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와 당구

글씨 잘 쓰는 방법을 이해하는 도움 글

by 대사랑 biglovetv

‘300’.

10여 년 전 개봉한 스파르타의 전쟁 영웅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야기가 아니다.

상위권 대학 진학이 가능했던 학력고사 점수(체력장 제외)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300’은 나의 당구 점수다.

당구는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끈을 놓지 않고 계속해오고 있는 단 하나의 스포츠다. 당구 점수가 ‘300’이라 하면 한산한 동네 당구장에서는 1,2등 수준은 된다. 제법 많은 돈을 당구에 투자(?)했다는 뜻과 같이 한다. 최근 ‘PBA’라는 프로 당구 리그가 생겨 당구 열풍이 일고, PC방의 역습으로 주춤했던 당구장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분위기에 올라타, 그동안 당구에 들인 노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당구와 글씨를 비교함으로써 따분할 수밖에 없는 글씨 교정 과정을 힘들게 지나가고 있을 ‘예비 명필가’들에게 도움 되는 짧은 글을 적어 본다. 이렇다 할 정식 교육 없이 맨몸으로 부딪히며 밟아온 과정이라 틀릴 수도, 맞을 수도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를 권장하며, 태클은 사양하고 라이킷은 환영한다.



1. 조기 교육

중2 때부터 당구장을 들락거렸다. 지금과는 많이 다른 어둠의 공간이었지만, 친구 따라 강남 갔다가 당구에 홀딱 빠졌다. 칠판이 당구대로 보이고 회초리가 큐대로 보이는 신비한 경험을 했다. 큐 끝을 떠나는 당구공의 정직한 움직임에 취했고, 공을 칠 때만큼은 내가 주인공이었다. 공과 공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마치 알사탕을 입안에서 돌려 먹을 때와 같아 나의 귀도 즐겁게 했다. 세월이 흘러 반백살이 되었다. 당구장은 사라지지 않았고 옛 친구들과의 교우를 위한 훌륭한 약속 장소가 되었다. 조기교육(?) 덕분에 가끔은 공짜로 게임을 하는 호사를 누리지만, 무엇보다 일평생 즐겨해 온 것이 있고 친구들과 웃으며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을 뿐이다.


10살에 서예 학원을 등록했다. 2년 이상을 다니지 못했지만 약골이었던 내가 가장 오래 다녔고 진심이었던 학원이었다. 서예가의 꿈보다는 너무 덤벙거리는 성격 탓에 어머니가 마련한 하나의 대책에 불과했다. 지금은 부산 전체를 뒤져봐도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학원이 되었지만, 그 당시는 웅변, 주산 학원 다음으로 많은 학원이었다. 억지로 간 곳이었지만, 나중에는 새우깡을 먹물에 찍어 먹을 정도로 푹 빠져들었던 나만의 아지트로 바뀌었다. 먹물이 화선지의 결을 따라 번져나가는 것에 반했고, 숨 죽이며 붓끝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찰나는 영원처럼 느껴졌고, 알맞은 먹의 농도를 위해 먹과 벼루가 서로 부딪치며 만들어 내는 소리는 그 어떤 비트보다 나의 심장을 뛰게 했다. 세월이 흘러, 유튜버에서는 ‘글씨 선생님’이 되었다. 조기교육(?) 덕분에 한 달에 몇만 원의 수익도 발생하지만, 무엇보다 평생 동안 가꾸어온 미미한 재능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길잡이가 되는 것이 좋을 뿐이다.


2. 바

당구장 문을 열면 푸른 색깔 네모네모한 바다가 정렬해 있다. 이윽고, 흰색 빨간색 공들이 마치 바다 위 햇살처럼 뿌려지고 게임 시작을 위한 정해진 자리에 위치한다. 초구를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 다음 공의 쉬운 배치를 위해 어떻게 칠 것인가? 실패할 경우 상대에게 큰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다양한 전략이 필요하다. 큐를 세워 초크를 바르고 자세를 낮춘다. 첫 번째 공격의 성공 여부에 따라 그날의 승패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양손에 힘이 들어간다. 시작은 늘 어렵다.


먹을 갈고 허리를 곧추 세운 후 내 앞 책상 위에 우윳빛 화선지 바다를 펼친다. 이윽고, 마치 일렁이는 파도를 잠재우듯 갈색 문진을 이용해 화선지를 단단히 고정한다. 첫 획을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 글자의 크기에 따라 자음과 모음의 간격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실수로 글씨가 커진다면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꼼꼼한 대비가 필요하다. 붓을 세워 먹을 바른 후 엉덩이를 의자에 바짝 기댄다. 첫 획이 그날의 글씨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기에 손가락과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시작은 언제나 떨린다.


