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와 글씨

by 대사랑 biglovetv

반백 년의 결코 짧지 않은 나의 일생을, 어김없이 다시 찾아오는 사계절처럼, 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언제나 전봇대 옆으로 가늘게 뻗은 내 그림자처럼, 다시 입대를 해야만 하는 반복되는 빌어먹을 악몽처럼, 필사적으로 새우깡을 받아먹으려는 유람선 꽁무니의 갈매기떼처럼, 변이로 결코 종식되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늘 따라다닌 것은 바로 "영어"였다.


꼬마 시절, 아버지가 운전할 때 외쳤던 '오라이', '빠꾸'로 안면을 트고, 의무 교육이었던 중학교 첫 영어 시간에 정식으로 인사를 했고, 나의 가장 푸르렀던 청춘 시절, '성문'과 '맨투맨'이라는 책을 통해 서로 밀당을 이어 갔고, 학력고사 점수로 장해서 내 인생을 시험하려 했었고, 대학 도서관에 가득했던 영어 원서들 때문에 다시 서먹서먹 해졌고, 토익 700점이라는 고지를 핑계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보다 더 많이 들으며, 얼굴 모르는 한 외국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나를 다시 유혹했고, 직장에서는 아무 쓸모없었던 그 민낯에 서둘러 결별했고, 이직을 위한 면접에서 불쑥 환생해 나를 곤혹스럽게 했던 그 횡포에 항복을 선언했으며, 2년 전 얼떨결에 들어간 외국 회사에서 지금까지, 내 능력보다 훨씬 버거운, 부처님 손바닥 같은 그의 무한한 그늘에 앞도 당하며,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받치면서, 그에게 순종하고 있다.


'파파고'라는 앵무새가 나타나 많은 도움을 주고 있고, 어쩌면, 곧, AI가 다 알아서 통역을 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영원히 정복할 수 없는 산 정상을 향해 돌을 끊임없이 굴리는 시지프스가 되어, 거대한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는 엄홍길의 마음으로, 새로운 기회의 마중물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다시는 포기하지 않고, '영어'라는 오래된 벗의 가슴에 다시 노크를 하고 있다.


'영어'라는 그 철옹성의 대문이 활짝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나의 또 다른 짝꿍인 '글씨'를 '영어'에 맞대어 본다. 이 비유들이, 나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치 마라토너를 기다리고 있는 생수병들처럼, 어려운 이웃을 돕는 신성한 아이스버킷 챌린지처럼, 시원한 활력소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영어를 너무 어렵게 생각한다. 우리말이나 손짓, 발짓처럼 서서히 익혀가는 것임에도, 우리는 그것을 '공부'라는 방식으로 배우려 한다. 이런 배움은 일정한 틀이 되는 공식을 생산하고, 이 공식은 결국 영어의 장애물이 되고 만다.

우리는 글씨 쓰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한다. 찰흙 공예나 수채화처럼 자신의 자유로운 표현임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글씨체'라는 틀 속에 가두려 한다. 이러한 틀은 쓰는 행위를 거북하게 만들고 엄정한 잣대가 되어 결국 악필이라는 실패의 말을 생산해 낸다.


영어의 기본은 단어다. 머릿속에 한가득, 1형식부터 5형식까지 문장의 구조를 꿰차고 있어도 적절한 단어를 떠올리지 못하면 좋은 언어가 될 수 없다.


글씨의 기본은 곧은 획이다. 고딕체, 명조체 등, 아무리 다양한 글씨체를 구사할 수 있어도 곧은 획을 쓰지 못하면 좋은 글씨를 쓸 수 없다.


영어는 언어다. 언어는 같은 생명체들 간의 고유한 소유물이며, 생각과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이다. 이런 언어를 능숙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자주 사용해야 한다. 겁먹고 물러서기보다는, 자기 수준을 파악하고 한 단계 높은 벽을 하나씩 허문다는 자세로 부딪쳐야 한다. 지름길은 없다.


글은 언어다. 글은 글씨로 표현될 수 있고, 글씨는 인간만의 유일한 행위이며, 말과 사고를 구체화하는 도구이다. 이 도구를 능숙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자주 써야 한다. 귀찮다고 미루기보다는 자신의 글씨를 알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간다는 자세로 연습해야 한다. 지름길은 없다.


