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나 방송에서 겨울이 채 가기도 전에 첫 번째 화신(花信)을 전할 때 등장시키는 단골 모델들이 있습니다.
남쪽 바닷가나 섬에서 자라는 붉디붉은 동백꽃, 혹은 제주 한라산이나 강원지역 산골짜기의 눈 속에서 핀 황금빛 복수초가 그 모델 중 스타들이지요.
눈이나 얼음을 뚫고 나온 모습이라야 제대로일 텐데요.그건 달포 전쯤에나 가능했어요.
오늘 비 소식이 있으니, 도심의 복수초도 혹 끝물이 될 수 있겠다 싶어 서둘러 소개합니다.
이게 요즘은 웬만한 수목원이나 야생화원, 심지어는 공원에서도 볼 수 있어요.식물을 잘 키우는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인 그린썸(green thumb)들도 화분에 심어 키울 정도로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황금잔처럼 생긴 복수초 꽃.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꽃의 생김새가황금잔 같죠?
겨울의 햇빛을 반사시켜 조금이라도 더 몸을 덥히기 위해파라볼라 안테나처럼 오목한 모양과황금색을 가졌다고도 해요.
요즘 세상의 그 원수를 갚겠다는 복수(復讐)가 아니고요.
한자로 복 복(福) 자에 목숨 수(壽) 자.
복 많이 받고 오래 살라는 행운을 비는 뜻이 담겨 있어요. 예쁜 모습에 이름까지덕스러우니 인기를 끌 요소는 다 갖춘 셈이죠..
정월 초하룻날부터 핀다는 뜻으로 원일초(元日草), 눈 위의 연꽃이라는 뜻의 설련화(雪蓮花),
노란 꽃이 마치 황금 잔 같다 하여 측금잔화(側金盞花). 눈을 삭히며 핀다 하여 눈색이꽃.얼음 사이로 핀다 하여 얼음새꽃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는데요.
우리말 얼음새꽃이 훨씬 이쁘군요.생태적 특징과 음운이 잘 어울려 많은 시인들이 이 이름으로 노래해요.
얼음새꽃 / 김길자
마음이 급해서일까 산기슭 바위틈에 몸 사리며 꽃대도 없이 덩그러니 살얼음 위에 몸을 풀고 있다.
찬바람 윙윙 울어도 꽁꽁 얼었을 마음 달래며 따뜻한 숨결로 꿈을 아늑하게 키운 복수초.
밤이면 입 꼭 다물었다 날이 밝아오면 해님 같이 웃는 샛노란 얼굴 눈물겹다.
학명은 Adonis amurensis인데요. 앞의 속명인 아도니스'Adonis'는 그리스 신화의 미소년인 바로 그 Adonis. 종소명인 'amurensis'는 복수초의 처음 발견지가 만주지방의 아무르강이라는 걸 의미합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의 애인이 바로 가장 잘생긴 미소년 아도니스입니다. 사냥을 좋아하는아도니스.아프로디테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마주 오는 사냥감은 잡지 말라는 그녀의 충고를 잊고 사냥하다 멧돼지에게 받혀 죽어요. 아프로디테가 슬퍼하며 연인이 흘린 피에 신들의 음료인 넥타를 붓자, 그 자리에서 피처럼 붉은 꽃이 피었어요. 그 꽃 이름이 아네모네 꽃.
그런데, 이 꽃이복수초라고도 해요. 유럽 원산의 복수초 중 여름과 가을 복수초는 아네모네 꽃처럼 붉답니다. 아도니스의 피에서 나온 꽃이라는 전설에따라 학명을 지었을 수도 있겠고요.
<아도니스의 죽음>,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 작. 가장 왼쪽의 남자가 아도니스, 가운데 여인이 에로스와 함께 있는 아프로디테. 사진= 존 제인님 블로그.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
깊은 산 숲속 그늘진 곳에서 자랍니다.
키는 25㎝ 가량.잎이 어긋나며 깃꼴로 잘게 갈라져요.
꽃은 광택 있는 노란색, 황금빛이죠.지름은 3~4cm.한낮에만 피우고 밤이면 꽃잎을 오므립니다.원줄기와 가지 끝에 1 송이씩 달려요.
꽃잎은 20~30장. 수술이 참으로 많아요.
꽃받침이 8장이면 복수초, 5장이면 개복수초로 분류합니다.복수초는 꽃이 잎보다 먼저 나오고요.
개복수초는 잎이 꽃보다 먼저 또는 동시에 나옵니다.
열매는 6~7월경에 별사탕처럼 울퉁불퉁하게 달립니다.
여름철 고온이 되면 고사(枯死)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겨울을 기다리는 잠복 모드로 돌입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에는 3종류가 보고되어 있어요.
‘복수초’, ‘개복수초’, 제주도에서 자라는 ‘세복수초’,
도심에서 볼 수 있는 건 거의 개복수초입니다.
한국,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요.
유독성 식물로 진통제, 강심제(强心劑)·이뇨제(利尿劑)로 사용해요.
얼음 사이에 핀다는 얼음새꽃, 눈을 삭히며 핀다는 눈색이꽃임을 증명하는 모습. 사진= 들꽃사랑연구회
복수초 꽃은 일본인들이 매우좋아해 설날에 주고받는 귀한 선물이랍니다. 원일초라는 이름에 따른 풍속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