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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망생 성실장 Sep 02. 2016

맥도날드 면접 & oje 후기 (2)

남자 화장실 세면대는 왜케 건조합니까!!

맥도날드에서 간편 면접이 끝날 때, 매니저는 oje 라는 것을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았었다.


oje는 맥도날드의 심층 면접 이랄까 1시간 실습 같은 그런 것이다.    


1시간 동안, 매장을 둘러보며 직접 일을 해보면서, 회사와 본인 스스로가 일을 할 수 있는지 테스트해보는 것이다. 1시간의 시급은 따로 없고, 대신 햄버거 세트를 준다고 했다. 의상은 상의는 유니폼을 입지만, 하의는 따로 준비가 안되어 있으니 검정색 바지와 단정한 신발을 신고 오면 된다고 했다.    


면접을 보고, 집에 와서 사실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나야 별 상관없었지만, 특히 친정 부모님은 보수적인 분들이라

‘가정주부가 일을 한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되는데, 더구나 맥도날드라니!!!’ 하는 생각에 거의 드러누을 지경이었다.    


친정 엄마는 주말이고 밤이고 애들을 봐줄 테니, 결혼 전에 하던 덜 힘들고, 보기 좋은 논술강사를 어떻게든 해보라고 계속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사교육 강사는 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오래 일을 쉬었기에 다시 시작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았지만, 남편의 일을 돕는 것을 병행해야 하기에 오전에 일을 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육체노동’ ‘단순 노동’을 하고 싶었다!!!    


최근 몇 달 동안, 큰일을 겪으면서 최대한 생각이란 것을 하고 싶지 않아졌다.


농부처럼, 나무꾼처럼 정직하게 땀 흘려 돈을 벌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일이 험해도, 남들이 보기에 안쓰러워보여도 상관없었다. 솔직히 컴퓨터 앞에 앉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맥도날드 알바에 집착했던 것 같다. (도배, 타일 등의 일도 알아봤지만, 교육기간이 너무 길고 텃세도 좀 무서웠다.)    


    



주변의 걱정을 뒤로하고, 맥도날드 oje 실습을 갔다.     


매장안의 직원들 탈의실에 갔는데, 생각보다 협소해서 꽤 놀랐다. 그리고 옷도 너무 작았다. ㅠㅠ    


큰 사이즈 셔츠를 다시 줘서 갈아입었는데, 아무래도 주인이 없는 옷이 다보니 좀 더러웠다. 얼룩도 있고, 그리

고 여전히 좀 작아서 브래지어가 다 드러나 신경쓰였다. 그래도 그래봤자 1시간이고, 매장에 손님도 없고 아무도 날 안본다는 생각에 불편함은 잊기로 했다.     


직원은 나를 부엌으로 데려갔다. 생각보다 일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그리고 깨끗했다.    


주부의 눈으로 조리대, 개수대등을 봤는데 엄청 깨끗해서 놀랄 정도였다. 


첫 교육은 20초 동안 손을 닦는 것이었다. 소독약으로 팔꿈치까지 꼼꼼히 씻고, 마지막 수도꼭지도 휴지로 잠그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1시간동안 매장 청소와 관련된 실습을 했다. 걸레와 행주를 구분해서, 위에서 아래로, 손님들에게 방해가 가지 않게 직접 해보도록 시켰다. 이미 한 번 청소가 끝난 직후여서인지 매장은 깨끗했다.   

  

이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화장실이었다. 화장실 청소도 배워야 하기에 남, 여 화장실에 들어갔다. 생전 처음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이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남녀 화장실 차이점을 하나 알게 되었다.


여자 화장실 세면대는 물기가 있어서 닦아야 했지만, 남자 화장실 세면대는 물기 하나 없이 아주 뽀송뽀송했다는 점이다.

(이런 남자들 같으니라고!!!)    


그렇게 청소를 마치고, 다시 손을 닦고, 지점장?인 듯한 분이 햄버거 세트 하나를 고르라고 해서 상하이 세트를 말씀드렸더니 포장해둘테니 올라가서 옷 갈아입고 내려오라고 했다.    


옷을 갈아입고, 벗은 옷은 잘 개어놓고, 1층으로 내려왔다. 교육시켜주었던 직원은 그새 일하러 갔는지 안보이고, 카운터 직원이 햄버거 들고 나가면 된다고 했다. 다들 너무 바빠보여서, 일일이 인사를 하지 못하고 도망가는 것처럼 나왔다.     


어영부영 나왔지만, 그래도 직원들이 oje를 하면 입사는 정해진 것이라는 식으로 말해줘서 안심이 되었다.


   



교육을 마치고, 남편 차에 타니 갑자기 온 몸이 아팠다. 매장이 워낙 깨끗했기에 청소를 했다기보다 흉내 낸 것에 가까웠지만. 직원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긴장을 하는 바람에 몸살이 오는 것 같았다.     


집에 와서, 할 일을 미루고 일단 잤다.


정말 늘어지게 잤다.     


그날, 우린 결혼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을 만큼 다퉜고, 맥도날드 알바는 떨어졌다.    


며칠 뒤, 매니저가 문자로 8시간 근무는 안돼냐고 연락이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8시간은 힘들다고 했더니, 그럼 일을 못한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사실 oje를 하고 나서 남편앞으로 사업자 등록증 발급과 수입이 조금 있어서 내가 직장 의료보험에 가입되어도, 따로 지역의료보험을 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되어,  맥 알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이긴 했다.


그런데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 저쪽에서 먼저 거절을 했다는 사실이 좀 많이 힘들었다. 


게다가 그 와중에 두어군데 면접을 본 작가, 사무직에서 다 불합격 통지가 왔다.


그래서 그런가 "시간 조정은 핑계고, 맥도날드에서조차 나는 환영받지 못하는 구나. 내 능력이 그렇게 없구나" 하는 억측까지 들면서 더 힘들었다.


그래도 주부 7년차, 누군가는 40군데 이력서를 넣었더니 두 군데만 면접을 볼 수 있었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10개정도 밖에 이력서를 안 넣었으니 투덜거리기엔 아직 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래도 맥 알바 면접 경험은 즐거웠다.

적어도 앞으로 내 집은 맥도날드만큼은 깨끗하게 만들어야지 하는 목표도 생기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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