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임감과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 나를 이 세상에 제대로 살게 하고 싶다는 자존심을 끌어 모아 매일 조금씩 써나가다 보면 어떤 결론에든 도달한다. 스스로 내린 결론 말고는 그 무엇도 귀담아듣지 말자. 뭔가를 시작할 때 타인의 조언은 대체로 기를 꺾는 역할을 한다. 더 이상은 바깥의 힘에 좌지우지되지 말고 내 의지대로 결정하고 실천하는 인생을 선택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 내 마음의 ‘오십 세’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자신의 삶을 내 의지대로 살고 결정하고 실천하는, '오십 세'를 지나고 있다. 작가는 마음 나이 50을 이야기했으나 나는 신체 나이 50을 말한다. 그녀가 정의한 50세는 반백년 인생의 나를 호되게 꾸짖는다. 아직도 외력에 갈팡질팡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평평했다. 40 후반 뇌경색이라는 큰 변곡점만 지운다면 y=1x 정도의 가장 평범한 1차 방정식이지 않았을까? 사회가 어슴프레 정의한 모범 시민의 전형을 유지하려 애쓴 인생. 자신의 의지를, 물론 대부분의 결정은 내 몫이었지만, 배려와 이해라는 이불로 덮기 바빴던 인생. 이타심의 발현 때문이 아닌, 나이에 비해 눈치를 많이 보거나 주변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최고로 여겼던 인생.
50이 되고도 내 결정이 나를 가장 앞에 두는 일이 그리 늘지 않았다. 부모님, 장인 장모님, 세 식구... 아들로서, 사위로서, 가장으로서의 다중 역할의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리라. 자의로는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그리고 꼭 해야만 하는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리라.
필사 시간은 뉴 월드이다.
신세계가 잠깐 열렸다 닫힌다. 나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하루 중의 유일한 시간. 내 방문을 닫고 불을 끄고 스탠드 조명 아래 내가 주인공이 되는 무대. 누구의 아들도, 사위도, 아빠도, 남편도 아닌 지구 밖 우주 공간.
'대사랑'인 나 자신으로만 살아가는 소중 그 자체인 시간이다.
15분.
하루를 100으로 가정했을 때. 겨우 1을 넘는 아주 짧지만 속이 꽉 찬 시간. 손이 정제된 활자를 따라가며 더 큰 어른으로 조각하는 나만의 미술시간. 오직 내 목소리만 내 방 속 공기를 타고 퍼지는 나만의 음악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