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건 넌데 아픈 건 나네?

나쁜 건 넌데, 아픈 건 나네?

by 오승하

오늘도 나는 붓을 든다. 취미로 시작한 민화가 재미있다. 초등학교 때 곧잘 그림을 잘 그린다는 소리를 들었다. 상도 곧 잘 탔다. 선생님께 칭찬을 받고 그림을 전공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쳤다.


중학생이 되었다. 미술 시간이 별도로 있으면서 더 관심이 생겼다. 미술 선생님이 좋았다. 선생님의 그림은 작품이었다. 방과 후 나에게 미술 동아리를 권하셨다. 너무 행복한 순간이었다. 동아리 시간은 중학교 생활 내내 한 주를 한 달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활력소가 되었다.


동아리 활동하면서 물감이 생각보다 많이 필요했다. 물감을 아끼면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 엄마에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잔소리 들어야 할 생각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지인이가 찾아왔다. 집에 물감이 쌓여 있는데 생각나서 가지고 왔다고 했다. 고마웠다. 내가 물감이 필요한지 어떻게 알았는지 생각도 잠시, 왠지 공짜로 받는다는 느낌에 마음과 다르게 괜찮다고 했다. 이런 내 마음을 안 지인이는 우리 집에 이런 물감이 많아서 엄마가 정리한다고 버리려는 것을 너 생각나서 가져왔으니 받아달라고 했다. 정말 고마운 친구다.


그날 이후 지인이랑 같이 하교하고 등교했다. 학교 앞 솔 분식이 아지트가 되었다. 떡볶이와 순대 쫄면을 먹은 날은 세상을 다 가진 날이다. 미술 동아리도 재미있다. 선생님의 가르침. 동아리 반의 선후배들이 내 그림을 좋아해 주었다. 중학교 시절은 매일 행복한 날들이 나를 기다려 주었다. 오늘도 우린 솔 분식 아지트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승하야, 그림 재미있어?"

"손 끝에서 전해지는 붓의 질감이 좋아. 그림을 그리고 색칠할 때 아무 생각 없이 흰 도화지에 색이 덧칠되면서 생명이 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이야. 지난번 물감 선물해 주어 잘 쓰고 있어."

" 나도 미술 동아리 들어가고 싶은데, 정원이 다 찼다고 그러더라."

"응. 나도 선생님의 배려로 들어간 거야. 선생님이 권해서 들어갔는데 안 했으면 어쩔번! 요즘 공부도 재미있고 그림 그리는 것도 재미있고 이렇게 소중한 친구랑 떡볶이 먹는 것도 재미있어. 다 너 덕분이야!"


다음날 하굣길에 지인이 표정이 우울해 보인다. 정말 그림 그리고 싶은데 자기도 미술부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나에게 미술선생님께 부탁하라고 했다. 원칙이 있는데 부탁은 좀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지인이가 눈물이 글썽 거린다. 물감 선물 받은 것이 쓰던 것이라고 했지만, 새것 받은 것 같기도 했다. 왠지 의무감이라도 이야기를 해야 될 것 같은데, 원칙 깨면서 선생님께 부탁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며칠 밤 고민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인이 표정은 어두워지고 왠지 의무감을 실행 못한 찜찜함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런 마음이 미술 시간에 보였는지 요즘 그림이 왜 그러냐고 선생님이 물으셨다. 지인이 이야기를 했고, 선생님께서, 베스트프렌드는 중요하다며 지인이의 동아리 활동을 허락해 주셨다.


참새가 방앗간을 어찌 지나가랴. 오늘도 솔분식집에서 기쁨을 축하한다. 대학 합격한 것도 아닌데, 떡볶이 순대 쫄면까지 지인가 쏜단다. 맛있게 먹었다. 이제 지인이와 함께 동아리 생활도 한다. 행복은 늘 우리 곁에 있다고 생각했다. 진작 선생님께 이야기할걸 그동안 지인이가 마음 고생하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동아리 시간까지 우린 찰떡궁합이다. 수업 끝나고 지인이를 기다리는데 오지 않는다. 왤까? 지인이 반에 가보았더니 벌써 갔단다. 오늘 미술 시간이 있는데 이상하네. 미술실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지인이가 선배 후배와 이야기 꽃이 피었다. 나를 쓱 쳐다본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 간다. 내심 서운하다.


