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자... 가 맞다
정신과를 다니고, 우울증 약을 먹고 있으니,
그런데 암환자, 치질환자 등의 어감과 정신병자의 어감은 참 많이 다르다.
애 둘 엄마
사업장1의 공동 대표,
사업자2의 직원
집도 있고
부동산 투자도 하고 있는
은행 대출에 허덕이는 아직은 실패 쪽에 가까운 투자자
그리고
정신병자
한 2-3일 동안 딩스뚱스라는 다음 만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다.
나이도 비슷하고, 결혼도 비슷한 시기, 아기도 비슷한 시기에 낳는 만화여서, 만화가 처음 시작할 때부터 봤지만, 이번에 끝나려고 그러는가, 3시간 기다무 또는 유료 회차가 다 무료로 풀렸길래 이번 기회에 처음부터 끝까지 며칠의 시간을 보내며 다시 한번 정독했다.
나는 딩스뚱스, 어쿠스틱라이프, 대학생활, 슬프게도 이게 내 인생, 모죠의 일기, 낢의 일기(?) 등등 일상툰을 매우 즐겨 보는 편이다. 특히 비슷한 나이대, 비슷한 시기에 결혼, 임신 출산을 그린 딩스뚱스 / 어쿠스틱 라이브는 진짜 친구 이야기 보듯이 보았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대부분의 주부 일상툰을 어느 순간 안 보게 되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육아를 하며, 그들은 경단녀가 되지 않고 커리어를 이어 갈 수 있게 남편들이 도와주는구나라는 것을 느끼면서 그때부터 만화를 좀 쉬었었다.
너무 부러웠었다. 만화를 볼수록
나는 내 있지도 않은 커리어가 아까웠고 ( 평생 아가리 지망생이었고, 제대로 열심히 한 적은 없다)
집안일을 도와주는 그들의 남편이 부러웠고
친구를 만나는 그들이 진짜 부러웠고
아이를 무조건 사랑하는 그들이 이해가 안 됐고
일상 하나하나를 귀하게 보고, 사랑스럽게 보고, 영감을 떠올리는 그 작가 마인드가 그 "여유"가 진짜 부러웠다.
나의 현실은
투잡 쓰리잡을 뛰는 남편과 사네마네 악다구니를 하고, 애들이 듣든 말든 쌍욕을 하며 물건을 던지면서까지도 싸워봤고,
아이들을 위해 목숨도 내놓고, 아이들을 위해 돈을 악착같이 모으고 아끼고 벌었지만
애들이 너무 짐스러웠고 무거웠으며
산후조리는커녕 애기 기저귀 한번 갈아준 적 없는 남편이 너무 미웠으며
애들을 봐주는 친정엄마에게 평생 죄스러워하면서도 정말 뻔뻔하게 애를 완전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이 내 심장을 누르고 있었으며
석사까지 해놓고 꼴랑 콜센터에서 남자 팬티를 팔며 꼴랑 180만 원 밖에 못 벌지만, 그 벌이에 진심으로 너무나 감사해야만 하는 현실이
나를 매우 하찮게 만들었었다.
그래서
내 또래의 일상툰을 그리며 돈도 명성도 챙기며, 육아와 남편과의 사랑까지 챙기는 그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그래서 한 동안 딩스뚱스 / 어쿠스틱 라이프를 안 보았었다.
나와는 다른 일상인 것 같아서.
그러다 딩스뚱스가 한동안 오랜 휴재를 끝내고 다시 돌아온 것을 확인한 것이 며칠 전이고,
다시 나도 부하직원도 있고, 이제 빤스도 사고, 양말도 사 입는 부자가 되었으니 여유롭게 만화를 보기로 결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것이다.
시즌 13인가? 그 집 큰애도 중학생이고, 우리 집 큰애도 중학생이니 14년 정도는 연재한 것 같은데, 그 만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복기하면서 읽으니
이제 새롭게 안 보이던 것들을, 그 행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먼저, 그녀도 우울증을 겪던 시기가 있었다. 아마도 외국생활의 향수병과 육아와 일에 지쳐서 그러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다. 그래도 긍정적으로다가 버티고 이겨냈다.
