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은 특유의 쪼가 있어” 이런 말을 하거나 들을 때가 있습니다. ‘쪼’라는 말은 표준어는 아닙니다만 일반적으로 ‘개성’ ‘특징’ ‘습관’ ‘아이덴티티’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지요. 이 말은 칭찬을 위해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부정적으로 쓰입니다. 오디션 무대에 오른 한 지원자가 심사위원에게 “쪼가 너무 강한데?”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안타깝지만 탈락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 배우는 여전히 가수 할 때 쪼를 못 버리더라고.” 같은 용법으로 이 단어가 사용된다면 굳어져버린, 고치기 힘든 버릇을 의미하곤 하죠.
사람들에겐 누구나 자주 쓰는 표현이나 언어 습관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기에 우리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누군가가 “너는 이런 표현을 자주 쓰네.”라고 말해주면 그제야 새삼스럽게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몇 달 전, 제 유튜브 촬영본을 편집해주던 PD와 함께 식사를 하던 중 그가 이런 이야길 하며 웃은 적이 있습니다. “작가님은 ‘예컨대’ ‘예를 들면’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 거 아세요?”
저는 남들과 대화하다가 “좀 더 자세히 말해봐”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줘” 같은 말을 자주 합니다. 들을 때뿐 아니라 누군가에게 말을 하다가도 상대가 못 알아듣는 건 아닐까 조바심이 나서 꼭 쉬운 예를 다시 들어주려고 하고요. 말을 하든, 글을 쓰든 남이 이해하기 쉽도록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선생님이 교실에서 학생에게 하듯 “예를 들면”이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습니다.
회사에 다닐 때는 후배들이 농담처럼 이렇게 지적해준 적이 있습니다. “선배는 ‘힙하다’는 말을 심하게 많이 써요.” 제가 후배들만 보면 “요즘은 뭐가 힙해?” “좀 힙한 기획 없어?” 같은 말을 수시로 한다는 거였죠. 이 표현은 ‘힙스터’에서 나온 말인데 요즘은 별로 쓰이지 않는 표현 같아요. 잘 아시겠지만 요즘 힙한 게 뭔지 묻는 사람은 애초에 힙한 사람이 아닙니다…. 잡지 기자로 시작해서 이후에는 디지털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을 했었기 때문에 저는 매주 기획회의에서 최신 트렌드를 공유하곤 했습니다. 때문에 혹시 내가 유행에 뒤처지고 있지 않나 미어캣처럼 시종일관 두리번거렸습니다. 성수동이니 한남동이니 합정동이니 하는 곳에 생겨나는 새로운 곳들에 숙제하듯 들르곤 했는데 그때는 무언가를 좋다고 판단하는 핵심이 힙한지(젊고 신선한 감각이 있는지) 아닌지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이 자주 쓰는 표현이나 습관은 그가 평소 내면에 쌓아둔 것들을 자연스럽게 밖으로 꺼내어 보이는 매개가 됩니다. 여기서 말의 힘은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하게 되는데요.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기 때문에 특정한 언어를 자주 쓰게 되기도 하지만, 특정한 언어를 자주 쓰다 보면 그렇게 입 밖으로 나온 말이 나를 사로잡아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하면 모두 이루어진다는 식의 ‘시크릿’류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자주 하는 말들은 최초에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만, 오래 입은 잠옷 같아진 말을 자주 쓰다 보면 그 말이 자꾸만 자기 귀에 들림으로써 스스로를 자기 말이 뿜어내는 자장 속에 가둬두는 경우가 생겨난다는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걱정되는 마음에 “잘 안 되면 어쩌지” 같은 말을 했다가, 그런 말을 자꾸 입 밖으로 내다 보면 언젠가부터 정말로 잘 안 될 거라는 부정적인 예감에 휩싸이고 마는 것처럼요.
