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마디는 점점 가늘어지고, 그것을 꽉 잡아 주던 근육과 살들도 더 이상 힘쓰지 못하며 중력의 영향을 거스르지 못한다. 나도 늙어 간다. 숨 찰 정도의 팔 굽혀 펴기로 생긴 삼두근의 팽팽함도 그렇게 오래가지 않는 것을 보면 남성 호르몬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골프장에 가면 근육질의 팔뚝과 허벅지를 가진 청년들의 호쾌한 스윙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랫배가 올챙이처럼 튀어나왔거나, 햇빛을 가리기 위함인지 새치를 가리기 위함인지 모를 창 넓은 모자를 쓴 아저씨들을 훨씬 더 많이 만나게 된다.
그 이유는 분명, 산을 통째로, 몇 시간 이상 빌려 쓰는 비용의 부담도 있겠지만, 골프는 많은 운동량이 필요치 않아 보이는 '공놀이' 정도로, 실제는 많은 체력은 필수다, 생각하는 터라 그렇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도, 작년 겨울 뇌를 다친 후로 골프채를 다시 잡아볼 엄두도 못 내고 있지만, 골프가 제일 만만해 보이긴 하다.
코로나로 골프를 즐기는 인구가 많이 늘었고, TV에는 골프 예능이 메인 시간을 차지한다. 이런 인기를 빌어, 또한 글씨에 다시 관심을 가지는 나이가 중년임을 생각해서, 비록 10년 이상의 구력임에도 백돌이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초보지만, 하루빨리 어지럼증을 이겨내 다시 잔디를 밟고자 하는 염원도 담아, '글씨'와 '골프'의 연결고리를 찾아 비유해 본다. 이어질 비유들이 좋은 글씨를 다시 배우려는 이들에게 마치 꺼진 불을 다시 살리는 불쏘시개와 같은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싱글은 골프채 탓을 하지 않는다.
고가의 골프채 세트를 일시불로 마련하게 되면, 마음속에는 벌써 몇 개의 하트(버디)가 그려진다. 내 스윙 궤적과는 상관없이, 내가 친 공은 똑바로 날아갈 것 같다. 느려 터진 스윙 속도라도 고반발 덕분에 200미터는 가뿐히 넘길 것 같고, 아무리 오르막 내리막이 심한 그린 위라도, 톡 하고 건드리면 홀 컵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스코어는 변함이 없다.
달필가는 펜 탓을 하지 않는다.
고가의 만년필과 에메랄드 빛 잉크를 구입하게 되면, 마음에는 벌써 한석봉이 글씨를 쓰기 시작한다. 펜을 대충 잡아도, 획은 바르게 써질 것 같다. 견고하게 잡지 않아도 국민교육헌장 정도의 길이는 거뜬히 쓸 것 같고, 미끌거리거나 거칠거나하는 종이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잉크는 알아서 적당히 머물렀다 펼쳐졌다 할 것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글씨체는 변함이 없다.
18개의 홀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다양한 채가 필요하다. 먼 거리의 티샷을 위해서는 헤드가 큰 드라이버가, 그린까지의 남은 거리를 따라 잡기 위해서는 제 몫을 다하는 아이언이, 유리 같은 그린에 적절히 반응하기 위해서는 퍼터가 필요하다.
궁서체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다양한 글씨체를 써 봐야 한다. 가장 기본이 되는 획과 자음, 모음의 연습을 위해서는 정자체가, 틀에 박힌 글씨체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위해서는 반흘림체가, 개성 강하고 힘이 느껴지는 글씨를 위해서는 흘림체가 필요하다.
사방이 초록색 그물로 쳐진 닭장에서의 연습은, 굳이 더 넓고 푸른 잔디밭을 상상하지 않아도, 사뭇 진지하다. 사라져 가는 하얀 점들은 구슬땀이 되어 이마에 흐르고, 폴리우레탄과 고탄성 금속의 충돌이 만드는 타격음은 귓속을 시원하게 파고든다. 옆 라인에서 힘차게 팔을 돌리고 있는 동반자의 기합 소리는 열 손가락을 한번 더 정렬하게 만든다.