3. 남녀노

5년 전, 당구장 금연법 시행으로 당구장 내 담배연기가 사라지며, 다양한 연령대가 당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골초들의 전유물이었던 당구시대는 끝난 것이다. 당구인구는 조금씩 증가했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당구를 즐기게 되었다. 엄청난 근력이나 체력은 필요 없지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스포츠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나이 많은 이들에게는 적지 않은 움직임을, 젊은 이들에게는 짜릿한 승부를 선물하게 되었다. 힘없는 여성들도 남성들 못지않게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새로운 도전을 가능하게 했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순간을 경험하는 것, 수학 공식처럼 원인과 결과가 분명한 인과의 명확성은 당구의 또 다른 매력으로 자리 잡았다.


3년 전, 글씨 유튜브 채널을 만든 후 어느덧 약 2만 명의 적지 않은 구독자가 생겼다. 강의 영상과 매일 필사 라이브 방송을 통해 글씨에 대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혼자 책상에 앉아 펜글씨 교본을 따라가는 글씨 연습의 시대는 저물어가는 것이다. 악필 교정과 좋은 글씨체를 원하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또한, 꾸준함에 도전하기 좋은 훈련으로 생각되고 있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즐길 수 있다. 나이 많은 이들에게는 손근육 움직임을 통한 치매 예방을, 젊은 이들에게는 손글씨라는 아날로그 감성을 선물한다. 감성이 풍부한 여성은 좋은 글 쓰기를 통해 낭만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글씨 쓰기의 시간을 오롯이 가지는 것, 나쁜 습관을 천천히 극복해 나가는 성취감은 글씨의 또 다른 매력으로 자리 잡았다.


4. 당점과 시작점

한국 당구역사에 가장 유명한 사람 중의 한 명인 ‘명예 2만 점’ 고 양귀문 선수는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당점이 200개가 넘었다고 한다. 6c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원에 확실히 구사할 수 있는 당점이 200개를 넘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연습으로 찾은 자신만의 당점은 훌륭한 재산이다. 결과가 보장되는 확실한 당점을 알고, 정확하게 구사한다면 분명 많은 승리를 가져올 것이다.


글씨 유튜버인 내가 ‘좋은 글씨’를 위한 조건으로 꼽는 것 중의 하나가 글자의 시작점이다. 새하얀 백지위에 시작해야만 하는 글자의 첫 위치는 상당히 중요하다. 그에 따라 크기, 모양, 전체적 구성 등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양한 연구과 시도를 통해 찾은 자신만의 시작점은 자신의 글씨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씨의 특징을 가슴에 두고, 원하는 시작점을 능숙하게 구사한다면 분명 좋은 글씨를 쓸 것이다.


5. 바깥 돌리기와 한 글자 쓰기

3쿠션 당구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배우는 배치가 바깥 돌리기다. 게임 중에 가장 많이 접하는 배치이기 때문이다. ‘바깥 돌리기’만 제대로 쳐도 본인의 점수를 빠르게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쉽고 만만한 배치라고 해서 절대 얕보면 안 된다. 수구의 회전량, 제1적구의 두께, 힘 세기 등에 따라 수많은 경우의 수가 나온다. 가장 많은 배치의 득점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당점, 두께, 힘을 숙지한다면 좋은 승률을 가질 수 있다.


글씨 쓰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가로 쓰기 대부분이다. 축의금 봉투를 쓸 때는 세로 쓰기를 하지만 대부분의 쓰기는 가로방향이다. 하지만, 가로 쓰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한 글자에 집중하는 연습이 좋다. 단어는 하나의 글자들이 모여 만들어지고 문장은 이 단어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문장 전체를 쓴다는 욕심보다는 한 글자의 모양을 잡아가는 것이 좋다. 한 개의 글자라고 해서 절대 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글자의 모양, 자음 모음의 배치, 받침 유무에 따른 변화등에 따라 다른 글씨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원고지를 이용한 연습을 추천하는데, 네모칸으로 나뉘어 있어 한 글자에 집중하기 쉽고, 각 칸의 여백을 생각하며 글자 크기에 대한 감각 향상에 도움이 된다. 한 글자를 자신이 원하는 글씨로 쓸 수 있다면 가로 쓰기는 물론 세로 쓰기도 좋은 결과를 가질 수 있다.


6. 힘조

당구 경기의 승리를 위해서는 연속 득점의 확률을 높여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힘조절이다. 훌륭한 힘조절은 성공확률 높은 다음 배치를 위해 수구와 제1 적구를 원하는 포지션에 위치하도록 한다. 만약, 다음 배치가 앞에서 언급한 '바깥 돌리기'라면 연속 득점을 확률이 높아진다. 선수마다 신체조건과 장비가 다르기 때문에 힘조절은 본인의 감에만 의존해야 한다. '공식'보다는 '감각'을 통해 힘을 조절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많은 경험과 연습을 통해 자신만의 감각으로 체화할 수 있다.