어떤 생각을 하기 때문에 특정한 언어를 자주 쓰게 되는데, 그 특정한 언어를 자주 쓰다 보면 그 언어가 나의 정서를 지배하는 전이 현상이 생겨납니다. 때문에 자기의 ‘언어적 쪼’를 정기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한 번씩 제가 자주 쓰는 언어 습관을 점검해보고 그중 특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남기는 버릇이 있다면 교정하려고 노력합니다. 아예 쓰지 않기는 어렵지만 의식하기만 해도 사용하는 빈도가 줄어드니까요. 지금까지 제가 쓰지 않기로 결심하고 거리를 두려고 한 말과 습관에는 대표적으로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우선 “솔직히 말해서”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 노력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어릴 때 제 주변의 어른들은 이걸로 시작되는 표현을 자주 썼습니다. 처음에는 그 표현이 소탈하게 보여서 따라 쓰곤 했습니다만 언젠가부터 이 말은 꼭 부정적인 토로와 어울린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기분 나빠 하지 말고 들어”라는 말의 다음이 무조건 기분 나쁜 말인 것과 비슷한 원리죠. “솔직히 말해서”라는 말 다음에는 반드시 “그 사람은 별로야” “이건 아닌 것 같아” 같은 말이 나오게 되더라고요. 남을 평가하는 말하기, 비난하는 말하기가 관용적으로 들러붙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을 보고 있으니 속으로 ‘그럼 평소에는 솔직하지 않았단 말이야?’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 말을 전제로 한 뒤 해야 할 말이면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낫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인 것 같아요”라는 표현은 대학에 입학한 뒤부터 쓰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대학생이 되니 전과 달리 발표할 일도 많고 토론할 일도 많았습니다. 선배들이나 동기들을 관찰해보니 여성들은 유독 어떤 주장을 할 때 웃으면서 말하거나 “제가 잘 몰라서” “~인 것 같아요” 같은 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기 생각을 너무 세게 말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될 때, 적당히 말랑해 보이는 언어 쿠션을 끼워 넣는 것이죠. 심지어 “배가 고픈 것 같아요” “기분이 좋지 않은 거 같아요”처럼 자신이 정확히 알 수 있는 상태에서까지 습관적으로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은 결국 자기도 모르는 사이 회피적 성향을 키우는 데 일조하는 듯 보였습니다. 교수들 또한 우리가 이런 말을 자주 쓰는 걸 보고 “~인 것 같아요”라는 식으로 자기 의견을 무기력하게 피력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강조해 가르쳤습니다. 모른다는 말은 정말로 모르는 경우에만 써야 하는 거라는 걸 깨닫고 의식적으로 피해왔던 습관입니다.
이처럼 말하는 대상을 자신 없어 보이게 하기로는 “~인 것 같아요”뿐 아니라 말끝을 흐리는 습관도 한몫합니다. 이 습관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낀 결정적 이유는 직장인이 되면서 프로페셔널해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직장 동료들을 지켜보니 어쩐지 소심해 보이고 자신감 없어 보이는 사람들은 말끝을 흐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건 단순히 성격의 차이로 보이는 정도가 아닌, 준비되지 않은 상태임을 자백하는 상태처럼 오해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지 말고 ‘입니다’ ‘합니다’ 하고 말끝을 힘주어 마무리해야만 발언에 힘이 생겨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볼 때 신뢰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말하기를 업으로 삼는 성우나 강사들이 말끝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유심히 들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물론 고치고 싶다고 해서 다 고칠 수 있던 것은 아닙니다. 서울에 산 지 10년이 넘었지만 저는 아직 경상도 사투리 특유의 성조를 버리지 못했고, 자꾸만 주절주절 부연해서 설명하려고 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글을 쓸 때는 주제가 분명한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 독자들에게 내가 깨달은 걸 알려줘야 한다는 이상한 압박감 때문에 자꾸만 비슷비슷한 구성을 취하게 됩니다. 이것들은 저의 내면에 너무 단단하게 결박돼 있어서 수정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자기의 쪼를 일단 아는 데서 시작한다면, 그 쪼가 자기만의 개성이 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세계로는 넘어가기 힘든 제한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중에서 가장 치명적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을 서서히 줄여나갈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자주 사용하는 언어적 지문을 정기적으로 체크하면서 내가 무엇을 중시하는지, 그 때문에 어떤 표현을 자주 쓰게 되는지, 앞으로는 어떤 식의 표현을 자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하는 걸 꾸준히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글. 정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