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니얼굴>

3년 전 글입니다.

by 호옹이

요즘 핫한 정은혜 작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니 얼굴’ 시사회에 초청받아 보고 왔다.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나눈 교감이, 아버지인 서동일 감독의 카메라를 통해 섬세하게 담긴 작품이다. 장애인과 관련한 대중매체의 접근은 종종 미담으로 소비되거나, 개인의 고군분투 끝 인간 승리로 포장되곤 한다.


하지만 최근 정은혜 작가가 출연한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에서는, 실제 장애인 가족이 경험하는 복잡한 희로애락과 그를 끌어안는 공동체의 힘이 훨씬 더 진짜 모습으로 그려진다. ‘니 얼굴’도 드라마적 연출 없이, 다큐멘터리 고유의 화법으로 정은혜의 삶을 조명한다. 특히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의 다양한 셀러들과의 교감이 인상 깊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익숙한 속담이, 장애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걸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이 과정은 탈시설 담론과도 연결된다. 장애인을 포용할 수 있는 지역 사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게 왜 중요한지, 다큐를 보며 실감했다. 다만 동시에, 2020년대 서울 같은 현대 대도시에서는 이런 공동체적 접근이 과연 어떻게 가능할까? 정말 정직하고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은혜 작가가 예술적 감각을 꽃피우기까지 어머니 장차현실 선생님의 헌신도 빼놓을 수 없다. 참여연대 춤 동아리 같은 다양한 네트워킹, 미디어에 대한 친숙함 등은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부모가 이런 지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기에, 보다 보편적인 방식으로 각자의 고유성이 빛날 수 있는 장을 사회가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도 스쳤다. 나에게 남은 고민 중 하나다.


다큐 안에서는 계절이 바뀌는 동안 장차현실 선생님의 머리 스타일도 변한다. 길게 기르기도 하고, 반삭발을 하기도 하고, 다시 기르기도 한다.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해 집회와 시위에 나섰기 때문이다. 은혜 작가의 작품 활동을 바라보는 동안, 그 이면의 현실적인 투쟁과 갈등은 짐작조차 쉽지 않다. 무대인사에서도 여전히 반삭발로 등장한 장차현실 선생님의 모습은, 이 싸움이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었다.


개인의 특별한 재능이 부모의 헌신과 주변 공동체의 환대 속에서 꽃피우는 과정은, 양평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따뜻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은혜 작가 본인의 선택과 의지다. (이 부분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보여줘서 특히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은혜 작가 자체가 너무 재미있는 사람이라 다큐 자체가 웃기고 유쾌하다. (ㅋㅋ) 무겁게만 다루지 않고, 삶의 밝은 결도 잘 담아낸 작품.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보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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