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썼다면 몽당연필이 가득하고, 볼펜을 사용했다면 빈 잉크심이 서랍 한 곳을 채운다. 책 한 권의 필사는 제법 많은 노트에 책 내용이 그대로 옮겨진다. 내 글씨로 가득 찬 노트들이 한 권, 두 권 쌓인다. 손글씨로 적힌 나를 관통했던 문장들은 페이지마다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내 글씨로 위장한 문장들은 아군이 되어 나를 직접 돕는다. 든든한 지원군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매일 반복하는 일은 익숙해지기 마련인데, 글씨도 마찬가지다. 글씨를 자주 쓰면서 손에 익으면 잘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이 과정을 계속 이어가면 글씨는 자연스럽게 안정되고 좋아진다. 매일 필사에 글씨 교정의 목적을 담는다면 이 변화는 극대화된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 매일의 되풀이로 노력이 축적되면 발전 속도는 가파른 기울기를 띤다. 노력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
이 모든 과정과 기록이 필사 노트에 고스란히 담긴다. 첫 번째 노트와 현재 노트를 비교해 보면 명확하다. 획은 점점 바르고 크기는 가지런해졌다. 획의 시작과 끝은 강단이 생겼고 획과 획 사이는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상당한 발전이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미래의 계획도 저절로 선다. 일보 전진이 실로 성장의 묘약임을 직접 체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