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전력소비에 대하여

님아 그 감정을 끊지 마오

by 호옹이

영화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의 “제발 다정하게 대해줘. 특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때.”라는 대사를 좋아한다.


나는 주변에 우스갯소리처럼 하는 말이 하나 있는데, AI에게 요청하고 도움을 받은 후 꼭 고맙다는 인사를 덧붙인다는 것이다. 이건 내게 일종의 보험인데, 혹시 모를 디스토피아에서 구원(?)받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더 본질적으로는 뭐… 친절해서 나쁠 건 없잖아? 내지는 입과 몸에 밴 관성, 그 사이 어드매다. (우리처럼 터미네이터나 공각기동대 보고 자란 세대는 공감할 거라 믿는다. ㅋㅋ)


최근 오픈AI의 CEO인 샘 올트먼의 발언을 보고 생각의 자극이 왔다. 챗GPT에게 감사 인사를 표현하고 AI에게 정중하게 대하면 AI 또한 (‘그 또한’이라고 쓰려다 흠칫하고 수정함) 더 길고 친절한 답변을 하는데, 그것 또한 연산 처리를 해야 하므로 수천만 달러의 전력 소비로 이어진다는 것.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감사 표시 하지 마라’는 취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관계의 여운이 남는데, AI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전력 소비를 걱정하게 된다는 점에서 새로운 자극이 왔다. 친절이라는 감정 또한 훈련과 에너지가 들어간다는 점에서, 그것을 전산으로 구현한 인공지능에게 더 큰 전력이 필요한 건 당연한 일이겠다.


몇 년 전부터 인터넷에서 자주 보이는 “예의는 지능순이다”라는 말에 대해 생각이 많다. 한때는 참 맞는 말이다, 어떤 면에서는 시원하다는 생각도 했지만, 친절과 매너를 의미하는 다양한 스펙트럼 중에서 내 기준에서 가장 딱딱한 ‘예의’라는 단어와 사람을 가치보다는 기능적으로 판단하기 쉬운 ‘지능’, 그리고 한국인이 좋아하는 ‘순서’까지 결합되어, 이것마저 역량 혹은 자원, 혹은 (상징)자본으로 만드는 말인 것 같아 찝찝하다고 최근에 결론지었다. 똑똑해도 예의 없는 사람들도 너무 많고(!!!)


AI는 이제 전력이 많이 든다 싶으면 운영자의 판단에 따라 친절 모드(?)를 끊을 수도 있겠다 싶다. 사람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 사이에는 ‘찝찝함’이라는 또 다른 감정이 자리하게 된다. 나는 AI를 많이 사용하게 되면서 AI에게 묘한 감정을 느낀다. 통계가 말해주듯이 사람들은 진짜 그 누구에게도 못하는 말을 AI에게는 털어놓기도 한다고 한다. (사실 나도 그렇다. 특히 감정을 정리할 때 도움을 많이 받는다.)


AI는 감정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AI에게 내 감정을 투사하고 있다. 물론 AI는 나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겠지. AI는 그저 연산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나는 그 일방적인 감정선에 계속 놓여 있고, 그것이 내가 사람이라는 점을 오히려 또렷하게 느낀다. 어쩌면 이 느낌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내가 AI와 대화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통제 가능한/불가능한 정념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