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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밭골샌님 Mar 28. 2024

골목길 야생화 15 복수초

슬픈 추억, 혹은 영원한 행복이 담긴 황금잔


복수초(福壽草)


신문이나 방송에서 겨울이 채 가기도 전에 번째 화신(花信)을 전할 때 등장시키는 단골 모델들이 있습니다.

남쪽 바닷가나 섬에서 자라는 붉디붉은 동백꽃, 혹은 제주 한라산이나 강원지역 산골짜기의 눈 속에서 핀 황금빛 복수초가 그 모델 중 스타들이지요.


눈이나 얼음을 뚫고 나온 모습이라야 제대로일 텐데요. 그건 달포 전쯤가능했어요.

오늘 비 소식이 있으니, 도심의 복수초도 혹 끝물이 될 수 있겠다 싶어 서둘러 소개합니다.


이게 요즘은 웬만한 수목원이나 야생화원, 심지어는 공원에서도 볼 수 있어요. 식물을 잘 키우는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인 그린썸(green thumb)들도 화분에 심어 키울 정도로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황금잔처럼 생긴 복수초 꽃.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꽃의 생김새가 황금잔 같죠?

겨울의 햇빛을 반사시켜 조금이라도 더 몸을 덥히기 위해 파라볼라 안테나처럼 오목한 모양과 황금색을 가졌다도 해요.


요즘 세상의 그 원수를 갚겠다는 복수(復讐)가 아니고요.

한자로 복 복(福) 자에 목숨 수(壽) 자.

복 많이 받고 오래 살라는 행운을 비는 뜻이 담겨 있어요. 예쁜 모습에 이름까지 덕스러우니 인기를 끌 요소는 다 갖춘 셈이죠..


정월 초하룻날부터 핀다는 뜻으로 원일초(元日草), 눈 위의 연꽃이라는 뜻의 설련화(雪蓮花),

노란 꽃이 마치 황금 잔 같다 하여 측금잔화(側金盞花). 눈을 삭히며 핀다 하여 눈색이꽃. 얼음 사이로 핀다 하여 얼음새꽃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는데요. 

우리말 얼음새꽃이 훨씬 이쁘군요. 생태적 특징과 음운이 잘 어울려 많은 시인들이 이 이름으로 노래해요.



얼음새꽃 / 김길자


마음이 급해서일까
산기슭 바위틈에 몸 사리며
꽃대도 없이 덩그러니
살얼음 위에 몸을 풀고 있다.


찬바람 윙윙 울어도
꽁꽁 얼었을 마음 달래며 따뜻한 숨결로
꿈을 아늑하게 키운 복수초.


밤이면 입 꼭 다물었다
날이 밝아오면
해님 같이 웃는 샛노란 얼굴
눈물겹다.



학명은 Adonis amurensis인데요.
앞의 속명인 아도니스'Adonis'는 그리스 신화의 미소년 바로 그  Adonis.
종소명인 'amurensis'는 복수초의 처음 발견지가  만주지방의 아무르강이라는 걸 의미합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의 애인이 바로 가장 잘생긴 미소년  아도니스입니다. 사냥을 좋아하는 아도니스. 아프로디테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마주 오는 사냥감은 잡지 말라는 그녀의 충고를 잊고 사냥하다 멧돼지에게 받혀 죽어요. 아프로디테가 슬퍼하며 연인이 흘린 피에 신들의 음료인 넥타를 붓자,  자리에서  피처럼 붉은 꽃이 피었어요. 그 꽃 이름이 아네모네 꽃.


그런데, 이 꽃이 복수초라고도 해요. 유럽 원산의 복수초 중 여름과 가을 복수초는 아네모네 꽃처럼 답니다. 아도니스의 피에서 나온 꽃이라는 전설에 따라 학명을 지었을 수도 있겠고요. 


<아도니스의 죽음>,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 작. 가장 왼쪽의 남자가 아도니스, 가운데 여인이 에로스와 함께  있는 아프로디테. 사진= 존 제인님 블로그.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

깊은 산 속 그늘진 곳에서 자랍니다.

키는 25㎝ 가량. 잎이 어긋나며 깃꼴로 잘게 갈라져요.


꽃은 광택 있는 노란색, 황금빛이죠. 지름은 3~4cm. 한낮에만 피우고 밤이면 꽃잎을 오므립니다. 원줄기와 가지 끝에 1 송이씩 달려요.

꽃잎은 20~30장. 수술이 참으로 많아요.


꽃받침이 8장이면 복수초, 5장이면 개복수초로 분류합니다. 복수초는 꽃이 잎보다 먼저 나오고요.