영어 단어에는 악센트가 존재한다. 자연스러운 발성을 위해 강하게 읽는 부분이 필요한 것이다. 긴 문장을 읽을 때는, 마치 파도를 타듯, 일정한 리듬감을 사용해야 한다. 각 단어의 악센트와 그 사이를 부드럽게 잇는 연음을 활용해 일정한 박자를 만든다. 이 박자는 아주 긴문장이라도 호흡의 흐트러짐 없이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


궁서체의 획에는 강약이 존재한다. 자신감 넘치는 획의 시작과 날렵한 획의 마무리를 위해서는 힘 조절이 필요한 것이다. 긴 글을 쓸 때는, 자음과 모음, 앞 뒤 글자의 사이에, 마치 금난새가 지휘를 하듯, 속도 변화를 주며 리듬을 만든다. 이러한 리듬은 아주 긴 글이라도 탄탄하게 쓸 수 있도록 돕는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어디서나 영어 연습을 할 수 있다. 길을 걷다가 영어로 된 간판을 보면 즉시 그 뜻을 찾는다. 매일 쓰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사물에 사용되는 외래어를 알파벳으로 옮겨 본다. 매일 반복하는 우리말이나 행동을 기록하고 영어로 바꾸어 본다. 영어 라디오 방송이나 해외 팟캐스트를 들으며 내 귀를 영어에 익숙하게 한다. 영어 일기를 쓴다면 금상첨화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어디서나 글씨 연습을 할 수 있다. 거리의 수많은 간판들 중 눈에 띄는 글씨체가 있으면 사진을 찍어 그 위에 따라 써 본다. 매일 쓰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MS 워드의 폰트를 분석한다. 인생에 도움이 되는 명언이나 친구의 카톡에 있는 좋은 글귀를 연습 중인 글씨체로 노트에 정성스럽게 옮겨 본다. TV 예능 방송 화면에 쉴 틈 없이 나오는, 다양한 글씨체의 자막을 주의 깊게 보며 내 눈을 새로운 글씨체에 익숙하게 한다. 따라 쓸 교본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영어의 나라 미국으로 날아가, 영어를 써야만 하는 상황에 자신을 가둔다고 갑자기 영어로 꿈을 꿀 수는 없다. 하루 종일 CNN 뉴스를 청취한다고 뉴욕타임즈를 읽을 수는 없다. 미국 드라마 10편 이상 본다고 윤여정 선생님의 아카데미 수상 소감을 공감할 수 없다.

다만, 어제보다 영어 한마디 더 할 수 있는 자신의 일보 전진을 즐긴다면, 언젠가는, 지구촌 곳곳에 친구들이 생기고, 서양의 문화를 더 깊이 즐기고 이해하며, 해외 영화 명작이 주는 감동을 몇 배 더 느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한석봉이 살았던 45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붓과 먹을 써야만 하는 시대에 산다고 해서 눈을 감고도 글씨를 잘 쓸 수는 없다. 하루 종일 천자문을 붓으로 쓴다고 해서 추사체를 쓸 수는 없다. 아래 한글의 10가지 이상 폰트를 익혔다고 캘리그라피 작품을 바로 만들 수 없다.

다만, 배우고자 하는 글씨체를 주도면밀하게 파악한 후, 어제보다 더 정확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자신의 성장을 즐긴다면, 언젠가는, 명필들의 획 속에 숨어 있는 힘을 느낄 수 있고, 글씨가 주는 수많은 장점을 마주하게 되고, 나의 글보다 나의 글씨가 몇 배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자신의 인생은 더 견고해질 것이다.


토익 500점이 넘었는데 외국인과 한마디의 대화도 못한다고 자책하지 말자. 영어 사전을 통째로 외웠는데도 짧은 문장 하나도 만들지 못 한다고 슬퍼하지 말자. 혀를 굴릴대로 굴렸는데도 내 발음을 못 알아듣는다고 실망하지 말자.


방안지에는 내 글씨가 완벽했는데 백지위에서는 예전 글씨가 그대로 나온다고 자책하지 말자. 대사랑TV_한글사랑 채널 영상을 다 봤는데도 획이 비뚤비뚤하다고 슬퍼하지 말자. 시키는 대로 펜을 잡고, 자세 잡고, 한 달 동안 연습했는데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다고 실망하지 말자.


'영어', '글씨' 두 개 모두, 평생에 걸쳐, 자고 일어나면 이부자리를 정리하듯, 매 끼 감사의 식사 기도를 하듯, 비우면 채워야 하는 쌀통을 대하듯, 자기 양치질을 하듯, 나의 일상과 평범한 하루를 조금씩 채워주는 하나의 의식으로 생각하자.


K문화를 사랑하는 외국인에게,

유창한 '영어'로, '글씨'를 가르쳐,

한글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다.


그날을 위해,

오늘도 한 걸음 내딛는다.


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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