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기운이 쪽 빠져있다. 항상 에너지가 넘치던 사람이 기운이 쪽 빠져있고, 호탕하던 목소리에 기운이 빠져있으니 보는 사람이 안타깝고 답답하다. 왜 저럴까? 어떻게 해야 힘이 날까 고민했지만 남편이 힘이 없는 이유 중에 하나가 내가 "시댁 단톡방에서 조용히 나왔기" 때문인 이유도 있기에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얼마 전에, 시댁 식구들 전체가 1박 2일로 여행을 다녀왔다. 중간중간 단톡방에 사진들이 올라왔다. 사진을 보는 것은 즐거웠고, 여행 자체도 큰 문제없이 편하고 즐거웠다. 그런데.
그런데! 가만히 보니 시댁 단톡방에 사위들은 없었다.
시어머니, 시아버지, 큰 시누, 작은 시누, 남편, 그리고 '나, 며느리'
가만히 보니, 나도 일하느라 바쁜데, 아무래도 그냥 단톡방이 아니다 보니, 단톡방에 글이 올라오면 왠지 뭐라고 꼬박꼬박 답을 해야 할 것 같고, 바로바로 봐야 할 것 같고, 편하지 않고 긴장되는 단톡방이 바로 시댁 식구들과의 단톡방인 것이다. 그런데 같은 이유로 사위들은 아예 단톡방에 오지도 않는구나 싶은 생각이 드니 갑자기 뿔이 났다.
그래서 남편 몰래, 그냥 홧김에 시댁 단톡방에서 조용히 나가기 기능을 사용해서 나와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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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 단톡방을 만든 사람은 사실 나였다.
시댁 식구들 모일 일이 있으면, 모두들 나를 바라보며 언제 어디서 모일지를 내가 주선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체질적으로 그런 일을 조율하는 것을 매우 힘들어하는 사람이며, 무엇보다, 내 남편이 말을 전혀 안 들었었다.
남편에게 "일요일에는 몇 시에 집에 오냐" 물어보면, 버럭 하면서, "일하다 보면 나도 몇 시에 끝나는지 몰라!"라고 화를 내기 일쑤였고, 시댁 식구들과 약속을 하면, 2시간씩 꼭 지각을 하는 사람이 바로 남편이었다.
일단 내 집안부터 언제 모임이 가능한지조차 알 수가 없는데, 내가 어떻게 모임을 주관하느냐 말이다.
또한, 주관한다면 돈도 관리해야 하는데, 아무리 첫째여도, 기저귀값 분유값도 못 내고 있기에 밥을 사거나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다들 고만고만하는데 얼마씩 걷자고 말할 만큼 강단 있는 새색시도 아니었다.
결국, 시댁 모임 할 때마다 남편과 싸우고, 눈치 받고 하다가, 그냥 내가 다 초대를 해서, 카톡에서 일정을 나누자고 한 것이다. 또 그때는 애기들이 어리고 귀여울 때라, 애기들 사진을 거의 매일 보내다시피 할 때여서, 겸사겸사 자식 자랑도 하면서 꽤 오래 단톡방이 유지되어 온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애들이 커서 애들 사진을 올릴 일도 없고, 삼 남매가 알아서 일정도 잘 짜고, 딱히 글이 올라오는 일도 거의 없는 톡방이 되었다. 그리고 심지어 사위들은 들어오지도 않는데, 가만히 보니 나만 남의 집 사람인데 싶었다. 결정적으로 일정을 짜고 그런 것도, 결국 삼 남매가 서로 전화해서 하는데, 톡방의 존재의 이유도 사라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나왔다.
그런데 남편은 그게 충격이었나 보다. 온 가족이 모인 단톡방에, 맏며느리가 상징적으로라도 있어주고, 중심을 잡아주었으면 했는데, 단톡방을 나온 것은 아예 맏며느리 자리를 내려놓겠다는 것으로 간주하였는지, 충격을 받은 듯하다.
하지만, 시댁과 나의 관계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단톡방에 매우 많이 신경 쓰는 것도 알고 있으니 다시 들어오라고 강요도 못하겠고,
또 조용히 나가서 아직 아무도 모르는데,
다시 초대해서 들어가면, 나갔다 들어온 것이 뽀롱나게 되면 시부모님께서 '또 싸웠었냐' 등등 걱정하시며 전화 오면서 일이 커지는 것도 귀찮아서, 다시 초대고 하기 싫고,
그렇지만, 맏며느리가 단톡방에 없는 것은 납득도 못하겠어서 섭섭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일평생 처음 기운이 쪽 빠져서 목소리까지 멕아리가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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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기운 빠진 남편을 보니......
못 견디겠더라.
결국 다시 초대하라고, 안 싸웠었다고 내가 다 말하고 안심시킬 테니, 그냥 다시 초대하라고 말을 했다.
사실 나가면서는 사위들도 들어오면 들어간다고 딜을 할 생각이었지만
그까짓 단톡방, 한 때 자식자랑하면서 좋았던 시기도 있었는데, 좋았던 것 생각하면서 그냥 맞장구 쳐주면 되는 건데, 그리고 나는 자영업자로 사장이니 시간도 자유롭고, 사위들은 월급쟁이라 더 바쁠 건데, 사위들은 배려해 줄 수 있지 하는 생각까지 들고 있다.
남편은 아직 고민 중인데. 그냥 시누에게 말해서 다시 초대해 달라고 할까까지 생각하고 있다.
그만큼 힘 빠진 남편 사장님 보는 게 너무 괴롭다.
밉다 밉다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싸우고 화를 냈던 이유가
내가 이만큼 더 남편을 사랑해서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