힘 있는 글씨를 위해서는 획굵기 조절을 효과적으로 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힘조절이다. 적절한 힘조절은 ‘기운 느껴지는 글씨’를 쓰기 위한 자연스러운 획변화를 가져오도록 한다. 만약, 강조하고 싶은 글자에 힘이 느껴진다면 그 글씨를 훌륭할 수밖에 없다. 글씨 쓰는 이마다 손크기나 즐겨 쓰는 펜이 다르기 때문에 힘조절은 본인의 감이 크게 작용한다. '상상'보다는 '연습'을 통해 힘조절 능력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늘 염두에 두고 꾸준한 글씨 쓰기를 한다면 자신만의 힘 있는 글씨를 쓸 수 있다.


7. 마세이와 흘림체

당구의 꽃은 '마세이'라는 말이 있다. '마세이'는 일명 '찍어 치기'라고도 하는데, 큐를 90도 정도로 세워 수구의 상단을 찍어 쳐 서로 포개어진 배치된 공을 공략하는 기술이다. 당구장마다 ‘’ 300'이하 마세이 금지'라는 문구가 꼭 있는데, 이는 일정한 수준이상의 기술이라는 의미이며, 만약 초보가 사용할 경우, 큐 끝이 당구대 바닥을 찍어 천이 찢어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기술이다. 참 신기하게도 ‘300’ 정도 되면 마세이는 자연스럽게 공략할 수 있는 내공이 생긴다.


궁서체의 꽃은 '흘림체'라고 생각한다. '반흘림체'라는 정자체와 흘림체의 중간 글씨체도 있지만 정자체의 획과 획, 초성과 중성, 중성과 종성을 연결하여 쓰는 글씨체이다. 서예를 배우면 '흘림체'는 늘 마지막 과정인데, 이는 정자체를 일정한 수준 이상을 체득해야 쓸 수 있는 글씨체라는 의미이며, 만약 처음부터 흘림체를 쓴다면 무슨 글자를 쓰는지 알기 어려운 고난도(?)의 글씨체이다. 참 신기하게도 정자체에 익숙해지면 조금 더 힘 있고 쉽게 쓸 수 없을까라는 생각에 흘림체를 떠올리기도 한다.


8. 연

‘300’이 되기 위한 비용을 계산해 보면 당구장을 매매한 정도의 돈이 들어간다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이는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오르기 위해서는 시간뿐만 아니라 상당한 금액 투자도 함께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 당구 실력이 일취월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다. 군입대 전 약 반년동안 당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수많은 고수들의 경기를 직접 옆에서 보았고, 손님이 없는 틈이나 청소를 일찍 마친 뒤 연습을 꾸준히 했던 것이 실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시간과 돈의 투자는 꼭 필요하다.


붓글씨를 잘 쓰기 위해서는 자신의 옷 중에서 먹물이 튀지 않은 옷이 없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다. 그만큼 좋은 글씨를 위해서는 시간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내 글씨 실력이 좋아질 수밖에 없는 있는 시간이 있었다. 군대시절 주특기인 포병 이외에 ‘차트병’의 임무를 맡았던 것이다. 훈련이나 상부 보고가 있을 때마다 브리핑을 위한 차트를 칼라펜으로 작성해야만 했다. 밤을 새우며 방대한 글을 여러 가지 형식으로 썼던 것이 좋은 영양분이 되었다. 해야만 하는 상황이 도움이 될 수 있다.


9. 당구붐 & 손글씨문화

3여 년 전부터 스포츠 TV 채널에서 당구 중계방송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프로당구리그 (PBA)의 출범이 그 역할을 했다. 프로라는 자부심과 큰 금액의 우승 상금때문에 세계의 고수들이 리그에 참여했고 그들의 멋진 플레이 덕분에 인기는 치솟았다. 동네 당구장들도 덩달다 손님맞이에 분주하게 되었다. 어둠(?)의 스포츠라는 오명 대신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대중 스포츠의 이미지가 생기면서 당구 인구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손글씨는 그 쓰임새가 퇴색되고 있다. 기술 개발의 가속화로 디지털이 대세가 되고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통한 글쓰기는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이런 흐름을 바꿀 수는 없지만, 거대한 사막 한가운데의 오아시스처럼, 디지털 문화로의 빠른 변화 속에도 손글씨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희망하건대, 지금 당구붐 정도에는 못 미치더라도, 펜을 잡고 써야 하는 손글씨 문화의 대중화와 수많은 장점들이 널리 인식되어, 손글씨 쓰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용기와 마음의 평온을 발견하는 기회가 생기기를 바란다. 내가 운영하는 ‘대사랑 tv - 한글사랑’ 채널이 이에 도움을 주고, 매일밤 진행하는 라이브 ‘필사’ 방송이 마중물이 되며, 더 나아가 한글의 아름다움과 우수함을 세계에 알리는 첨병이 되길 소망한다.


그날을 위해,

오늘도 글씨를 쓴다.


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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