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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밭골샌님 Aug 21. 2024

골목길 야생화 53 무화과나무(1)

꽃 없는 열매는 없음을 증명하는 나무


무화과나무(1)


빵집 하나로 대한민국의 이목이 집중되는 도시가 있습니다.
본점과 3곳의 지점이 모두 그 도시에만 있고, 외지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겠다는 게  빵집 최고경영자의 첫 번째 경영 원칙이라고 합니다.

이 때문 집 빵을 먹으려면 꼭  도시에 야만 합니다.
직원수만 1천 명, 하루 10만 개 이상의 빵과 케이크를 생산해 판매하고, 남은 제품은 사회시설 등에 기증합니다.

1년 매출액이 2023년 1,200억 원 돌파, 영업이익은 300억 이상으로 대기업 프랜차이즈를 누르고 업계 1위!
그야말로 빵 하나로 신화를 쓰고 있는 중이지요.

어느 곳인지 아시지요?
네, 성심당이 있는 대전광역시입니다.
대전광역시에 있는 성심당이라고 해야 맞지만, 브랜드 파워가 워낙 막강해서 성심광역시라고 개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랍니다.

본점은 물론 지점마다 구매 대기 줄이  한여름 한겨울에도 수십~수백 미터에 이릅니다.

건물주인 코레일유통의 임대료 3배 인상 요구로 대전역 지점이 철수될 수 있다는 뉴스에 국민 대다수가 성심당 편을 들고 있고요.

대전시장은 대전역 근처의 시 소유 건물을 내주겠다고 약속했답니다.
국토교통부, 국회 입법조사처 등 관련 기관들이 해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기한 만료일인 10월 말이 지나야 최종 결과를 알 수 있다는군요.

이처럼 성심당은 향토기업으로서 시민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1956년 밀가루 두 포대로 찐빵을 만들기 시작한 창업주로부터 70년 가까운 오늘에 이르기까지 2대에 걸쳐,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할 것'이라는 원칙을 지켜온 걸 목격한 시민들이 보내는 신뢰이기도 합니다.


성심당의 모토. 성심당 홈페이지 캡쳐.


성심당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그러니까 손 한 번 들고 발 한 번 옮기는 사소한 행위조차 전국적으로 실시간 화제가 되는 게 현실입니다.
최근 뉴스는 한 지점이 '안녕, 무화과'라는 신제품을 출시했는데, 이 또한 연일 매진이라네요.

마침 무화과나무를 소개할까 말까 끙끙 앓고 있는 중이었는데, 이 소식을 접했어요. 무화과나무가 야생화라고 하기엔 좀 그런 데다, 확보한 자료들의 사실 관계가 서로 어긋나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성심당 때문에 무화과 자체가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겠다 싶어  소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무화과(無花果 없을 무, 꽃 화, 과실 과)는 꽃 없이 맺힌 열매라는 뜻입니다.
열매는 보기도 하고 먹어보기도 지만, 꽃은 어찌 생겼는지 본 적이 없죠?
위대한 관찰자이자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도 꽃 없이 열매를 맺는 무화과나무에 대한 의문을 끝내 풀지 못했다고 합니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담과 이브가, 따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뱀의 유혹에 못 이겨 기어이 따 먹은 뒤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그때 부끄러운 곳을 바로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가렸다고 하지요.

그 정도로 오래된 나무.



무화과 열매가 익어가는 모습. 가운데 구멍에서 흰 즙이 나오기도 한다. 무화과나무속의 특징이기도 하다.


오늘날 무화과나무의 원산지는 서아시아와 지중해라는 게 정설입니다.
서아시아는 어디인가요?
현재 이스라엘- 하마스 간의 전쟁이 진행 중인 중동 지역이 포함되는 곳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때는?
일부 성서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기원전 4,000년, 지금으로부터 6,000년 전이라고 하는데요.

