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최상위 포유류인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행동 중에는 ‘글씨’와 ‘운전’이 포함된다.
특별한 대책 없이, 돈벌이만 추구하는 것으로 보이는 IT 개발로 인해, 자율 주행 시대가 성큼 다가와 운전 면허증이 사라질 날이, 손하나 까딱없이 목소리만으로 글을 쓰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어떤 알림도 없이, 햄버거도 손가락으로 주문해야만 하는 날이 우리 곁에 왔듯, 인간의 모든 영역을 로봇과 기계가 대신하는 어리석은 날이 오기 전에, ‘글씨’를 통해 인간이 잃어가고 있는 그 ‘무엇’을 고민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길 바란다.
이와 더불어, 정성스럽게 ‘글씨’를 쓰고자 하는 이들이 많아 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씨’를 ‘운전’에 비유하여 괜찮은 실마리 하나를 제공해 보고자 한다. 초등학교 시절 우연히 시작한 ‘서예’ 덕분에, 내가 지금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약간의 재능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서예’를 통한 비유도 꽤 합리적이라고 생각된다.
'초보 운전'.
10년 무사고를 자랑하는 베스트 드라이버 일지라도, 처음 핸들을 잡았을 때는 '초보 운전'이라는 스티커를 뒷 유리창에 붙였을 것이다. 면허증을 따기 위해서는 필기시험을 시작으로 코스, 주행 운전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한다. 타고난 반사 신경과 방향 감각을 가지고 있거나, 심한 '길치'가 아니라면 초보 딱지와 금방 이별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곳은, 길만 있으면, 언제나 갈 수 있는 자유를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악필 탈출'.
한석봉처럼 눈을 감고도 글씨를 잘 쓸 수 있는 달필가 일지라도, 처음 붓을 잡았을 때는 ‘집필법’이라는 생소한 단어부터 들어야 했을 것이다. 훌륭한 서예가가 되기 위해서는 바른 자세를 시작으로 먹을 갈고 붓을 쥐고 여러 가지 글씨체를 배워가야 한다. 천부적인 예술적 감각이 있거나, 심한 ‘손떨림’이 없다면 서예라는 또 하나의 예술 활동을 금방 즐길 수 있다. 내 머리와 가슴에 있는 명문장을, 펜과 종이만 있으면, 언제나 자신의 글씨체로 쓰고 간직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잉크 마르지 않은 운전 면허증을 받아 들고, 차 붐비는 도로로 용감히 액셀을 밟았던 첫 운전의 기억은 선명하다. 페달의 반응은 생각보다 민감하고 운전대를 조금만 돌려도 차의 방향은 거침없이 바뀐다. 수동이 아닌 자동 기어 변속기 덕분에 손이 하는 일은 많이 줄었지만, 손에 땀은 점점 더 많이 삐쳐 나온다. 조수석에서는 잘만 보이던 신호등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방향 지시등 대신 윈도 브러시가 움직인다. 내가 허락한 최고의 속도를 달리고 있을 때, 옆을 씽씽 지나가는 차들을 보면 괜히 주눅이 든다.
내 앞 하얗게 펼쳐진 화선지 위에, 서툰 손놀림으로 붓에 먹을 머금게 한 후, 처음으로 검고 거친 획을 그었던 기억은 선명하다. 붓의 진행은 생각보다 더뎠고 손 끝이 잠시만 멈추어도 먹물은 빠르게 갈 길을 벗어난다. 수려한 동양화를 위한 세심한 터치가 아닌, 기본적인 가로, 세로획 긋기라 단순한 움직임뿐이지만, 획이 이어질수록 손의 떨림은 커져만 간다. 스승의 날렵하고 힘찬 획은 흉내도 내기 어렵고, 언제 다시 먹물을 붓에 묻혀야 할지 난감해진다. 나 보다 어린 녀석이 눈앞에서 일필휘지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괜히 주눅이 든다.
운전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렵게 느껴진다. 계속해서 색깔이 바뀌는 신호등에 눈을 뗄 수 없고, 차선 변경을 위한 타이밍은 점심 메뉴 고르는 것만큼 어렵다. 빵빵거리며 난폭하게 지나가는 차들은 나를 죄인 취급하고, 앞 차의 브레이크 등이 켜지면 나의 발목도 덩달아 긴장을 한다. 머릿속에 있던 수많은 교통 법규는 무용지물이 되고 한 박자 느린 내비게이션의 안내는 야속하기만 하다.
