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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망생 성실장 Sep 08. 2016

헬로 카봇과 페미니즘

딸에게 보여주기 위해 운전을 해야 하나


6살, 딸아이가 카봇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서 3살 둘째 딸과 놀면서, 슬쩍슬쩍 같이 만화를 보았다.


항상 애들 때문에 만화밖에 못 본다고 신세한탄을 했지만, 고백하자면 가끔 애들 없이 텔레비전을 켤 때면 나도 모르게 만화 채널을 보다가 '내가 뭐 하는 건가' 생각하며 피식 웃을 때가 있다. 그만큼 요즘 만화는 대부분 유익하고 재미있다.

그중에서도 뽀로로나, 또봇, 카봇, 폴리 같은 국산 만화는 재미있고, 내용도 좋고, 퀄리티도 좋아서, 볼 때마다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그날도, 그렇게 만화를 보던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그런데!!!

나는 눈을 의심했다. 헬로 카봇에서 충격적인 내용이 방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날 카봇의 내용은,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간 주인공 가족에 대한 에피소드였다. 할머니는 아들 가족이 너무 보고 싶어서 ‘아프다’라는 거짓말로 가족들을 불렀다. 그리고 아들 가족이 도착하자 손주와 아들을 안으며 기뻐하고, 며느리에게는 ‘하도 안 오니까 거짓말을 하지’ 라며 꾸짖었다.


그리고 화면 전환이 되자 할머니와 아들(남편) 그리고 손주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며느리는 부엌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힘이 들어 남편에게 도와달라고 눈치를 주는데, 남편은 바로 본인의 엄마에게 ‘엄마, 나 운전하느라 힘든데, 며느리가 도와달래’라며 뺀질거린다. 이에 할머니는 며느리에게 '왜 본인 아들 힘들게 일을 시키냐'며 역정을 내고, 이에 며느리는 어깨를 움츠리며 '아니에요. 제가 할 수 있어요.'라고 변명하면서  부엌으로 도망간다.   



며느리가 시어머니 눈치를 보며 부엌으로 가자마자, 나는 확! 열이 받아서, 바로 딸아이에게 페미니즘 교육을 시전 했다.  


“딸아, 저럴 때는 어른이라고 해도 똑바로 말을 해야 해. 어떻게 이야기하냐면, 잘 들어.


어머니 운전하느라 남편도 힘들었지만, 저도 지금 힘들어요. 지금 누군가가 도와주면, 더 빨리 일을 끝내고 다 같이 쉬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예요. 온 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원하셔서 저희 보고 싶어 하신 거 맞잖아요.  여보, 그러지 말고 충분히 쉬었으니 이제 이리 와서 같이 일해요. 당장!!!


라고 말이야. 그리고 저런 상황에서 며느리가 참고, 혼자 일하게 되면 앞으로도 며느리는 시댁에 더 가기 싫어질 거고, 자주 못 만나서 서로 더 섭섭해질 일만 남는 거야.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으니 꼭 말을 해야 해.

그리고 만화 속 엄마랑 네 엄마는 운전을 못하지만, 대부분 여자들도 다 운전해. 우리 집만 해도 양가 할머니, 이모, 고모. 다 운전하잖아. 너도 꼭 운전을 배워서 저럴 때 '나도 운전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6살, 딸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머니, 저도 힘들어요. 다 같이 일하면, 다 같이 쉬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요. 여보! 이리 와서 도와줘요’라는 말을 몇 번이고 따라서 연습했다.


이런 나를 옆에서 보던 남편은 허허 웃으며, 텔레비전 채널을 디즈니 주니어의 ‘닥터 맥스터핀스’로 돌려버렸다. 미국 만화인 닥터 맥스터핀스는 흑인 여자 아이가 의사를 꿈으로 장난감들을 고치는 만화였고, 흑인 엄마의 직업은 의사인 내가 좋아하는 만화이다.


전업과 맞벌이 혹은 비혼 무엇이든 주체적인 딸이 되기를 바란다


한창 공주놀이를 좋아하는 딸아이에게, 엄마이자 여자인 나는 어떤 교육을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한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엄마 공주들은 이렇게 달려’ 하면서, 치마를 잡고, 조신하게 종종종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해서, 바로 리오 올림픽 여자 육상경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전 세계 공주들의 달리기 대회'라고 말해주면서 말이다.

     

사실 속 마음을 말하자면, 내 딸은

    

‘알뜰살뜰 깨끗하게 살림하면서, 돈 벌어오는 남편이 귀가했을 때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아이들을 잘 기르는, 그리고 자기 계발은 애들과 남편이 학교와 회사에 갔을 때, 문화센터나, 운동, 쇼핑 등으로 표출하는’ 여유롭고, 우아한 여성이 되기를 바라는 점이 없지 않다.


반맞벌이(?)로 동동 거리면서, 친정의 도움으로 버티는 나로서는 내 딸이 덜 힘들기를 바라니까.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전업주부’라는 이유로 희생과 양보를 너무나 당당히 요구하는 한 편, 본인 스스로도 여성의 한계를 인정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심지어 맞벌이를 하면서도 시댁만 가면 부엌데기를 면치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카봇의 맞벌이 엄마처럼 말이다!!!

추석이 며칠 안 남은 지금 여성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힘들어도 내 딸이 본인의 커리어를 가지고 항상 당당하기를 바라게 된다. 고등학교라는 고등교육을 받고 주체적 여성으로 자라날 내 딸에게는, 차라리 그게 좀 더 쉬운 길일 테니까.   

 

물론, 전업 주부가 된다고 해도 가족에의 희생으로 책임을 다하는 주부가 아니라.

가족 구성원을 위한 합리적인 시스템을 개발, 실행, 운영하는 현대적인 주부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 하면 된다.

그럼으로써 시댁이나 남편에게 언제든지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합리적인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주체적인 여성이 충분히 될 수 있다.


나도 전업주부 기간이었을 때  전혀 쫄지 않았다. 그러나 전업주부에 대한 '아줌마'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구시대적인 발상과 맞물려 전쟁 중이기에, 전사의 마음으로 살아나가는 것 같다. 10년 후에는 더 많이 바뀌기를 기대하며, 계속 싸워나갈 수밖에.


내 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여자 아이들이 여성으로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딸을 가진 부모들이 더 앞장서서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남녀평등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가끔 페미니즘이란 단어에 남성뿐 아니라 여성까지도 경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시대에 고등학교, 대학교 나온 여성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면, 심각하게 공부에 들어간 돈이 아깝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16년을 남녀평등 교육을 받았는데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니까 말이다. 참고로 페미니즘은 '남녀평등' 운동이다. 여성의 우월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내 딸이, 주체적인 여성으로 시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비혼과 결혼, 맞벌이와 전업, 출산과 비출산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그때까지는 만화 하나를 봐도, 동화책 하나를 봐도, 좀 더 섬세하게 설명해주고 바로잡아줘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일단 운전부터 좀 배워야 할 것이다.

아... 운전 너무 어려운데.

이건 여자 남자를 떠나, 운전대 공포증인데...... 어쩌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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