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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Dec 23. 2019

[스페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없다면>

올해의 책


글 이다혜     


미래에서 온 동시대의 작가

2019년을 살아서 좋은 이유 중 하나는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동시대의 책으로 접했다는 것이다. 나는 올해 몇 번이나 이 소설집으로 책 읽기 관련 강의, 혹은 강연을 진행했다. 어떤 때는 제목만 듣고도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체로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과 제목에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단편의 줄거리를 간단히 들려주면 “책 제목이 뭐였죠?”라는 질문이 돌아오곤 했다. 나는 결말은 이야기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그들 중 다수가 결말을 들춰보기 위해서라도 책을 대출하거나 구입했으리라고 짐작한다, 아니 그러기를 바란다. 

한국에서 지금 가장 주목받는 장르를 꼽으라고 하면 출판계에서는 아무래도 SF를 꼽게 된다. 영화나 드라마를 포함한 영상물 쪽으로 오면 꼭 그렇지는 않다. 한국 SF 영화나 드라마 제작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 소심한 단계에 있다. 생각만 있고 행동은 전무한. 그런 의미에서 출판계는 놀랍게도 빠른 속도로 SF소설들을 펴내고 있다. <오늘의 SF>라는 SF전문 무크지도 창간되었다. 그리고 김초엽은 첫 소설집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공동수상했다. 가장 오랫동안 존재해온 미디어인 책이 향유자들을 가장 멀리까지 실어 보내고 있는 현장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집에서 어떤 작품을 먼저 읽으면 좋은지 묻는다면 <관내분실>을 추천하겠다.      





김초엽그라서…     

김초엽 작가는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2018년) 중단편 부문에서 <관내분실>로 대상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가작을 동시에 받으며 데뷔했다. <관내분실>은 망자의 생애를 담은 데이터인 ‘마인드’가 보관된 도서관을 찾은 주인공 지민이 어머니의 마인드가 분실되었음을 알게 되며 시작된다. 관내분실은 도서관 내에서 분실된 열람물을 뜻하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가 삭제 신청을 했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우울증으로 인한 어려움만을 기억하는 지민은 임신을 한 참이고, 생전에 가깝지도 않았던 어머니의 마인드를 복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강하게 느낀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아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관내분실>이 마음에 든다면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도 좋아하게 되리라. 무언가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 닿을 수 없다는 것. 이것은 장르를 불문하고 사랑과 그리움을 소재로 하는 많은 이야기의 공통점이 될 텐데, SF라는 장르는 거기에 빛보다 빨리 갈 수 있다 해도 가닿을 수 없는 거리를 부여하고, 수수께끼 같은 170살의 노인 안나가 우주 정류장에서 애틋한 썰을 풀게 한다(<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한편으로는 젊은 작가가 썼다고 생각하고 읽어서인지 그 모든 것이 낭만화되어 있지 않은가(동화를 읽을 때의 감정을 닮은 인상) 생각되기도 하지만, 잠시 스치는 의구심과 무관하게 다 읽은 뒤에는 이 이야기와 같은 꿈을 꾸고 싶다는 생각에 잠기는 것이다. 그 꿈에서 우리는 상실한 것을 회복하리라는 희망을 얻고야 말 테니까.      


그와 동시대를 살아서나는 다행이다

어쨌거나 나는 김초엽의 소설을 앞으로 오랫동안 읽을 작정이고(김초엽 작가가 부지런히 써주기를 바랄 수밖에!) 어떤 이야기들을 읽고는 다음에 더 확장된 혹은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감정의 물성>. 이 소설 속의 세계는 지금 여기와 몹시 닮아 있는데, 수상쩍은 물건이 인스타그램에서 호들갑스러운 반응을 얻으며 인기리에 팔려나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특히 그렇다. 이 세계에서는 감정 자체를 조형화한 물건이 판매되고 있는데 비누, 향초, 패치 등의 종류가 있으며, 온갖 감정이 이렇게 유통되고 있다. 그런데 설렘, 편안함 같은 긍정적 속성이 강한 감정체뿐 아니라 증오, 분노를 포함한 부정적 감정 역시 잘 팔린다. 왜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마저도 필요로 하는 것일까? 물성이란 실제로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가? <감정의 물성>의 결말은 갑작스럽지만, ‘더 나은 결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삶은 단 한 번의 것. 시험 삼는 것은 없다. 김초엽의 주인공들이 지닌 조심스러움이 얼마나 마음에 드는지. 그러니 2019년에 살아서 좋은 이유는 어쩌면 김초엽의 첫 소설집을 동시대의 책으로 접했다는 것 하나뿐인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다혜  <씨네21> 기자, 북칼럼니스트. 팟캐스트 <이다혜의 21세기 씨네픽스>, 오디오클립 <이수정·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 진행. <출근길의 주문>,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튼, 스릴러> 등을 썼습니다. 


위 글은 빅이슈 12월호 21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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