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기 전에 후기를 많이 찾아보는 편이다. 좋아하는 감독의 신작은 후기와 상관없이 대부분 보긴 하는데, 다른 이들의 평이 별로 좋지 않으면 어쨌든 꺼려지는 건 사실이다. ‘나만 좋으면 되지!’는 건강한 마인드라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후기 없이 봤다가 영락없이 시간과 돈을 낭비한 때가 적잖이 있었기 때문에, 후기 사전 조사(‘후기를 사전에’라니, 묘한 아이러니가 느껴진다)를 그만두기가 쉽지 않다.
반대로 후기를 너무 믿은 나머지 볼 생각도 안 하다가 뒤늦게 봤더니 예상보다 괜찮았던 영화도 있다. 지금 생각나는 건 <반도>와 <외계+인 1부>. <반도>는 저주에 가까운 악평이 쏟아지는 사태를 보고 ‘와, 절대 보지 말아야지.’ 다짐했다가 몇 개월 뒤에 봤는데 생각보다, 정말 생각보다 재미없지 않았다.(재미있었다고는 차마 말 못함) <외계+인 1부>는 호, 불호 중 호에 가까울 정도라 내가 유치한 걸 꽤 잘 견디는 타입이구나 싶기도 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허술함이 있고 허무맹랑해서 코웃음 치게 만드는 장면도 있지만, 영화든 책이든 새로운 시도가 끊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최근에는 <바빌론>이었다. 어차피 볼 생각이었지만, 예상치 못하게 평이 너무 갈렸다. 러닝타임이 세 시간이 넘는지라 섣불리 예매도 못 하고 있다가 며칠 전에 의리로 보자는 심정으로 극장으로 갔다. 보고 나오며 생각했다. ‘그래, 역시 나만 좋으면 된다.’
<부기나이트> 생각도 나고 <나이트메어 앨리> 생각도 났는데, 무엇보다 이 감독 영화 진짜 사랑하는구나 싶었다. 사랑에는 애정만 있지 않다. 미움도 있고 증오도 있고 가여움도 있고 그리움도 있다. 꿈을 찾아 LA에 온 <바빌론>의 주인공들은 그토록 갈망하는 할리우드에 몸과 마음을 던진다. 그 마음들이 다다른 끝은 각기 다르지만, 지옥이든 천국이든 끝을 맺어주는 게 구원이라 한다면 그들은 분명 영화를 통해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나에게 더럽고 노골적인 구원의 러브레터로 읽혔다. 살다 보면 ‘더러운’이 ‘러브레터’를 수식할 때도 있다. 그 안에 담긴 사랑은 날것이니까.
글. 원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