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중의 기본, 선긋기

by 대사랑 biglovetv


무슨 일이든지 그 '시작'은 늘, 언제나, 항상, 반드시 기대와 두려움이 함께한다. 첫 등교가, 첫 출근이, 첫 키스가, 아들과의 첫 만남이 그랬다. '시작의 반이다'라는 글의 의미를 새겨 보아도 '시작'의 중요성과 그 무게감을 짐작할 수 있다.

글씨도 마찬가지다. 제법 내공이 쌓인 필자도 글씨를 쓰는 그 '시작'은 늘 긴장된다. 두려움보다는 잘 쓰고 싶은 욕심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지울 수 없는 펜으로 작품을 쓸 때는 실수에 대한 걱정이 몸을 떨리게 한다.


악필 탈출을 원하는 이에게도 ‘시작’은 중요하다. 좋은 시작이 완전한 성공을 늘 보장하지는 않지만, 교정을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고민은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만약, 궁서체 (정자체, 흘림체)를 향해 글씨 교정의 길을 떠나는 자가 있다면, 오늘 나의 짧고 빈약한 글이, 그 길의 출발선에 놓인 디딤대가 되길 바란다.


글을 따라가기 앞서, 자신의 이름을 빈 노트에 써 보자. 글씨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자세히 관찰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짐작컨데, 불만족을 차지하는 가장 큰 부분은, 아마도, 곧지 않은 획일 것이다.


자음 14개, 모음 10개, 복합 자음 5개, 복합 모음 11개, 겹받침 11개.


위의 자음과 모음이 각각 초성, 중성, 종성에 자리해 하나의 글자가 된다. 이런 단순 조합으로 만들 수 있는 글자수는 무려 11,172개나 된다고 하니, 참으로 과학적인 언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글씨를 잘 쓰기 위해서 만개가 넘는 글자를 일일이 연습해야 하는 것일까?

절대로 그럴 필요 없다.

의미를 가지거나 그 의미를 돕는 역할을 하는 글자는 매우 제한적이어서, 자주 쓰는 글자 수는 많지 않다. 또한, 자음과 모음은 사용되는 위치에 따라 획의 변화가 생기는데, 이 부분을 먼저 숙지한다면, 마치 블록 맞추기를 하듯, 글자별로 알맞은 획을 긋는 방법으로, 효과적인 연습을 할 수 있다.


조금 더 자세히 들어가 자음과 모음의 구성을 보자. ‘ㅇ’과 ‘ㅎ’에 사용되는 동그라미, ‘ㅅ’, ’ㅈ’, ’ㅊ’에 사용되는 비스듬한 획을 제외하면, 모든 획은 세로와 가로로 쓰인다.

그렇다면, 세로획과 가로획을 정확하게, 본인의 의도대로, 쓸 수 있다면 글씨를 잘 쓸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이어지는 세로획, 가로획 쓰는 방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글씨를 잘 쓰기 위한, 기본중의 기본을 익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로획 쓰기

세로획의 몸통은 일직선이 좋다. 'ㅣ'를 기본으로 하는 모음들의 세로획은 마치 기둥과 같다. 획이 비뚤비뚤하면, 기둥이 반듯하지 못해, 글씨 전체가 흔들린다. 또한, 방향이 잘못되면 안정감을 잃게 된다. 바람직한 몸통을 쓰기 위해서는, 획을 시작하는 머리 부분과 끝내는 꼬리 부분을 잘 이용해야 한다.

1, 머리 부분은 짧은 사선으로 시작한다. 그 길이는 각자의 손 가는 대로 써 본다. 너무 짧으면 궁서체의 세로획으로 보기 어렵고, 너무 길면 'ㄱ'으로 읽힐 수도 있다. 필자는, 이 부분을 초성과 가장 잘 어울리는 세로획 위치를 찾는 탐색 구간으로 활용한다. 초성과 너무 멀리 떨어져 시작했다면 짧게 끝낸 후 바로 몸통을 시작하고, 너무 가까이에서 시작했다면 길게 늘이면서, 올바른 위치에서 내려긋기를 시작한다. 이는 계속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요령 중 하나이지만, 연습을 통해 충분히 익히는 것이 좋다.

2, 직진 구간으로 들어선다. 이때, 선긋기 방향이 달라진다고 해서 펜을 돌리거나 손목의 각도를 꺾어 쓰면 안 된다. 원래 잡았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직선 구간에 접어들도록 한다.