또한
만화를 보며 만화에는 없는 상황을 이제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 남편도 엄청나게 가정적이나. 짐작건대 미친 듯이 일에 집중했으리라 싶다. 만화를 보면서 그녀의 남편이 얼마나 일에 집중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으며, 특히 눈부신 그녀 남편의 성공 ( 비단 돈이 문제가 아니라 암튼 성공하셨다 ) 을 보건대, 진짜 우리 남편처럼 밤새, 주중 주말 없이 아마 일에 매진하셨으리라. 결국 그 집 남편도 시간이 되면 집에서 애들을 봤겠지만, 아마 절대적인 육아 살림 시간 자체가 그다지 많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와는 달리 살림도 하고, 육아는 진짜 진심으로 하고, 대신 밤에 잠을 줄이면서 마감을 지킨 것이었다.
나는 피곤하다고 자고, 술 먹고, 신세한탄을 할 때,
그녀는 그럴 시간조차 아끼면서, 일상을 돌아보고, 그 속에서 아이템을 꺼내고, 현실이되 현실이 아닌 만화를 그리느라 고민을 하고, 구상하고 작품을 완성했으리라.
그렇게 밤을 새고, 또 아침을 차리고, 아이들을 기르며, 아이템을 위해 밖에 나가 뭐라도 했으리라
만화를 보며, 마감 한 번 늦춘 적 없는, 알찬 내용의 긍정적인 일상을 보면서
그런 행간이, 상상이 되고, 아니 확신이 들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만화가로 그녀가 자리를 잡고, 그녀의 남편이 그렇게 성공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사실 청소년기, 대학생, 심지어 대학원 졸업하고, 회사를 다닐 때도,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았다.
열심히가 뭔지 몰랐다. 대충 해도 대부분 중상은 했었고, 그냥 착하고 둥글둥글했기에 다들 좋아해 주었다.
좋은 집안에서, 착하고 똑똑한 아이였다.
시집만 잘 가면 되는데, 남자 보는 눈이 없었고, 심지어 우리 엄마도 없었다. 그래서 쓰잘데기 없는 연애 몇 번 하고,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나를 많이 고생시켰지만
이제야 열심히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진짜 진심으로 성실하다는 것이, 집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살게 해 준 고마운 사람이다.
( 그만큼 고생시킨 다는 것이지만... )
암튼, 비록 지금 나는 내 꿈을 위한 도전, 작가에의 도전은 못하고 있지만
돈을 버는 일과 가정을 지키는 일에는 진심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
내가 직접 지난 7-8년간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친구 한 번 못 만나고, 여기저기 영업을 하면서, 장사를 하면서, 직원일을 하면서,
동시에 애들을 기르면서
진짜 당당하게 열심히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경지에 오니
이제야
그녀들이 꿈을 위해서
애들을 기르며, 살림을 하며, 매일 밤마다 마감에 쫓기며 만화를 그리는 그 일상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집중하고, 열과 성을 다했는지
"긍정적"인 만화를 그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짐작이 아니라 확신이 드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집중해서 열심히 살아보니 말이다.
행복한 집은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다양한 이유로 불행하다고 했던가
그와 비슷하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하루를 사는 것 같다.
정신병자이지만
나도 오늘 당신과 비슷하게 하루를 열심히 살았다.
요즘 쬐끔 진료를 게으르게 받고 있긴 한데...
사실 금요일에 진료받으러 갔어야 했는데, 사무실 이전 때문에 못 가긴 했지만
비록 내 꿈인 작가를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돈과 가정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이긴 한데..
그래도 정신병자인 나도 진짜 오늘 열심히 살았다.
정신병자이지만
나쁘지 않다고
지금처럼 일단 열심히 잘 살자고 다짐하는 요즘이다.
만화는 정말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