는 이미 정해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콘텐츠의 성공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새 시즌은 공개와 동시에 비평가들의 악평에 시달렸고, 악평도 잠시일 뿐 곧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작품이 됐다. 그나마 상업적으로 완전히 망하진 않아서 다음 시즌까진 제작되었지만 거기까지였다. 도저히 끝나지 않는 시즌제의 나라에서 그 정도 이름값을 가지고 두 시즌 만에 끝났으니 처참한 실패라 하겠다.


정치와 가짜뉴스


2016년, 공화당 후보 트럼프와 민주당 후보 힐러리가 맞붙은 미국 대선은 가짜뉴스가 이미 대세가 되었음을 명확히 드러낸 난장판이었다. 대선 전 3개월 동안 대선과 관련된 20대 가짜뉴스가 페이스북에서 받은 ‘공유’와 ‘좋아요’는 870만 회였는데, 이는 같은 기간 동안 신망 높은 매체(당신이 들어본 대부분 미국 신문사)의 20대 대선 뉴스가 받은 ‘공유’와 ‘좋아요’ 수(730만 회)보다 훨씬 높은 수치였다. 가짜뉴스를 열렬히 퍼트린 극우 매체 〈브라이트바트 뉴스〉의 CEO 스티브 배넌은 트럼프가 당선된 뒤 공로를 인정받아 백악관 수석 고문으로 임명됐다. 가짜뉴스의 파급력이 전통적인 매체가 수십 년간 쌓아 올린 파급력을 단번에 능가한 것이다. 당연히 각 국가와 정치 조직들도 이 난장판에 숟가락을 얹었다. 러시아는 조직적으로 미국 대선에 가짜뉴스를 퍼다 날랐는데, 이 시기 러시아 정부와 관련된 것으로 공식적으로 밝혀진 계정들이 구글과 페이스북, 트위터에 사용한 정치 광고비만 10만 달러가 넘는다. 페이스북에서만 1억 2000만 명의 미국인이 러시아가 만든 선전물을 접했다.

물론 나는 가짜뉴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다는 불충한 말을 할 생각은 없다. 힐러리를 포함한 민주당 원로들은 피자 가게 지하에 소년 소녀들을 가둬두고 변태 성행위를 지속적으로 저질렀으니* 당연한 결과다. 용감한 우파 청년이 총을 들고 이 가게를 급습해 납치된 아동들을 구출하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실패하고 말았다. 이외에도 힐러리는 국방부 장관 시절 IS에 무기를 팔았고*, 이메일 스캔들을 덮기 위해 FBI 요원을 암살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심지어 프란치스코 교황조차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었다. 미국 정보국 소속의 Q의 폭로에 따르면, 민주당은 사실 외계인들에게 점령당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사실상 인간을 수호할 마지막 희망이었다. 하지만 빌 게이츠가 퍼트린* 바이러스로 인해 트럼프는 2020년 대선에서 패배했고 치매 걸린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가짜지만 뉴스가  음모론


〈X 파일〉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왜 미국 대선을 이야기하지 싶겠지만, 이게 다 관련이 있다. 과거에 〈X 파일〉이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시청자들에게 흥미를 끌 만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새롭게 돌아온 〈X 파일〉은 왜 실패했을까? 그들의 이야기가 더 이상 흥미롭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20년간 무엇이 변했을까? 사실 〈X 파일〉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이야기의 틀도 거의 비슷했고, 기술은 오히려 발전해서 과거에는 조잡했던 영상은 그럴듯해졌다. 하지만 전혀 흥미롭지 않았다. 왜냐면 그사이 〈X 파일〉이 말하는 ‘저 너머의 진실’은 이미 우리 앞에서 난장판을 벌이고 있었으니까. 

정치 뉴스 댓글에서 말하는 “〈개그콘서트〉가 망한 이유”와 정확히 같은 이유로 〈X 파일〉은 실패했다. 이제 정치는 코미디가 됐고 음모론은 전면에 드러났다. 드라마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드라마에서는 진실을 좇았는데, 우리 눈앞에 드러난 진실은 너무도 많은 정보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애초에 진실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겠다.

트럼프와 참모들은 선거에서 이기고 대통령이 된 후에도 가짜뉴스를 열심히 생산하고 퍼 날랐다. 상식 있는 기자들은 당연히 분노했고, 백악관을 향해 “왜 거짓말을 하느냐?”며 항의했다. 그러자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고문은 전설이 될 말을 남겼다. “자꾸 우리가 거짓말을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대안적 사실을 제시한 거죠.” 

시대를 관통하는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이라는 표현은 이렇게 탄생했다. 한 기자가 “그건 대안적 사실은 아닙니다. 그냥 거짓말이죠”라고 반박했지만, 아무도 그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 

〈X 파일〉이 인기 있던 시절, 우리가 지금 말하는 가짜뉴스는 음지에 있었다. 그렇기에 음모론이라 불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음모론은 가짜긴 하지만 뉴스가 됐다. 본디 앞의 수식이 아니라 뒤의 본 단어가 더 중요한 법이다. 사람들은 ‘가짜’뉴스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가짜‘뉴스’다. 그리고 어느새 가짜뉴스는 대안적 ‘사실’이 되었다. 역시나 중요한 것은 앞의 수식이 아니라 뒤 단어다. 대안적이라는 꾸밈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사실은 곧 진실이 된다. 사람들이 그렇게 믿기만 한다면. 

그러니 진실 따위 알게 뭐람. 하지만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저 너머에는 진실이 있는지. 우리가 그 진실을 찾을 수 있는지. 그리고 여전히 가치가 있는지. 


추신. 

혹시나 해서 덧붙이면 *를 붙인 것은 모두 ‘가짜’뉴스다. 

아니면 대안적 ‘사실’이든지. 하긴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재밌으면 됐지.


글.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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