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음모론의 경계에 대하여

제발 그만 보고 싶다

by 호옹이

얼마 전부터 진보진영 단일후보 경선에 출마한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사실 수면위라고 하기에는 언제나 그랬듯 찻잔 속 태풍이지만 ^오^) 특히 그가 과거 백신과 관련된 음모론적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다는 비판이 반복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한 번 음모론자는 영원한 음모론자”라는 식의 단정적인 언사까지 동원하며, 그의 정치적 자격 자체를 문제 삼는다.


정치에 있어 완벽한 인간은 없다. 단지 누군가의 과거 발언 몇 줄을 들어, 그 사람의 전 존재를 낙인찍는 방식은 분명 온당하지 않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나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음모론적 언설조차 전략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에는 분명히 반대한다.


나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의 구성원이다. 그래서일까, 더욱 복잡한 감정이 든다. 한상균 위원장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운 사람이었고, 그 현장의 무게를 함께 지탱해 온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과거 “백신 마피아”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공론장에서 사실상 음모론의 언어를 빌려왔던 순간을 그냥 넘길 수는 없다. 특히 그 발언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더 노골적인 백신 음모론을 퍼뜨려온 목수정과의 교류는 더 큰 우려를 낳는다.


정치적 리더는 단지 뜻이 옳은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공적 언어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과학적 사실과 사회적 합의의 기반 위에서, 대중의 불안을 선동이 아닌 성찰로 이끌어야 할 자리다. 그 기준에서 보았을 때, 음모론의 언어를 빌려 쓰는 정치인이 반복적으로 공론장에 등장하고 목소리를 확대하는 현상은 심각한 문제다.


나는 음모론자를 진영 논리에 따라 선별적으로 비판하고 싶지 않다. 백신을 둘러싼 음모론에서부터 개표 조작설까지, 공론장을 혼탁하게 만든 이들—윤석열부터 김어준, 한상균, 목수정까지—모두가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들의 말이 반복적으로 증폭되는 것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이 모든 것이 이들의 책임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언어를 소비하고, 욕망하고, 또다시 클릭하는 대중이 있기에 이 순환은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참 어렵다. 공론장이란 결국 우리가 함께 만든 것이기에, 그 수준과 방향 역시 우리의 거울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을 허용하는 체제지만, 모든 의견이 동등한 가치를 지니는 체제는 아니다. 그 기준이 흐려질 때, 우리는 쉽게 지적 퇴행과 무책임한 정치의 늪으로 빠져든다. 나는 그 기준이 명확히 지켜지기를 바란다. 정치가 다시 말의 책임 위에 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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