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고운 글씨를 쓸 수 있는 재주를 가질 수 없다. 미적 감각이라는 재능을 부모로부터 온전히 물려받은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타고난 재능보다는 지극한 관심이나 꾸준한 연습 등의 후천적 노력이 글씨를 잘 쓰기 위한 필요조건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춤과 노래, 언어는 인간 이외에 다른 생명체에서도 발견되는 특징이지만, '글씨'는 인간만의 전유물이다. 글씨 쓰는 침팬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20년 이상을 업으로 이어온 엔지니어로서가 아닌, 3년 전부터 또 다른 나로 규정해오고 있는 '글씨 유튜버'로써, 수줍은 고백 성사 같은 나의 '글씨' 이야기를 하려 한다.
'대사랑 tv_한글사랑'에서 보여지는 나의 글씨체를 본 사람은 믿기 어려울 수 있지만, 급한 성격을 가진 나는, 내가 쓴 글을 나 자신도 못 알아볼 정도로 글씨를 갈겨썼던 악필 중의 악필이었다.
국민학교 시절, 왜 그토록 사칙연산을 빨리하는 것이 산수의 왕도라고 여겼는지 모르지만, 그 이유 때문에, 초읽기를 해가며 최대한 많은 문제를 풀어야 했던 '공문수학' 때문에 자연스럽게 악필이 되었다는 핑계 따위를 둘러 대곤 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글씨'를 잘 써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거나 잘 쓰고 싶다는 바램이_겨우 읽고 쓰기 시작한 10살 꼬마 아이가 가질 희망 사항 아닌 것 같지만_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여겨진다.
나의 악필과 덤벙거리는 성격을 한 번에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머니의 작은 소망이, 이른바 나비효과처럼, 내 인생에 아주 큰 영향을 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어머니께서 나를 큰 길가 2층짜리 낡은 건물에 있던 서예학원에 보낸 것이었다. 더 어렸던 시절, 웅변 학원이나 기원을 다닌 적이 있었지만 허약한 몸과 끈기 부족 때문에 몇 달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 두기를 반복했던 나를 서예 학원에 보내는 어머니의 기대는 분명 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서예 학원은 신세계였다. 소심하고 조용히 있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화선지 넘기는 소리와 먹 가는 소리만 허락했던 분위기에 금방 빠져 들었다.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연적에 담긴 물을 벼루의 깊이 파인 곳에 붓고, 그 물을 윤활유 삼아 벼루 한가운데에서 천천히 원을 그리며 먹을 가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걸쭉한 먹물로 변했고, 먹과 벼루가 만나면서 만들어 내는 미세한 사각거림은 나의 들뜬 마음과 숨소리를 차분하게 가라 앉혔다. 그와 동시에 딱딱하게 말라 있던 붓은 물이 담긴 통속에서 담겨져 다시 생기를 찾았다. 물기 짜낸 붓에 먹물을 묻혀 화선지에 그어가며 먹물이 번지는 정도를 확인하는 것으로 글씨 쓸 준비를 마무리하였다. 이때, 먹물이 너무 묽으면 회색으로 변하며 빠르게 종이를 점령해 나갈 수 있고, 너무 되면 흰 바탕이 보이는 거친 획을 만들어 붓이 제대로 나아가지 않게 된다. 따라서, 붓이 품은 먹을 화선지에 적절하게 전달하는 최상의 농도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붓을 사용하지 않고도 최상의 상태를 찾을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이 생긴다.
새하얀 화선지에 검은색 획을 긋는다는 것은 용감한 도전처럼 느껴졌다. 시원한 연필의 움직임으로 도화지에 밑그림을 그리는 그림의 시작과는 상당히 달랐다. 시작점이나 획의 굵기가 어긋나면 처음 계획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거나 재시작이라는 빠른 결심이 필요할 수 있다. 목탄으로 대충의 글씨 모양을 미리 그리는 꼼수나 화선지의 접은 선을 기준선으로 정해 도움받을 수 있지만 시작은 항상 긴장되었다. 지금 쓰는 글씨도 마찬가지여서, 첫 글자의 시작을 어떻게 하는가가 그날의 글씨를 좌우할 때가 많다.
약 2년간, 선긋기부터 흘림체까지 궁서체에 대해 제법 많이 배웠다. 선생님의 수묵화 그리는 모습에 매료되어 평생 먹과 함께 살면 좋겠다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할 무렵, 중학생이 되었고 더 이상 학원을 다닐 수 없게 되었다.
