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얼굴> 후기
시각 장애인이지만 도장을 파는 '전각 장인' 임영규와 아버지를 옆에서 보필하는 아들 동환.
동환은 아버지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촬영이 한창이던 즈음, 40년만에 어머니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이미 백골로 변해버린 어머니(정영희)의 시신을 시작으로 그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기이한 이야기를 추적하게 되는데...
나는 연상호 감독의 작품들을 좋아한다.
그는 인간 내면의 추악함이나 본질의 것을 드러내는 이야기들을 많이 만드는데, 이번 영화 역시 그랬음.
이야기는 '~번째 인터뷰' 라는 챕터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깊이 들어갈 수록 드러나는 실체에 대한 몰입도가 좋았다.
플래시백으로 나오는 7080년대- 힘겹게 경제성장을 이루었던 세대들의 이야기가 시대극 같기도 하면서, 억척스럽게 살아온 주인공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전반적으로는 좀 슬픈 이야기였다.
어릴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았던 임영규는 지난 시절을 '지옥' 이라고 표현한다.
장님이라는 이유만으로 맞고 놀림 당했던 때를 견뎌내고, 일반인에게도 쉽지 않은 '전각 장인'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성취와 자부심이 있는 인물이다.
정영희는 외모적인 핸디캡으로 '못생겼다''괴물 같다' 라는 소리를 대놓고 들으며 살아온 인물.
이 두사람은 '멸시'를 받던 입장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떻게 보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대적 멸시'로 보이기도 했고, 결국 그것이 정영희의 죽음을 초래하게 되는 부분이었음.
이런 전개 안에서 권해효, 박정민 배우의 연기가 정말 대단했다.
권해효 배우님의 '얼굴' 에서 느껴지는 힘,
그리고 박정민 배우의 1인 2역에서 오는 연결성.
끝까지 얼굴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신현빈의 연기도 인상 깊었다.
사실 이런 영화들은 숨겨져 있던 사건과 드러나는 진실에 대한 충격,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에 기대를 많이 하게 되는데-
전개 자체에서 오는 반전은 영화 초입부터 예측이 되어서 동기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그리고 후반부에 마주한 동기의 실체가 드러났을 때, 관람 당시에 명료하게 이해가 되지는 않았었다.
이후 영화를 곱씹어보니 캐릭터가 가진 내면적 뒤틀림, 입장이 공감이 되면서 어느정도 납득이 되는 것들이 있었음.
눈이 먼 장님이 '아름다움' 을 추구하는 아이러니한 부분도 기묘했고,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고정관념의 뒷면을 돌려서 보여주는 느낌도 받았던 작품이었다.
기존의 연상호 감독이 그동안 보여주었던 종교 비틀기나 코스믹호러, 혹은 좀비나 오컬트 등의 장르적 요소들이 전혀 없는 아주 현실적이고 일반적인 스릴러 였음.
그래서인지 기대했던 것 보단 심심한 느낌도 들었다.
왠지 마지막 장면에서 느껴지는 나의 생각, 감정마저 이 영화의 완성인 것 같았다.
간만에 좀 요리조리 굴리면서 생각할 꺼리가 많았던 한국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