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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Dec 23. 2019

[포토 에세이] 파란색 지옥


글·사진 홍윤기     





지난 9월 말 홍콩 범죄인을 중국 본토로 인도하는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를 취재하기 위해 홍콩에 방문했다.

9월 28일 오후 7시쯤 홍콩 도심 애드미럴티 공원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5년 전 우산혁명의 주역 조슈아 웡 등이 참석한 행사가 열렸고 근처 정부청사 인근 도로에서는 일부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고 있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최루가스로부터 몸을 방어하기 위해 방독면을 쓰고 있었고 몇몇의 손에는 우산과 레이저가 들려 있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취재진과 응급 상황을 대비하는 구조대원들의 수도 상당했다. 

시위대와 경찰이 크고 작은 마찰을 반복하던 중 경찰 살수차가 파란색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물대포는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을 덮쳤고 나는 그러한 모습들을 사진에 담자마자 건물벽에 붙어 몸을 숨겨야 했다. 머리 위로 파란색 거친 물줄기가 지나가자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찰나의 순간이 지나가고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엔 파란색 지옥이 펼쳐졌다. 온몸이 파란색으로 뒤덮인 사람들, 눈을 뜨지 못한 채 비틀거리는 기자들, 이를 돕는 사람들과 그 모습을 찍는 사람들까지 아수라장이었다. 텅스텐 가로등이 비추는 바닥에는 파란색 물이 곳곳에 고여 있었다. 어느 정도 상황이 진정되자 경찰들은 곤봉과 방패를 들고 시위대를 향해 뛰어왔고 대부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한참을 뛰어간 후 골목길, 건물, 지하철역 곳곳으로 흩어져 옷을 갈아입고 버스나 트램 등에 은신했고 경찰들은 검문을 위해 계속해서 쫓아갔다.

올해 3월에 처음으로 시작된 이번 시위는 법안 2차 심의를 진행했던 6월부터 1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참여하며 대규모로 확대됐다. 이를 기점으로 경찰들의 과잉진압이 시작되며 고무총과 최루탄 등이 사용됐고 부상자와 체포자가 속출했다. 그 과정에서 어느 여성 참가자가 한쪽 눈을 실명했고 시위가 격화되자 9월 4일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은 결국 송환법을 철회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폭도 규정 사과 및 행정장관 직선제 도입 등 민주화 확대를 요구하며 다시 거리로 나온 것이다.

이 시위를 기점으로 시위 열기도 사그라들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위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10월 1일 시위에 참여한 고등학생이 경찰이 쏜 실탄을 맞고 중태에 빠졌다. 홍콩 당국은 시위 참가자들이 마스크, 방독면 등 얼굴을 가리지 못하게 하는 복면 금지법을 발표했고 시민들은 이에 맞서 계속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날 내가 취재를 위해 입었던 형광색 조끼 위 태극기를 본 한 고등학생이 나에게 다가와 “한국 사람들에게 홍콩 상황을 꼭 알려달라.”며 간절하게 부탁했다. 한국에서 돌아와 홍콩에서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며 그 의 목소리를 다시 떠올렸다. 잠시 지나가는 국제 뉴스로만 소비되고 있는 홍콩의 현실에 대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만, 이 글을 적으며 이렇게 속으로 되뇔 뿐이다. 당연한 것을 주장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폭력으로 묻히는 현실이 얼마나 부당한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겨우 30여년 전에 우리가 겪었던 일이고, 지금도 한국 시민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촛불을 들고 서초나 광화문 앞으로 모이고 있지 않은가. 홍콩의 민주화를 위해 위험함을 무릅쓰고 길 위로 나선 시민들의 안전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들이 더는 고통 받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낸 후 일상으로 안전히 복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진으로 기록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여기에라도 옮겨두는 것 뿐. 그리고 홍콩 밖에서도 그곳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만이 힘을 더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홍윤기

2015년 민중총궐기를 시작으로 탄핵 정국, 홍콩 시위 등 크고 작은 사회 이슈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한 장의 사진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위 글은 빅이슈 11월호 21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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