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절반을 가질 것이냐, 망가진 전부를 가질 것이냐. 온전한 절반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망가진 전부를 가져봐야 고치는 비용이 더 든다. 하지만 실제로는 망가진 전부를 택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 권력이 걸린 경우는 특히 그렇다.
권력을 나눠서 공동체 전체가 더 잘 사는 길이 있다. 그래도 굳이 권력을 독점하고 다 함께 힘들어지는 길을 택하는 경우가 흔하다. 재벌가의 경영권 다툼에서도 자주 보는 풍경이다. 한국은 군사독재 시기에 경제성장이 이뤄진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다른 유형도 흔했다.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독재자가 그 기회를 걷어차는 것이다.
대체 왜 그런 걸까. 이렇게 물어보면, 대개는 심드렁하게 답한다. 그게 권력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권력은 대체 왜 그런 속성을 띠고 있을까. 어쩌면 두려움 탓일 수도 있겠다.
내가 온전한 절반만 가졌을 때, 나머지 절반을 가진 쪽이 힘을 키워서 내가 가진 절반을 빼앗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내가 그나마 존중받는 것은 전체를 쥐고 있기 때문이며, 그렇지 않으면 나는 무너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다. 그러니까 공동체 전체가 손해 보는 일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망가진 전부를 택하는 것 아닐지.
이렇게 생각해보면, 풍요와 평화가 공존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고도성장이 이뤄지면, 내가 지닌 몫도 늘어나지만, 상대가 가진 몫은 더 빨리 늘어날 수 있다. 상대가 내 몫을 빼앗으리라는 공포가 있다면, 공동체가 망가지더라도 내가 전부를 갖는 길을 택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은 이처럼 힘든 일을 해낸 경우였다. 폭발적인 성장이 이뤄지는데, 공산당 내의 권력은 적당히 나뉘어 있었다. 조각난 권력끼리 적절히 견제하며 평화롭게 공존했다. 풍요와 평화가 함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중국 권력 지도부는 이제 시진핑 1인 체제로 굳어졌다. 몇 개의 파벌이 권력을 분점하며 경쟁하던 전통이 끝난 것이다. 이런 변화가 중국 내부의 문제로 그칠 리는 없다. 중국 경제가 더 성장할 수 있지만, 권력에 금이 가는 선택, 그리고 중국인들이 더 잘살 수 없어도 권력은 더 단단해지는 선택. 1인 체제를 완성한 입장에선 후자로 기울기 쉽다.
중국 경제의 고도성장은 중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했으므로 가능했다. 다른 선진국이 원자재와 중간재를 중국에 팔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는 중국 기업이 조립해서 미국과 유럽, 일본, 한국 등에 다시 팔았다. 중국의 인건비가 낮게 유지됐으므로, 중국 기업은 높은 수익을 냈고 자본을 축적했다. 중국에 공장을 넘긴 선진국 기업도 만족했다. 원가를 낮췄으므로, 경쟁에서 더 유리해졌다. 그렇다면, 공장이 사라진 탓에 일자리를 잃어버린 선진국 노동자들은 어떻게 됐나. 전보다 살기 힘들어졌다. 청년 세대 역시 전보다 취업이 어려워졌다. 실제로 중국이 고도성장을 하는 시기와 선진국에서 양극화가 심해진 시기는 겹친다.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 질서에 중국이 편입된 대가였다. 중국과 미국 모두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개혁개방 이후 최근까지 중국의 국내총생산은 9배 가까이 늘어났다. 중국이 생산한 값싼 생필품이 미국 등 선진국에 공급되므로, 선진국 청년과 노동자들이 낮은 소득으로도 살아갈 수 있었다. 심각한 양극화에도, 분노가 폭발하지는 않았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불안이 줄어들므로, 선진국 정부는 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묶어둘 수 있었다. 중국 기업이 값싼 생필품을 팔아 벌어들인 달러 자산은 미국 금융시장에 흘러갔다. 금융 팽창을 위한 조건이 갖춰진 것이다. 그 덕분에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하는 중산층이 크게 늘었다.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자산 시장에 거품이 끼었다.
이런 구조가 깨진 것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였다. 중국 공산당은 그동안 잘 작동했던 세계화 질서에 균열이 생겼다고 여겼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인건비가 쌌던 탓이다. 그런데 중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했으므로, 인건비를 계속 싸게 묶어둘 수 없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계속하기란 어려워졌고, 그 역할을 한다고 해도 큰 이익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그렇다면, 중국은 이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나.
그 답은, 권력투쟁에서 이기고 1인 체제를 완성한 시진핑이 제시할 것이다. 시진핑이 내놓을 답은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두 가지는 분명하다. 첫 번째는 지금껏 중국의 고도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미국 주도의 세계화 질서를 계속 따르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1인 체제에 대한 도전도 허용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중국 경제가 새로운 질서로 이행한다면, 한동안 성장 속도가 더뎌질 수밖에 없다. 고도성장의 낙수 효과 덕분에 잠잠했던 갈등이 떠오르게 된다. 이런 갈등을 평화적이고 민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질서는 없다. 견고한 1인 체제는 강압적으로 갈등을 짓누르려는 선택 외에 다른 길을 찾지 못할 것이다. 요컨대 시진핑은 망가진 전부를 갖기로 했다.
최근 출간된 최병천의 책 <좋은 불평등: 글로벌 자본주의 변동으로 보는 한국 불평등 30년>은 한국 경제가 중국과 얼마나 긴밀하게 엮여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난 30여 년 동안 한국 경제가 성공했던 주요 이유는 중국에 대한 수출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중국이 이제까지와는 다른 길을 가기로 했다. 한국은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있다. 한국 사회 역시 온갖 갈등을 안고 있다. 이 같은 갈등이 폭발하지 않았던 것은, 고도성장의 낙수 효과와 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중국이 망가진 전부를 갖기로 하면, 우리 역시 경제의 많은 영역이 망가진다. 그동안 잠잠했던 갈등이 곧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중국과 달리, 한국은 강압으로 갈등을 누를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갈등을 풀지? 이젠 정말 미룰 수 없는 질문이다.
글. 성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