사실, 곡선보다는 직선이 더 어렵다. 자신의 주무기를 위주로 구성하고, 약간의 실수도 오히려 개성 있는 연기가 될 수 있는 프리스케이팅보다 정해진 동작을 정확히 수행하고, 각 항목별 심사 기준이 엄격한 피겨스케이팅이 더 어려운 이유와 같다. 사선, 곡선, 그리고 원과는 달리 직선은 조금만 비뚤어지면 잘못 쓰여진 것으로 생각되기에 일직선 긋는 연습을 중점적으로 한다.

곧바른 선을 긋기 위한 요령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그냥' 바로 그으면 된다. '긋는 내내 시선을 유지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지거나, 잡고 있는 연필의 피봇점(연필이 움직이는 가상의 중심점)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 정도의 도움말을 해줄 수 있다. 물론, 쓰는 힘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연습장에 인쇄되어 있는 직선을 기준으로 겹쳐 쓰거나, 평행하게 쓰는 연습을 꾸준히 하자. 쓰고자 하는 글자의 크기에 따라 직선의 길이를 바꾸면서 연습해 보자.

3, 궁서체 획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바로 '삐침'이다. 이 '삐침'은 자음과 모음 획의 마지막 부분에 나타난다. 다른 글씨체의 마지막 부분은 중간 부분과 같은 굵기로 대부분 끝나지만, 궁서체는 다르다.

이 '삐침'은 그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획의 끝을 뾰족하게 처리한다. 힘을 줄이면서, 속도는 높이고, 펜 끝을 일정한 간격으로 종이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 기본적인 요령이다. 필자는, 습관적으로, 끝부분의 방향도 왼쪽으로 비튼다. 힘 있는 글씨를 쓴다는 생각에서 나온 무의식적 반응이지만, 너무 과할 때는 보기 싫을 때도 있다. 지금은 다시 곧바르게 삐침을 하려고 연습 중에 있다. 이렇듯, 획의 사소한 변화는 전체적인 글씨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본인만의 개성적인 글씨체의 핵심 요소가 될 수도 있으니 적절히 변화시켜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가로획 쓰기


가로 획은 세로획과 차이가 많다.

시작, 중간, 끝 모두 세로획과는 다르게 쓴다. 세로획은 힘 있는 글씨를 담당한다면, 가로획은 단정한 글씨를 담당한다고 생각한다.

1, 시작은 화려하지 않다. 차분하고 힘 있게 획을 시작한다. 펜을 꾸욱 눌러준다는 생각으로 힘을 준다. 시작은 쉽게 끝내고, 곧 방향을 틀어 가로획의 중심을 쓰기 시작한다. 이때도, 세로획 쓰기와 마찬가지로, 펜을 돌리거나 손목 각도를 꺾지 않은 채 방향만 틀도록 한다.

2, 가로획의 몸통은 세로획과는 확연히 다르다. 일직선을 지향하지 않는다. 궁서체에 있어 글자 하나씩의 가로 방향 기울기는 우상향하는 것이 보기 좋다. 이를 위해, 가로획의 방향은 살짝 위로 향하도록 한다. 약 5도 정도의 기울기가 적당하다. 획 굵기의 변화도 동시에 적용한다. 가는 허리를 가진 콜라병을 떠올리며, 중간부까지는 얇아지다가 끝을 향할 때는 다시 제 굵기를 찾아가도록 쓴다. 이 또한 힘의 변화, 속도의 변화, 펜 끝 높이의 변화를 살펴가며 연습한다. 개성 있는 글씨를 위해 자기만의 요령을 찾고 익힌다.

3, 가로획의 끝부분은 세로획과 완전히 다르다. 즉, '삐침'이 없다. 서로 겹치는 부분이 있는 복합 모음(ㅢ)을 제외하고는, 삐치지 않고 얌전히 끝낸다. 진행 속도를 높이기보다는 오히려 감속한다. 끝으로 갈수록 펜을 차츰 세우면서, 종이와 떨어지기 전 끝까지 눌러준다는 생각으로 마무리 짓는다.


글씨 연습을 하다 보면,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앞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이 쉽게 경직된다. 굳은 손으로 연습을 이어 나가기보다는, 평소와 같이 손목이 부드럽고 손가락 마디가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도록 한다. 이 과정 또한 일정한 시간 간격을 정해두고 의식적으로 체크한다.


오늘의 글에 언급된 '가로획'과 '세로획' 쓰는 방법에 대한 묘사는 가장 기본적인 설명에 불과하다. 필자도, 글씨 쓰기에 앞서, 선 긋는 연습을 통해 준비과정을 거친다.

글씨를 바꾼다는 것은, 현란한 기교를 익히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시작이 좋았으니, 이제 꽃길만 남았다.

부디, 자신이 원하는 글씨체를 꼭 가지고, 그 글씨로 인해 당신의 인생이 더욱더 풍성해지기를 응원한다.

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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