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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Dec 23. 2019

[일러스트 에세이] 고양이에게 간택받기까지


글·그림 박정은       

 




어느 날부터인가 내 일과 중 하나는 인터넷을 켜고 우주 대스타 고양이나 혹은 유명하진 않지만 내가 계속 지켜보고 궁금해하는 고양이들의 SNS에 들르는 일이었다. 꼭 내가 직접 알고 있는 고양이처럼 생각되어, 같이 그 고양이를 알고 있는 친구를 만나면 “너 오늘 누구 봤어?” 하며 고양이로 대화를 이어가기도 하고, 나만 고양이 없다며 내 고양이를 꿈꿨다. 

내가 주로 팔로잉하고 있는 동물 관련 계정에는 잃어버린 개, 고양이를 찾는 광고, 입양 공고, 임보 광고들이 종종 올라오곤 했다. 눈에 밟히는 고양이에게 입양신청서를 보내보기도 했지만 내 신청서는 반려되었다. 신청서 속의 나는 타인이 보기에 동물을 기를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경제력, 거주 환경, 동거인, 시간, 생명에 대한 책임감과 의지 등 많은 조건들을 채우기 부족했던 모양이다. 나만 좋자고 생명을 집으로 데려올 수 없는 일이니 입양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나 혼자도 책임지지 못하고 있는데 내가 누굴 책임져, 여건이 나아지면 그때 생각해보자고… 그런 날이 언제 올진 모르지만 말이다. 

내가 계속해서 고양이를 그리는 걸 보고 어떤 사람들은 이미 내가 고양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주변인들은 내가 고양이 입양을 고민하고 있다는 걸 그림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끔씩 입양을 기다리는 고양이, 파양을 하려는 고양이 등의 소식은 나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졌고 그때마다 수입원이 불안정했거나 동물을 입양할 만한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아 사진을 자세히 보지도 않았고 바로 거절했었다.

어느 날 사촌동생이 피망만 한 새끼 고양이 사진을 보내왔다. 털이 푸슬푸슬한 게 꼭 아기의 배냇머리 같았다. 임시보호 중인 고양이가 입양 갈 곳을 찾고 있다고 입양 의사를 물어왔고, 내 고민은 시작되었다.

처음엔 ‘난 안 되겠지, 난 아직 안 될 거야’, ‘나는 자격이 없으니 선뜻 나서면 안 될 거야’ 그리고 고양이도 ‘내가 좋아하는 노랑이도 아니잖아’ 동생은 시간이 있으니 생각해보라며 사진을 계속해서 보내왔다. 귀여웠다. 새끼 고양이의 귀여움보다는 성묘가 더 좋을 거 같다는 막연한 생각은 점점 흐려졌다.

이 새끼 고양이는 자꾸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새끼는 자기 상황이 어떤지를 고민하거나 걱정하지 않는 얼굴로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소식을 알려온 지 2주 만에 입양을 결정했다.

고양이에게 필요한 용품은 인터넷 쇼핑으로 사고, 집 안의 모든 위험요소를 제거했다. 아기 고양이니까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화분도 사무실로 옮기고, 식물의 벌레를 없애려고 산 농약, 집 주변에 바르려고 산 초강력 벌레 퇴치제, 높은 데서 떨어트릴 만한 작은 장식물들도 싹 치웠다. 창문틀에 앉을 수도 있으니 이사 와 처음으로 창틀 청소를 하고, 방충망을 밀어 열고 나갈 수 있으니 안전 잠금장치를, 현관엔 방묘문을, 인덕션을 켜 화재 사고가 났다는 기사가 떠올라 케이블 정리함을 사 전선을 정리했다. 그동안 걸레질만 하던 집을 청소기를 구매해 구석구석 먼지를 없앴다. 일단 보이는 곳은 최대한 안전하게 만들었다.

소셜 네트워크 속 고양이는 귀여움만을 보여줬다. 예쁘게 야옹야옹 말하고, 귀엽게 점프하고 졸린 표정을 짓는 고양이. 현실 속 고양이는 밤새 놀자고 이불 밖으로 나온 내 손과 발 다리를 물고 할퀴었다. 그러다 내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혼자 뛰어다니다 뭔가를 떨어트리고 봉투를 뒤집어쓰고 천둥소리를 냈다. 어디서 난 끈인지 모를 끈에 걸려 포효하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풀어주다가 손을 물어뜯기거나 손바닥에 고양이 발톱 자국을 가지게 되었다. 

화장실 세면대의 물을 틀어놓고, 두루마리 휴지를 화장실에서부터 물고 나와 내 옆에 잔뜩 쌓아놓기도 했다. 고양이 화장실과 집의 화장실을 다 좋아해서 여기저기 뒹굴다 그 몸 그대로 이불 위에도 올라오고, 점프해 가끔 싱크대도 뛰어오른다. 일주일에 한 번 하던 화장실 청소도 수시로 하게 되었다. 

내 이불 커버는 갈기갈기 찢어졌고, 벽지에는 흠집이 곳곳 생겨났다. 이가 나는 아기 고양이는 바늘로 찔러놓은 것과 같은 구멍을 책상, 책장, 책, 각종 종이상자, 빨래통 등에 만들어놨다. 물론 이갈이 장난감이 있었지만 그런 건 씹는 맛이 덜했는지 물지 않았다. 그 대신 내가 방심하고 있을 때면 언제고 손과 팔, 다리를 공격했다. 따라다니며 종아리나 발을 공격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팔과 다리, 손은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나는 열심히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바르며, 파상풍 주사를 맞기를 너무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고양이는 그 시기의 새끼가 형제나 엄마 고양이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까. 

출근할 땐 문 앞에 나와 애옹 하고 울고, 퇴근 후 집에 들어가면 문 앞에 픽 쓰러져 나를 맞이해주고 손으로 얼굴을 만지라고 얼굴을 들이민다. 그럼 그 손에 머리를 기대고 누워 그르렁 좋다고 소리를 낸다. 화장실에 따라와 손 씻는 나를 재촉하며 “왜요 왜요” 소리를 내며 놀아달라고 자기 장난감을 물고 와 계속 울다, 내 손에 콩이가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이 들리면 그제야 멈춘다.

콩이가 집에 온 이후 정신없이 시간이 갔다. 고양이와 살아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서 종종 들었다. ‘고양이는 혼자서도 잘 지내’, ‘고양이는 독립적이라 외로움을 안 타’, ‘고양이는 기르기가 쉬워’, ‘고양이는 주인을 몰라’. 이런 말들은 어디서부터 온 말일까? 가까이 가고 궁금해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알기 어렵다.

내가 한 생명을 거둔다고 생각하고 데려왔지만 지금은 나는 콩이에게 구원받은 새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양이 교리를 배워가면서 말이다.        


박정은  

일러스트레이터. <식물저승사자>, <1982 야구소년> 등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위 글은 빅이슈 11월호 21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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