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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망생 성실장 May 25. 2024

100만 원짜리 핸드백을 살 명분

나는 가방이 많은 편이다

대학생 때 엄마가 사준 작은 미니 팬디 가방도 있고, 코치도 2개나 있고, 루이뷔통 도 있다. 

나는 무조건 크로스백만 쓰는데. 가방이란 물건의 기능은 "두 손을 자유롭게" 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숄더백이나 특히 토트백은 가방의 기능적인 점이 무조건 반감된다고 생각한다. 

백팩도 좋아하지만, 특히 핸드폰 등을 항상 쥐었다 놓았다 해야 하는 점 때문에, 무조건 크로스백만 든다. 

아! 그리고 평소에 노트북 2개를 노트북 전용 백팩에 넣고 다닌다. 


평소 나의 옷차림은 검정 양말에 흰색 슬리퍼를 신고, 청바지에 큰 오버사이즈 남방을 입고, 뒤에는 노트북 2개가 들어가는 큰 백백을 매고, 앞으로는 크로스백을 맨 차림이다. 

큰 딸이 "엄마는 참으로 눈에 띈다"라고 말한다.

온 동네를 슬리퍼를 신고, 노트북 가방을 멘 중년의 여자가 흔치는 않을 테니......

암튼 이런 나의 옷차림은 앞으로도 내가 일을 하는 한 바뀔 일이 없다. 노트북 가방을 메고, 2개의 사무실을 버스 또는 택시를 타고 오고 가는 상황을 고려했을 때 가장 최적의 실용성을 갖춘 옷차림이며, 

남방만 잘 입으면, 고객 상담을 할 때도, 나름 직장인처럼 보이는 최"저"의 기준을 통과한 차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크로스백인데. 사실 13년 동안 정말 매일 들고 다녔던 에이지(등산용품 브랜드) 가방이 있었다.

짙은 자주색의 나일론 천으로 된 가방은 세로가 긴 메신저 모양의 크로스백이었는데. 메신저백이라기엔 매우 미니 사이즈였고, 미니라고 하기엔 좀 긴. 정말 등산용 가방이었다. 

그 가방은 매우 가볍고, 핸드폰과 지갑과 간단한 아이들 머리끈도 들어갔고, 무엇보다 주머니가 잘 나뉘어 있어서, 생수통도 하나씩 넣을 수 있어서 간단하게 들고 다니기 진짜 좋았다.

큰 애기 15개월이었을 때부터 친정언니한테 훔쳐서 메고 다니기 시작한 그 가방을 나는 한 몸 같이 일 년 365일을 매일 메고 다녔다. 불과 1-2년 전까지 큰애가 12살 초 5학년이 될 때까지 정말 열심히 메고 다녔다. 끝이 떨어지면 세탁소에 맡겨 다시 달면서도 그 가방을 메고 다녔었다. 


 그 가방을 남편은 매우 싫어했다. 

"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기능만 고려한 가방"이며

"내 부인이 너무 허름해 보인다"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처음에 5-6년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은데, 큰애가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어떻게든 돈을 마련할 테니. 학부모 모임에 가서 추레하단 소리 안 듣도록 명품백 하나 사라고 성화였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버텼었다. "명품백을 사는 조건은 할부가 아니라 일시불로 결제할 수 있을 때, 애들 봐준 친정 부모님께 밥 한번 사드리는 정도라도 효도 한 번 한 후에 생각해 보겠다"라고 했었다. 

감사하게도 그 사이에 코로나도 한 3년 있어서, 학부모 모임은 더더욱 없었기에 남편은 가방을 보면서 몰래 갖다 버리고 싶다. 태워버리고 싶다라고 말을 하면서도, 명품백을 사줄 명분이 없었기에 더욱 화를 냈었다.


그러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코로나가 풀리고, 학부모 참관 수업을 학교에서 시행하다고 연락이 왔다. 

서울로 이사 와서 첫 학교 행사 참석하게 된 것이다.

서울 학부모들은 막 엄청 꾸미고 그럴 텐데, 서울 사람들은 막 옷차림 명품 같은 걸로 일단 사람을 평가할 텐데

너무 추레한 나 때문에 우리 딸들이 왕따 당하거나, 친구를 못 사귀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 들게 되었다. 


아마도 나 스스로도 나 자신이 추레하다고 느낄 만큼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때를 파고들어 남편이 또다시 명품백 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막 자기가 고민을 하고, 검색을 하고, 중고나라도 보고 하더니, 

어쩔 수 없이 할부는 하지만, 할부를 낸다고 해도 생활에 지장 없이 하겠다. 

자식 생각해서 가방 하나 사라라고 엄청 성화를 했다. 


그 결과 나는 성화에 못 이기는 척, 난생처음 내 돈 190만 원을 들여. 중고 루이뷔통 크로스백을 하나 사게 된 것이다. 