미술 시간이 되어 각자 그림을 그렸다. '왜 저러지?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그림에 집중이 안되었다. 끝나고 집에 가면서 물었다. 내가 혹시 무슨 실수한 것이 있냐고 물었지만, 지인이는 아니하고 걷는다. 내가 좀 예민했나 싶다. 혼자 미술실 갈 수 있는 것을 말이다. 앞서 가던 지인이가 뒤돌아 보며, 내일 학교 끝나고 솔분식 가지고 했다. 이번달 용도 다 써서 내일은 힘든데 했더니 엄마가 그림 잘 그려서 용돈 두둑이 받았다고 자기가 쏟다고 했다. 다음에 사라고 하니 알았다 하면서 헤어졌다. 엄마가 그림 잘 그리면 용돈도 주는구나! 부럽다. 난 아직 미술 동아리 한다고 집에 말도 못 했다.


벌써 종례도 끝날 시간인데 왜 안 오는 거야. 오늘 떡볶이 먹자고 본인이 이야기하고, 요즘 지인이가 이해가 안 될 때가 종종 있다. 3반 앞에 가니 이미 다들 가고 당번만 책상 정리를 했다. 지인이는 일찍 갔단다. 아! 정말 친구의 태도가 이해가 안 되었다. 집에 무슨 일이 있나. 이렇게 빨리 가고, 벌써 몇 번째 인지 화가 났다. 하교 길에 솔분식을 쳐다보았다. 오늘 떡볶이 먹자고 자기가 약속하고 보는 순간, 지인이가 미술부 동아리 후배들과 웃으면서 떡볶이를 먹는다. 그냥 갈까 하다가 들어가서 물어봐야겠다 생각했다. 오해가 쌓이면 안 되니 말이다.


"너 여기서 뭐 해?" 차분하지 못했던 나는 감정이 섞인 목소리로 앞뒤 다 자르고 묻는다. 후배들이 놀라서 쳐다봤다. 지인이는 놀라면서, 마치 주눅이 드는 표정으로,

"승하야, 떡볶이 먹고 가. 배고프지?" 이야기한다. 표정이 왜 그래? 마치 혼나는 아이처럼, 묘한 분위기가 되었다. 오늘 역시 사과 없이 이 상황을 넘기려고 한다. 화가 났지만, 후배들 앞이라 말할 수 없어 인사하고 나왔다.


미술 동아리실에 가면 요즘 재미가 없다. 선생님도 무슨 말을 하실 것처럼 쳐다만 보고 말씀이 없다. 정겨웠던 선배와 후배들도 내가 미술실 들어서면 하던 말들을 멈춘다. 지인이는 이유 없이 나와 거리를 두는 느낌이다. 요즘 말로 왕따가 되었다. 그런데 어디까지 감정인지 무엇하나 이렇다 크고 작은 사건은 없었다. 한 달 남짓 2학기가 마무리되었다. 다음 해 나는 더 이상 미술 동아리를 하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2학년 선택 과목에서 미술 과목을 제외했다. 그림만 그리면 그때 감정이 올라와 붓을 들었던 시간이 아프다. 복도를 지나가는데 누군가 환하게 다가와 반겨준다. 중학교 때, 미술 동아리 후배였다. 학교 미술 특기생으로 들어왔단다. 그림이 따스했던 후배였다. 잘 지내냐고 반갑게 이야기하면서 지인이가 생각났다. 지인이는 그 이후 미술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전공한다고 들었는데 이후 소식이 궁금했다.


"지인 선배 중간에 미술 그만두었을걸요. 그때 사건 있었는데 모르셨어요?"