무화과나무 잎으로 중요 부위를 가렸다면, 무화과나무가 그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 뜻이겠죠? 온갖 꽃과 나무가 풍성한 에덴동산이었으니까요. 무화과나무는 성경에 60가까이 등장한답니다. 좋은 뜻보다는 그렇지 않은 쪽이 더 많다는군요.

과학계에서는 유인원과 유원인의 역사는 수백만 년 전이고, 농경문화의 시작은 1만 년  쯤으 보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기원전 3천년 무렵, 수메르인이 최초로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하고요. 기원전 2천년 이집트 제12왕조의 벽화 그림에도 포도와 함께 새겨져 있답니다.

지금부터는 무화과나무의 생태에 집중하겠습니다.


열매가 있다면 당연히 그전에 꽃이 있었다는 뜻입니 다. 반대의 경우도 성립하지요.
꽃은 보이지 않았는데 열매를 맺었다고 해서, 꽃 없는 열매 즉 무화과라 불렀어.

그러면 그 꽃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열매 모양의 안쪽에서 꽃을 피웠기에 보이지 않았을 뿐입니다.
꽃이 안에 숨어 있어 보이지 않는 식물이라고 해서 숨은 꽃, 즉 은화(隱花)식물로 분류합니다.

이런 종류로 다른 식물도 있을까요?
당연합니다.
모람, 왕모람, 천선과나무는 한반도에도 있고요. 벤자민고무나무, 인도보리수도 이 종류에 속합니다.

무화과 꽃은 닫힌 열매 모양의 안쪽에서 핍니다.
겉으로 드러난 껍질 꽃받침과 꽃턱(화탁花托, 꽃자루 맨 끝의 볼록한 부분)발달한 것으로 꽃을 감싸요.

단단한 열매 끄트머리에는 작은 구멍이 나 있는데요.

그 구멍을 통과할 수 있는 작은 곤충이 꽃가루를 운반해 수정시킵니다.
그 이름은 무화과나무말벌, 혹은 무화과나무좀벌. 영어로는 Wasp.

우리가 사는 말벌은 크기가 손가락 한두 마디에 이를 만큼 크죠? 무화과나무말벌은 1.5~3mm로 작아요. 무화과나무좀벌이라고 부르는 게 이미지에 맞을 듯합니다.


무화과와 수분곤충인 무화과나무좀벌의 공생관계를 표현한 그림. 출처= 위키피디아.


아래미국의 저명한 식물학자 윌리엄 칼 버거 저, 채수문 역 <꽃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을까?> 130~132쪽 전문입니다.

다윈도 풀지 못한 무화과의 비밀을 속시원히 풀어줍니다.

들어보시죠.

“한 식물의 무리와 그 꽃가루 매개동물 사이에 완전한 상호의존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장 드라마틱한 예는 무화과(無花果)나무종이다. 그리고 이것은 ‘무화과나무-무화과나무말벌 상리공생(相利共生) 관계’라고 불려진다.
무화과나무의 작은 꽃들은 둥그스름한 무화과 과일 안에 완전하게 덮여 있는 특유의 모양을 하고 있다.
무화과는 보기에는 열매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오목한 꽃차례다. 작은 꽃들이 꼭대기의 보일 듯 말 듯한 입구를 가지고 있는 무화과 안에 담겨 있다.
포엽(苞葉)들이 입구 안쪽에 아주 조밀하게 겹쳐 있기 때문에 이 방해물들을 비집고 통과해 무화과의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납작한 머리를 가진 말벌이어야 한다.

말벌들은 이 좁은 입구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날개를 상하게 된다. 일단 무화과 안으로 들어간 말벌은 암꽃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이때 그 말벌은 자신이 태어났던 무화과에서 묻혀온 꽃가루를 온몸에 묻힌 채로 다니기 때문에 효과적인 수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

수정이 이루어지고 난 뒤 말벌은 꽃 속에 알을 낳고 생을 다한다. 무화과 꽃은 자신의 새끼들이 자라날 보금자리이자 식량이 되는 것이다.