나는 주변인들이 사치를 부린다고, 그까짓 가방이 200만 원 돈을 하냐고 그것도 중고로! 뭐라고 할 줄 알았다.

주변인이라고 해도 친정 부모님과 친정 언니지만


웬걸! 친정 식구 모두 박수를 치며 좋아하며, 사위에게 고맙다고 하면서 아주 좋아들 하시는 거다

우리 친정은 사실 외모지상주의자들이긴 한데.

그래도 그까짓 게 중고가 200이나 하니?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그리고 실제로 학부모 모임에서 나는 난생 처음 샤넬가방을 현실에서 봤고, 프라다, 루이뷔통은 무슨 교복처럼 많이들 들고 있었다. 우리 동네는 부자는 아니지만, 중산층이 살고, 그때 특히 코로나 이후 첫 학교 행사참여이고, 2학년인 저학년 학부모들이라 다들 진짜 최대한 꾸미고 온 것 같았다. 

그날 남편 말 듣고 가방 산 것을 가장 다행으로 여기긴 했다. 


남편은 그 가방을 볼 때마다 

"내가! 부인한테 이 정도는 해줄 정도다!"라는 혼자만의 뿌듯함으로 매우 좋아한다. 


그렇게 그 가방을 1-2년 정도 들고 다녔다. 1년 할부가 끝난 지 몇 개월 안 지났으니 햇수로만 2년 인 것 같다. 

그런데 좀 지겹다... 다시 그 천 가방을 메고 싶다. 

갈색의 루이뷔통 무늬가 여름이라 그런가 무겁고 덥게 느껴지고

핸드폰 2개를 들고 다니다가, 사무실 2 업무폰까지 3개의 핸드폰을 넣기엔 좀 작기도 하고

얇은 끈이 어깨를 아프다고 하고 등등 

요즘 들어 갑자기 그 명품 중고 200만 원 루이뷔통 가방이 좀 부족해 보이는 거 아닌가?


그래서 알라딘에서 2만 원인가 주고 산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외국어가 쓰인 책 굿즈, 짙은 빨간색의 에코백 크로스를 며칠 메고 다녔다. 

남편이 하루 이틀 참다가 3일째에 버럭 화를 냈다.

"왜! 그런 가방을 메냐! 저 루이뷔통이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가방을 사줄게, 너는 명품백만 들어라!

너는 꼴이 허름하고 꾸밀 줄을 모르니, 명품이라도 달아야. 사람들이 하찮게 보지 않는다"라고 말을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가방을 사네마네 며칠을 이야기하다. 드라이기를 던지면서 싸움까지 하고, 결혼 후 처음으로 백화점 매장에도 가게 되었다.

가방 하나 새로 사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긴 했는데...... 못 살 것 같다. 


내가 찾은 것은 롱샴의 가죽으로 된 미니 크로스백인데. 

롱샴이 그렇게 비싼 줄 몰랐다. 80만 원 정도 하는 것이다. 찾아보니 이름을 아는 브랜드들은 어쨌든 돈 100만 원은 있어야 쪼끄만 미니 가방을 살 수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남편은 백화점에서 80만 원이든 100만 원이든 사줄 수 있다고 하는데

(사주는 것이긴... 그 돈도 내 돈인데)

곧 사무실 이전으로 돈도 들어가고, 분양받은 사무실, 분양받은 호텔 ㅠㅠ 때문에 머리가 복잡한데 돈백을 우습게 쓸 수는 없어서 거절했다. 


결국

다시 남편을 생각해서 좀 무겁지만 루이뷔통을 다시 메고 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감사해야 한다. 이렇게 비싼 가방을 멜 수 있다는 지금에

그리고 이렇게 비싼 가방을 단 2년 만에 지겨워하다니 반성해야지


돈 백, 100만 원.... 살려면 살 수도 있다는 현실에 매우 감사하지만

아무래도 사지는 못하겠다. 한 30만 원이면 사겠는데 말이지.

아니다. 솔직히 30만 원도 가방 따위에 쓰기엔 아깝긴 하다.

한 10만 원이면 모를까. 


아니다. 10만 원이라도 사면 안된다.

루이뷔통은 온 가족의 바람과 학부모 모임이라는 명분이 있었는데,

단지 그 좋은 비싼 가방이 질린다는 이유로 돈을 또 쓴다는 것은 명분이 없다. 


고민을 한 끝에 결정했다. 

명분 없이, 예쁘단 이유만으로, 내 기분을 위해서란 이유로는 5만 원까지만 허락한다.

그 이상은 명분이 확실하게 있어야 소비를 한다.라고 말이다. 

그래야 영끌한 내 집을 지킬 수 있다. 그래야 내 자식들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다.

무엇보다

그냥 나는 기능성을 바탕으로 한 명분이 가장 중요한 사람인 것이다.

그냥 짠돌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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