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부는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시작됩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커피 한잔을 손에 들었습니다.
테이크 아웃 컵을 들고
돌아오면서 커피 지출 옆에 작게 적었습니다.
"아낄걸... 이 정도 자제력도 안 돼..."
가계부 옆에 적은 감정 소비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나는 왜 이 작은 사치를 '허락받은 기분이 들까?'
공원벤치에 않아 자신을 생각했습니다
문득 자녀들 교육비와 필요한 것에는 일 순위를 적는데 막상 저에게는 옷 한 벌,
책 한 권 사주는 걸 주저하게 됩니다.
더 중요한 사람이 '나'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우선순위에 나를 밀어내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10년 전 커피 한잔 사가지고 나오다가
느낀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돈을 어떻게 쓰는가 '경제 습관'인 동시에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생각했습니다.
결국, 돈을 쓰면서 나는 나를 어떻게 대접하는지 자문해 보는 시선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나 자신을 대접하는 것이 익숙한지 불편한지...
내 삶에서 나는 과연 얼마나
자신을 존중하고 보내는지 생각했고
이후 저의 행동에 균열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자신을 대접하지 못하면
세상도 나를 대접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날입니다.
남 탓도 내 탓도 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부터 나를 온전히 대접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 날입니다.
자신을 대접하지 못하면 결국 세상도 저를 대접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 날입니다.
내 삶의 중심을 '나'에게 다시 돌려놓을 때 비로소 돈도 나를 향해 흐르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이건 나한테 과분해'
'이 정도면 됐지 뭐!'라고
스스로 한계를 긋고 내가 벌 수 있는 돈, 누릴 수 있는 풍요에 무의식적으로 '뚜껑'을 씌우고는 했습니다.
십 년이 지나,
현재 저는 '나 스스로 한계를 만들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스스로 한계를 깨는 것이 아니라, 한계조차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내가 얼마나 벌었는가 보다,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가를 기준으로 소비합니다.
수입을 한계로 두면, 스스로 '난 이 정도 버니 이 정도는 써야 돼.'라고 한계를 긋지만,
나를 가치 있게
생각하는 순간, 나는 있는 그대로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자기 가치가 낮아지면 소비도 위축되고 그 위축된 감정은 다시 경제흐름을 좁힙니다.
이 선을 더는 느끼지 않도록 저는
"내가 나를 대접하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
필요하고 감정에 충만한 삶을 살아갑니다.
나는 나에게 충분히 감사한 사람이다라는 말로
하루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저의 앞에 놓인 커피 한 잔을 보면서
10년 전 저와 지금의 저는
많이 성장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본질의 중심에는 커피 한잔에 부여하는 나의 태도와 시선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하루 1번 나에게 선물하는 시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물건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좋은 말 한마디, 따뜻한 차 한잔, 하루 1시간 산책
'나를 위한 시간'을 의식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나를 위한 시간을 의식적으로 만들고 충만한 감정의 생길 때, 나다움의 경제 회복이 이뤄진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도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산책 다녀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