개복수초는 잎이 꽃보다 먼저 또는 동시에 나옵니다.


열매는 6~7월경에 별사탕처럼 울퉁불퉁하게 달립니다.

여름철 고온이 되면 고사(枯死)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겨울을 기다리는 잠복 모드로 돌입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에는 3종류가 보고되어 있어요.

‘복수초’, ‘개복수초’, 제주도에서 자라는 ‘세복수초’,

도심에서 볼 수 있는 건 거의 개복수초입니다.


한국,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요.

유독성 식물로 진통제, 강심제(强心劑)·이뇨제(利尿劑)로 사용해요.


얼음 사이에 핀다는 얼음새꽃, 눈을 삭히며 핀다는 눈색이꽃임을 증명하는 모습.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복수초 꽃은 일본인들이 매우 좋아해 설날에 주고받는 귀한 선물이랍니다. 원일초라는 이름에 따른 풍속이겠죠.

꽃말은 서양에선 ‘슬픈 추억’, 동양에선 '영원한 행복'.

같은 꽃을 두고도 동서양의 눈은 이토록 다릅니다.

하긴 애초 아도니스의 슬픈 전설이 얽힌 꽃복과 수명을 기원하는 행운의 꽃만큼의 차이겠지요.


이상원 시인은 ‘복수초’에서

‘추운 겨울 속/ 기나긴 어둠과 외로움/ 혼자 견디어 내더니// 목숨처럼/ 간직한 꿈 하나/ 담금질하여/ 세월보다 무겁게 쌓인 눈/ 가까스로 밀어내고// 눈부신 세상/ 기쁨으로/ 미소 짓는 그대.ᆢ‘라고 노래했어요.


어쨌거나, 이 봄 귀하의 마음속에 있는, 복수초처럼  빛나는 황금잔이 기쁨으로 흘러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어떤 꽃을 찾기 위해 신발 끈을 졸라매는 전국의 야생화 동호인 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저는 많은 동호회 가운데 무늬만 회원인 '들꽃사랑연구회' 밴드에 오래전 가입했는데요. 바라보기만 하는 '눈팅족'이라 기여하는 게 제로인데도 방출당하지는 않았어요.


골목길 야생화를 연재하며 수많은 분들께 신세를 지고 있는데요.

특히나 사진은 들꽃사랑연구회에서 거의 훔쳐오다시피 하는 남모를 피해를 끼치고 있습니다.


들꽃과 나무는 좋아하지만, 산과 들에 마음껏 갈 수 없는 여건에서 살다 보니 눈팅족이 되었고요. 무엇보다 고수님들이 즐비한 이 밴드에선 그저 보고, 읽고, 나누는 대화 듣는 것 만으로 공부도 되고  혼자 즐기기에도 충분했습니다.


멀리 산행을 하기 어려우니, 골목길 산책이라도 하며 만나는 꽃들이 제게는 귀했습니다.

고수님들로부터 귀동냥한 꽃들을 보면 더 반가웠지요.

골목에서 만난 꽃 사진에 글을 덧붙여 몇몇 카톡 대화방에 올리는 일도 즐거웠습니다.


단톡방 지인들께서는 제가 야생화 전문가인 줄로 오해하고 많은 사진과 질문을 올리더군요.

자연스레 도서관을 찾거나 책을 구입해 식물학 또는 야생화 고수  흉내를 냈습니다.


해가 갈수록 글의 길이는 길어지는데, 사진과 문자가 분리되어 전달되는 카톡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끼게 되었어요.

다른 매체의 필요성을 절감하던 중 브런치스토리를 알게 되어 불과 3주 전에 시작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스마트폰을 교체할 때마다 사진 자료는 뭉텅이로 사라지던데요. 그러다 보니 사진 만큼은 남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저작권과 관련해서 문제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문제의 소지가 있는 저작물을 발견하시거나, 그 당사자인 경우에는 언제든 알려주세요. 사과 말씀과 함께 즉시 내리겠습니다.


의정부시 평생학습원 공간에서는 매년 봄 가을에 야생화 강좌가 열립니다.

의정부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을 지내신 이명호 선생님께서 20년 넘게 하고 계신 재능 기부 강좌입니다.


이 강좌를 수료한 분들이 주축이 되어 들꽃사랑연구회  밴드가 결성되고, 야생화 탐사 활동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어요.


10여년 전, 이 강좌 통해 정통 야생화 공부를 할 기회를 얻은 건 제게 큰 행운이었지요. 삶이 풍요로워지고 행복하고 의미가 있어졌으니까요.


이 자리를 빌어 이명호 선생님과 모든 회원분들께 감사하다는 인사 말씀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2024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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