각종 서예 대회에 출품해서 수상을 할 정도의 실력은 있었지만, 그것이 나의 글씨와는 연결되지 않았다. 붓과 펜이 달라서라기보다는 서예는 서예, 글씨는 글씨, 이처럼 완전히 다른 것으로 구분하였던 것 같다.
학업이 이어지면서 붓과 먹을 다시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서예를 향한 갈증은 마르지 않아 늘 마음 가장 낮은 곳에서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사춘기를 지나가고 있을 무렵, 학교 앞 문방구에서 우연히 발견한 붓펜(지금도 팔고 있는 모나미 붓펜) 덕분에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뚜껑만 열면 붓글씨와 유사한 것을 쓸 수 있었다. 붓펜으로 빈 노트에 적는 것은 실제 붓과 화선지의 필감과는 완전히 달랐지만, 주어진 상황 속에서 마른 갈증을 해소하기엔 충분하게 느껴졌다.
수업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도 늘 필통에 들어 있던 붓펜을 꺼내 정자체와 흘림체를 연습했다. 그 때문인지 글씨에 대한 자신감과 관심도 커져 연필이나 볼펜 등 다른 필기구로도 연습을 넓혀 갔다.
당연히 글씨는 몰라보게 좋아졌다.
현재의 나는 몇 개의 글씨체를 가지고 있다.
원래 내 손에 흐르던 악필과 붓펜으로 연습했던 궁서체와의 접점을 찾기는 어려웠다. 글씨를 쓰는 목적과 상황에 따라 다른 글씨체를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궁서체는 빨리 쓸 수 없는 글씨체라는 비현실적 약점을 일찍 발견한 것이었다. 빨리 써도 제법 봐줄 만한 글씨체를 찾고 연구했다. 어머니의 글씨체에서 힌트를 얻어 비슷하게 써보고 연습했다. 나중에는 어머니의 것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마침내 나만의 특징이 반영된 내 글씨로 만들어졌다. 궁서체를 통해 배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의 이해는 다른 글씨체를 익히고 보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익힌 글씨를 바탕으로 또 다른 글씨체를 만들어갔다. 획 방향을 일정하게 바꿔 보는가 하면, 각 낱말의 첫 자음을 강조하기 위해 조금 크게 써보는가 하면, 세로획을 곡선으로 바꾸어 보는가 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시도와 반복된 연습을 통해 더 많은 종류의 글씨체를 갖게 되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모든 글씨의 출발점은 서예로 배운 궁서체였다는 사실이다.
이름과 주소를 수 없이 반복해서 써야 하는 대출 서류를 작성할 때면, 더군다나, 바로 앞 은행원이 과외 선생님처럼 계속 나를 주시하고 있으면 여유를 부릴 수 없다. 빨리 써야 한다는 압박감은 독일 축구 수비보다 더 강력하게 느껴진다. 이럴 때 나의 필살기인 '또박또박 궁서체'를 썼다가는 은행 업무가 마비될 수도 있다. 더불어 잘 살기 위해서는 분위기 파악을 잘하고 임기응변에 능해야 한다.
아이들의 새 학기가 시작되면, 가정 통신문이 한 번씩 텅 빈 식탁 위에 놓일 때가 있다. 수십 년 동안 쌓아 온 필살기를 사용할 순간이 온 것이다. 가정 통신문에 정성 가득 써진 정자체는 신학기의 시작과 어울려, 아이들의 새로운 담임 선생님께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적기에 안성맞춤이다. 내용보다 글씨가 의미 전달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지난 3년간, 나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내가 지난 30년 이상을 갈고닦은 정자체와 반흘림체를 공유해 오고 있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글씨체를 바꾸고자 하는 분들이나 진지하게 글씨에 대해 접근하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꾸준히 영상과 연습장을 만들었다.
2022년 새해부터는 매일 밤 9시부터 30분 동안 라이브 방송을 통해 많은 필우분들과 같이 필사를 하고 있다.
여기의 내 '글씨' 이야기와 내 유튜브 채널이, 그리고 앞으로 내가 만들 다양한 소통의 도구들이 자신의 글씨를 관심 있게 뒤돌아보는 많은 분들에게 올바른 안내와 친절한 동무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