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똥칠해도 살아야 한다.
어영부영 짬 시간이 나면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본다.
요즘에는 유튜브의 내성발톱에 빠져있는데. 오늘은 갑자기 옛날 사진이 보고 싶었다.
옛날 사진을 보다가 14년 전, 큰애 돌잔치 날 사진을 보게 되었다.
곱게 화장을 하고, 화사한 한복을 입고,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그날,
나는 내 인생에 가장 예뻤던 날이 바로 큰애 돌잔치라고 생각한다.
그날 정말 예뻤더랬다
결혼식날보다 훨씬 더더욱
그날 화장한 엄마를 못 알아본 아이가 너무 울었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양가가 함께 하는 자리여서 싫었고
사람들이 많은 것 자체가 그리고 내가 주인공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나 스트레스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나는 곱고 고왔다
정말 재벌집 사모님 같았고, 젊었고, 빛났다.
그날 찍었던 사진을 보니
문득 내가 100살이 되어 죽더라도, 이 핸드폰의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젊을 때 사진이면 어떤가.
아메리카토 빨대를 빨고 있으면 어떤가
예쁘니까 괜찮지 않을까?
친언니한테 사진을 보내주면서, 이걸 영정사진으로 쓰면 어떨까?라고 물어보니
언니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 내가 또 자살을 생각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는지
빨리 답장이 왔다.
"100살 넘어 죽을 건데. 너무 어린 사진이다. 내가 실리프팅 해줄 테니 또 사진 찍어라.
나중에 네 딸 결혼식, 네 손주 결혼식 사진이 더더 예쁘게 찍힐 거다. 더 예쁠 날이 많을 테니 벌써 그런 생각하지 말아라.
벽에 똥칠을 해도 좋으니 오래오래 살자"
약을 먹으면서 자살 충동은 거의 없어진 상태라서 언니의 반응이 당혹스럽고
언니를 그렇게 걱정하게 만든 내가 죄스러웠다.
나는 답장으로
"좋지, 꼭 실리프팅 해줘, 벽에 똥칠을 해도 오래오래 살자"
라고 보냈다.
어쩌면. 늙었지만, 더 화사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을 날이
그래서 늙었지만 더 마음에 드는 사진을 남길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 단 내 딸이 독립하는 날 크게 웃으며 사진 한 장 찍어야지 ㅋㅋㅋ
근데 진짜 그날 사진 너무 예쁜데
어디 보여주질 못해서 참 아쉽네......
진짜 고현정+송혜교+전지현 같았는데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