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씨는 악필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도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한다. 대부분 자신에게는 관대하며 후한 점수를 주기 마련인데, 자신이 악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신기하게도, 자신이 쓴 글씨가 아무리 악필이라도 알아본다. 지렁이 기어가는 듯한 글씨라도 쓴 사람은 해독이 가능하다.
좋은 글씨의 잣대는 자신이 세운 기준보다는 타인의 반응에서 온다. '이만하면 됐지'하는 글씨도 타인이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는 나쁜 글씨로 취급하고, 쉽게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눈까지 즐겁다면 좋은 글씨라고 칭송한다. 타인의 시선은 피할 수 없는 눈금자가 된다.
그렇다고, 상대방의 진단에 민감하게 대응할 필요는 없다. 나쁜 글씨라고 실망하지도, 좋은 글씨라고 우쭐하면 안 된다. 글씨는 인생을 거쳐오며 몸에 밴 버릇일 뿐. 내 몸과 소유물을 아끼고 사랑하듯 글씨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우선이다. 당신의 인생을 결정짓는 그 무엇이 아니기에 가볍게 여겨도 된다.
다만, 어떤 버릇이 있는데, 그 버릇이 나와 어울리지 않아 고치고 싶다면 과감히 바로잡아보자. 손톱 물어뜯는 버릇을 고치듯, 눈 찡그리는 습성을 버리듯 글씨도 바꿀 수 있다. 내 글씨에 감탄하는 타인을 그려보고, 글씨를 뽐내는 자신을 상상해 보자. 내 생각을 나의 글씨로 표현하는 나. 내 이름 석 자를 당당하게 쓰는 나. 진정한 내가 되는 첫 길 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