서예는 시간이 지날수록 어렵게 느껴진다. 위치에 따라 모양이 바뀌는 자음과 모음의 변화에 주의를 하고, 서로의 이상적인 거리를 찾는 것은 비상금 만드는 만큼 쉽지 않다. 병풍처럼 벽에 걸려있는, 힘차고 세련된 글씨들은 나를 하수 취급하고, 글자 간격이 점점 벌어지면 붓을 쥔 손가락은 덩달아 긴장을 한다. 머릿속에 있던 수많은 글씨체는 무용지물이 되고 발전이 더딘 나의 손동작은 야속하기만 하다.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도로와 교통 환경을 겪어야 한다. 비상 상황 발생 시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능력과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방어운전은 필수다. 빠른 속도로 차선을 이리저리 누빈다고 베스트 드라이버는 아닌 것이다. 속도보다는 안전을 우선으로 하고 이를 통해 해방감과 자유를 함께 느끼다면 더할 것이 없다.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글씨체를 연습하고 여러 필기구를 사용해봐야 한다. 본인 고유의 글씨체를 만들어 가는 노력과 손에 딱 맞는 필기구를 찾는 것은 필수다. 기본 획과 글자 모양을 무시한 채 빠르게만 적는다고 글씨 잘 쓰는 사람은 아닌 것이다. 조급한 마음에 이전 글씨로 돌아가지 않도록 평정심을 유지하며, 쓰는 행위를 통해 자기 위로와 반성을 함께한다면 더할 것이 없다.
고속도로 운전은 복잡한 시내보다 훨씬 더 수월하다. 톨게이트를 지나면 뻥 뚫린 길이 나타나 가속페달을 힘껏 밟아도 된다. 주행 차선만 지킨다면 신경 쓸 일이 별로 없다. 앞의 차를 추월하기 위해 차선 바꿀 일도 없고, 뒤에서 쌍라이트를 켜며 나를 위협하는 차도 없다. 보이지 않았던 창밖의 시골 풍경은 나의 동공을 즐겁게 하고, 타이어와 노면이 만들어내는 일정한 마찰음과 양쪽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라디오 음악은 내 귀를 즐겁게 한다.
흘림체는 정자체보다 훨씬 더 수월하다. 획과 획 또는 자음과 모음을 연결하며 쓰면 글씨의 진행이 쉽다. 빠른 글씨를 쓰기 위해 흘림체의 특징을 사용해 본다. 정자체의 자음, 모음의 구성과 간격 유지한다면 크게 다른 것이 없다. 가로, 세로획을 일정한 곳에서 끊고 그다음 알맞은 위치를 찾아가야 하는 멈춤도 없고, 자음이 끝나고 정확한 모음의 시작을 눈으로 먼저 찾아갈 필요도 없다. 정자체와는 달리 글씨의 힘이 느껴지고, 줄타기를 하는 듯한, 획과 획을 잇는 얇은 선은 리듬감 있게 글씨를 쓸 수 있도록 도와준다.
구깃해진 종이 지도를 펼쳐, 국도를 나타내는 가는 점선 위에 나의 위치를 대입해가며 목적지를 향해가는 운전은 즐겁다. 귀는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눈은 주변의 낯선 풍경을 좇으며 목적지를 찾아가는 운전도 즐겁기만 하다. 조수석에는 나에게 소중한 이가 있어, 따뜻한 커피 한잔과 정겨운 이야기만 있다면 아무리 멀고 퍽퍽한 길이라도 즐거운 여행이 된다.
서랍 속 낡은 원고지를 꺼내, 조그마한 네모칸을 기준 삼아 오로지 한 글자의 시작과 끝에만 집중하는 글씨 연습은 즐겁다. 태블릿 PC 화면 위에 선명하게 나타나 있는 글씨를 전자펜으로 따라 써보는 연습도 즐겁기만 하다. 새로운 글씨체를 가지려는 동무가 곁에 있어, 서로의 글씨를 다듬어 주고 응원한다면 아무리 지루한 연습일지라도 즐거운 동행이 된다.
운전은, 어떤 이에게는 즐거운 놀이가 되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평생 동안 운전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고, 운전을 직업으로 삼아 밥벌이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되는 ‘운전’이 주는 깊은 의미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다만, 가고 싶은 곳에는 누구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갈 수 있다는, 그 ‘자유’라는, 것이 ‘운전’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글씨를 잘 쓴다는 것은, 어떤 이에게는 행복한 취미활동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씹던 껌을 뱉듯 사소하게 여겨질 수 있다. 평생을 악필로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서예가와 캘리그래피 작가처럼, 글씨를 직업으로 삼아 생계를 이어나갈 수도 있다. 사람마다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가는 ‘글씨’가 주는 깊은 의미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만의 생각을, 펜을 꼭 쥔 신중한 손으로, 정돈된 글씨를 통해 구체화할 수 있다는, 그 ‘자기만족’이라는, 것이 ‘글씨’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