말벌의 알이 애벌레와 번데기를 거쳐 새로운 세대의 성숙한 벌이 되면, 수벌들은 아직 덜 성숙해 비활동적인 암벌들과 짝짓기를 한다. 짝짓기가 끝난 수벌들은 한데 모여서 두꺼운 무화과의 껍질을 씹어서 암컷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준다. 암벌로 하여금 날개를 상하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암벌이 나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나면 수벌들은 자신의 생명을 다하고 만다.

수벌의 준비가 끝나면 암벌은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 때는 무화과의 수꽃이 꽃가루를 배출할 준비가 끝난 시점이다. 무화과 안에서 꽃가루를 모은 암벌은 꽃가루를 배 밑에 붙어 있는 특수주머니에 갈무리한다. 이제 꽃가루를 가득 담은 암벌이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암벌은 수벌이 자신을 위해 준비해 둔 통로를 따라서 떠날 것이다. 암벌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즉 숲을 가로질러 날아가서 꽃가루를 수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 똑같은 종류의 무화과나무를 찾아가야 한다. 제 어미가 그랬듯이.

이 모든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무화과나무는 무화과 안에 세 가지 다른 작은 꽃들을 만들어낸다. 먼저 암꽃은 두 종류로 피어난다. 즉, 말벌의 새끼가 자라날 숙주가 되는 꽃, 종자가 될 자양분이 많은 꽃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피어나는 것이다. 세 번째 종류의 꽃은 수꽃이다. 새 암벌이 자라나는 것에 맞추어 꽃가루를 만들어내고 암벌이 날아가기 전에 꽃가루를 뿌려준다.”

어떻습니까?
꽃이 없기는커녕 암꽃과 수꽃 두 종류만 만드는 다른 식물들과 달리 말벌 유충의 식량까지 만드네요.

무화과나무말벌은 또 어떻습니까?
수정란을 품은 1세대 암벌이 무화과 입구를 통해 들어가 알을 낳고 죽습니다. 거기서 일찍 깬 수벌들이 아직 깨지 않은 암벌과 교미를 합니다. 암벌을 위한 탈출구를 만든 수벌은 태어난 곳에서 죽고, 2세대 암벌들은 그 구멍을 통과해 날아가 다른 무화과의 입구로 기어들어가는 거죠.


이것이 무한반복되며 무화과도, 무화과나무말벌도 살아남았습니다.

어느 일방이 멸종하면 따라서 멸종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말이죠. 경쟁자와의 싸움이 없다는 이점이 이런 완벽한 공생관계 유지의 비밀일 수 있다고 합니다.


무화과나무의 세밀화. 출처=위키피디아


뽕나무과의 무화과나무는 세계적으로 700~1천 종쯤 있고, 각각의 품종에 맞는 벌들이 있답니다.

건조지대에서 무화과나무는 천연 우물이 있다는 표시랍니다. 그래서 고대부터 귀한 나무로 대접을 받았대요.
열매는 남녀에게 좋은 강장제로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즐겨 먹었고, 로마의 검투사들에게는 필수 식품이었답니다.


우리나라에선 전남 영암이 무화과 주산지로 유명해요. 겨울철 영하 9도 밑으로 내려가지 않는 곳이라야 키울 수 있답니다.

무화과나무말벌 암컷은 수명이 2~3일에 불과한데요. 무화과의 작은 구멍을 통과해 들어갈 때 날개와 더듬이가 뜯겨나가요.
날아다닐 필요가 없는 수벌은 아예 날개 없이 태어났다가 제 할 일 마치고 바로 죽습니다.
무화과 안쪽은 그러니까 무화과말벌들의 무덤인 셈입니다.

완전한 채식주의자인 비건(Vegan)들은 이 때문에 무화과를 먹는 걸 꺼려한다고 합니다.


성심당 무화과시루 케이크잔뜩 얹혀진 무화과엔 이 곤충들의 체가 득실득실할까요?

다음 에 이어가겠습니다.

2024년 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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