곧은 선들만 인쇄되어 있는, 초등학생만 쓸 줄 알았던, 10칸 국어 노트 위의 글씨 연습은, 굳이 고급 화선지위의 붓글씨를 상상하지 않아도, 사뭇 진지하다. 포개어지듯 써지는 가로획, 세로획은 이마 위 주름살이 되는 듯하고, 싸구려 종이와 뾰족한 흑연의 마찰음은 글 쓰는 이의 귀를 즐겁게 한다. 옆에서 같이 연습하는 친구의 고른 숨소리는 허리를 바로 세워 자세를 고쳐 잡게 만든다.
머리 올리는 날의 첫 홀은 잊을 수 없다. 과연 내가 친 공이 앞으로는 갈까 하는 두려움에 여러번 빈스윙을 한다. 연습장에서 키워 왔던 스윙 감각은 산을 타고 내려오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날아가 버린다. 이 순간 위해 열심히 입력했던 내 뼈마디들의 연결 동작은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자연 속에 파묻혀 버린다. 푸른 하늘을 정확히 반으로 가르는 앞 차례 동반자의 공은 내 머릿속 박인비의 스윙도 반으로 쪼개 버린다. 내 생애 첫 샷을 가장자리 연못 속으로 보내더라도 실망하지 말자, 누구다 다 겪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자.
장문의 ‘나의 인생 글’을 내 글씨로 백지에 써보는 첫 도전은 잊을 수 없다. 과연 내 글씨가 의미심장한 글과 어울릴까 하는 염려에 여러 번 이면지에 끄적여 본다. 방안지 위에서 제법 정렬했던 나의 글씨는 흰 바탕 위에서는 사분오열 되어 버린다. 이 순간을 위해 열심히 주입했던 글자 모양과 띄어쓰기의 이미지는 뻣뻣한 손목의 움직임과 함께 굳어져 버린다. 그림과 글씨가 조화로운 캘리그라피 작품은 평범해 보이는 내 글씨체를 더욱 초라하게 한다. 내 첫 작품을 액자 속에 담아두기에 많이 부족해 보여도 실망하지 말자, 누구나 다 겪어야 하는 기분 좋은 실수 정도로 생각하자.
골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진정한 기쁨은 타수를 얼마나 많이 줄이느냐는 것은 아니다. 소수를 위해 마련된 넓고 푸른 자연을 내 인생의 동반자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록의 잔디 위를 걸으며, 따스한 햇살과 새소리 속에서 추억을 회상하고, 현재 관계를 지켜나가고, 미래의 우리를 준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글씨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진정한 기쁨은 획을 얼마나 곧게 쓰냐는 것은 아니다. 인생의 참된 의미를 일깨우는 명문장을 내 글씨로 그 자취를 쫓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책상 위를 가득 채우는, 커피 향과 재즈음악과 함께 작가의 인생을 반추하고, 나 자신의 일상에 대입하고, 미래의 자신에게 선언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TV 골프 채널을 열심히 본다고, 타이거 우즈의 일생을 잘 이해한다고, 여러 번 갤러리로 프로들의 플레이를 직접 본다고 해서 골프 실력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일정한 스윙을 가능케 하는 튼튼한 하체와 유연성을 꾸준히 가다듬고, 자신의 단점을 피드백해주는 티칭 프로가 있고, 1년 내에 싱글이 되겠다는 조급함은 버리고, 다양한 상황에서 본인이 직접 공을 때려야 실력이 좋아지는 것이다.
대사랑 TV_한글사랑 유튜브 채널을 열심히 본다고, 김정희의 추사체를 이해한다고, 여러 번 서예 작품전에 가서 작가의 글씨를 직접 본다고 해서 글씨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무리 없이 펜을 움직이게 하는 견고한 잡기와 힘의 배분을 꾸준히 가다듬고, 자신의 약점을 지적해주는 선생이 있고, 하루아침에 새로운 글씨를 쓰겠다는 조급함은 버리고, 다양한 글씨체와 펜을 사용해서 본인이 직접 많이 써봐야 글씨가 좋아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