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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Dec 23. 2019

[소셜] 끝나지 않은 이야기


 Hannah Herner  번역 번역협동조합  기사제공 INSP.ngo     





레이첼 로즈(Rachel Rose)는 또래의 젊은이들과 다르지 않다. 어머니와 한집에서 살며 여러 일을 하고 틈틈이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음악 활동을 한다. 이렇게 평범해 보이는 그녀에게는 특별한 한 가지가 있다. 레이첼이 열여덟 살에서 스물한 살까지 노숙자로 지냈다는 점이다. 그 시간의 흔적이 아직 일상의 구석구석에 남아 있지만, 레이첼은 힘들었던 그 시기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긍정적인 태도였다고 생각한다.


스물네 살의 레이첼 로즈는 어머니와 함께 내슈빌에서 15분가량 떨어진 동네의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차를 사고 싶은 레이첼은 주유소 근처의 소닉(햄버거 체인)과 와플하우스(와플과 해시 브라운 등의 메뉴를 판매하는 체인)에서 번 돈을 열심히 저축하고, 월요일 밤이면 가까운 번화가에서 친구들과 모여 <던전 앤 드래곤>을 플레이한다. 비록 요즘 곡이 잘 써지지 않아 괴로워하지만 레이첼은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레이첼은 내슈빌에서 노숙자 생활을 했던 당시 <더 컨트리뷰터(The Contributor)>를 판매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점이 있어요. 노숙자가 거리 생활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집 없이 떠돌던 그 시간이 평범해진 삶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그는 2013년 노숙 당시 무단침입으로 부과된 벌금 때문에 운전면허 결격 대상이 되었다. 벌금을 납부하고 자격을 회복해야 하지만 현재는 돈이 없다. 운전면허가 있으면 레이첼은 더 좋은 조건의 일을 구할 수 있고, 또 공개 무대에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 


레이첼은 뉴욕 주 뉴팔츠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폭력적이었던 아버지가 두 모녀의 생명을 위협하는 지경이 되자 어머니와 함께 테네시 주 녹스빌로 도피했다. 레이첼이 열여덟 살이 되던 해였다. 한 친구가 간신히 한 명 정도에게는 숙식을 제공할 수 있다고 했지만 두 명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레이첼은 여러 가지 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가 그 집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레이첼 자신은 길 위에서라도 살아남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그래, 언제나 캠핑을 하고 싶었잖아. 거리에서 먹고 자는 게 캠핑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어?’” 레이첼은 말한다. “이런 태도가 제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 된 것 같아요. 가능한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내슈빌에서의 생활은 레이첼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뉴팔츠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런 아늑함을 이런 대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어요. 외곽으로 조금 벗어난다고 해도 마찬가지죠. 작은 마을에서 살다가 테네시 같은 큰 도시 한가운데로 와서 결국 거리에 나앉게 되었을 때 제가 받은 충격이 상상이 되시겠죠.”





노숙 생활 동안 레이첼은 어딘가 소속될 곳을 찾아야 했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누군가는 폭력적인 남자 친구이거나 혹은 ‘나쁜 패거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레이첼은 자신 앞에 놓인 선택지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나은 선택을 했다고 말한다. 노숙촌에 사는 동안 <더 컨트리뷰터> 판매 수익금과 버스킹으로 모은 돈은 레이첼과 함께 지내는 사람들이 먹을 음식이나 생필품을 사는 데 쓰였다. 한편 레이첼의 어머니는 섹션8(연방정부 거주비 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했고 1년 6개월 이상을 기다린 끝에 수혜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레이첼은 친구들이 마약 유혹을 잘 뿌리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고집스럽게 친구들을 쫓아다니곤 했다. “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는 조금 특이한 경우였어요. 마약이라고는 한 번도 손댄 적이 없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약이 어떤 짓을 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어요. 저는 마약을 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아요. 저 완전 이상하죠!” 레이첼은 소리 내어 크게 웃는다.     


당시 레이첼은 베트맨 로고가 박힌 후드티를 자주 입었다. 다른 노숙자들은 레이첼을 베트걸이라고 부르면서 과장을 약간 섞어 ‘사이코 킬러’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하나의 에피소드이지만, 스스로를 지켜내는 사람으로 보였던 것 같아 그러한 평가에 고마움을 느낀다. 노숙자 생활 동안 몸도 많이 망가져서 척추측만증, 관절염, 호흡곤란, 골절 후유증, 조울증, 불안장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다. 이 모든 증상은 노숙 생활을 하면서 나타나거나 악화되었다.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를 어떻게 해치려고 하지? 뭘 훔쳐 가려고 하지?’라고 경계하는 습관을 고치는 방법을 배우고 있어요.” 레이첼은 말한다. “벌써 4년 전 이야기가 되었지만, 저는 아직도 평범한 생활에 익숙하지 않아요. 아직 더 적응해야 하죠.” 


지금은 거리에서 생활했을 때보다 훨씬 안전한 곳에서 살지만, 도시 외곽에 위치한 섹션8 아파트에서 내슈빌 시내에 있는 저소득층 지원 기관까지 이동하기는 쉽지 않다.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도 30분이나 걸어야 도착할 수 있다. 무대가 있는 곳까지 갈 수 있는 대중교통 수단이 생기는 것이 레이첼의 바람이다. 레이첼은 앨범을 만들기에 충분한 양의 곡을 만들었고, 이 노래들을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레이첼은 무대가 끝나고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유명세에는 관심 없어요. 진짜로요. 제 음악은 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연결하고, 소통하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죠. 무대가 끝나면 관객 중 누군가 와서 눈물을 보이며 고맙다고 말해요. 어떤 분은 저에게 와서 ‘감사합니다. 사실 오늘 밤 삶을 끝내려고 했는데 지금은 생각을 바꿨어요.’라고 자신의 속내를 이야기한 적도 있었어요.” 레이첼은 그때를 회상하며 말한다. “아마도 제게 영감이 되는 것들에 대해 노래하면 그것이 사람들에게 위로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노래를 듣기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떠오르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고,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또 어쩌면 제가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할 수도 있어요.” 


거리에서 지내는 여성들은 공격의 대상이 되기 쉽다. 레이첼에게 한때 그녀가 지냈던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테이블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함께해야 해요. 그리고 서로를 해하지 마세요. 당신만큼 어떤 것이 필요한 사람에게서 그것을 빼앗지 마세요. 그리고 문제는 당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세요. 당신은 문제로 인한 증상일 뿐이니까요. 누가 어떤 말을 하든, 당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에요. 그리고 언젠가 그곳을 나올 수 있어요. 물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의지도 있어야 해요. 그 과정이 쉽지 않을 거예요. 사실 너무너무 어려워요.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 아니니까 그때까진 그냥 캠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즐기는 거죠.”     






빅이슈 코리아는 INSP(International Network of Street Papers)의 회원으로서 전 세계의 뉴스를 전합니다.     


위 글은 빅이슈 11월호 21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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