내가 어찌 알겠는가? 고등학생이 되었는데 중학교 동아리 사건을 말이다. 호기심 가득했지만, 그냥 묵묵히 있었다. 사건은 지인이는 내가 미술 동아리를 그만둔 후에도, 미술 선생님 눈에 들려고 가까운 사람을 통해 선생님께 호감을 가졌다. 선생님과 친한 학생들을 포섭했다가 필요가 끝나면 들러리로 만들어 상대를 힘들게 한 것을 선생님이 아시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선배가 강하게 자기 괴롭혔다고 했어요. 친한 친구가 자기를 힘들게 한다고 했어요. 자신은 친구가 승하선배 밖에 없는데 가슴이 아프다고요." 멍했다. 들으면서 지나간 일이었지만 어쩌면, 진실보다 바라본 사실을 단정 지은 너희들도 공범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선배가 그럴 것 같지 않았지만, 떡볶이집에서 선배가 그렇게 화냈던 장면만 보고, 화를 친구에게 내는구나! 생각했거든요. 그 후 지인 선배 불쌍하다고 모두가 나서서 감싸는데 나중에 알았어요. 선배 동아리 그만두고, 미영 친구 역시 어느 날 들러리가 되어, 힘들어했어요. 선생님께서 상담을 했는데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어쩜 선배도 피해자 일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죄송해요. 알고도 용기가 나지 않아 사과를 못했어요. 시간은 지났지만, 진실은 외면하고 본 사실만으로 판단해서요. 죄송해요."


시간이 흘렀다. 많은 날들을 가슴 아프게 보내었다. 좋아하던 붓을 손에서 내려놓았고, 나를 믿어준 선생님과 헤어졌다. 좋았던 선배 후배들과 소통하려고 하지 않았다. 마치 변명을 하고 지인이를 힘들게 할 것 같아 현실에서 도망을 쳤다.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그 친구에게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애꿎은 나만 자책했었다. 살아보니 알겠더라.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그런 사람들이 꽤 많았다. 나쁜 것은 너인데 아픈 것은 늘 내 몫이 될뻔한 시간들이었다. 중년이 되고서야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멘털을 가지게 되었다.


우린 그런 사람을 '나르시시스트'라고 한다. 이해관계가 없음에도 자기가 빛나기 위해서 친구도 들러리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김경일 교수의 <타인의 마음> 책에 보면 나르시시스트는 부모의 훈육으로 생기는 후천적 영향이라고 한다. 자녀에게 잘 못했을 때, 부끄러움, 수치심등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그릇된 칭찬만 하고 감싸 안으면 그 인정을 받기 위해 주변을 이용해서 빛나려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알려준다.


나르시시스트를 처음부터 알 수는 없다. 목적을 가지고 친절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본래 마음이 선해서 친절한 사람이 있다. 나르시시스트를 구분하는 방법은 첫째, 그 사람의 주변 인간관계를 살펴본다. 오래된 지인이 있는지, 친구들 이야기를 귀 기울인다. 보통의 나르시시스트들은 인간관계가 오래가지 않는다. 필요할 때만 친구이기 때문이다. 둘째, 잘못한 일이 있을 때 명확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사과를 하는지 살펴야 한다. 실수는 누구나 한다. 그런데 그 실수가 잦아지고, 사과를 얼렁뚱땅 넘기는 사람은 고려 대상이다. 세 번째, 엄마들이라면 자녀를 본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다. 부모는 이성적으로 행동하지만, 자녀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네 번째, 일단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과는 인연이 아니라 생각하고, 소통을 2번 이상 시도한 후에는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하지 않도록 한다.


나쁜 것은 그녀였는데 아팠던 것 나였다. 나는 그 경험 덕분에 그 이후 휘둘리지 않는다. 잘못을 하고도 사과하지 않는 사람, 물어도 제대로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대답을 회피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럼 더 이상 그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다. 나의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에너지 뱀파이어들이니 말이다. 긴긴밤 나르시시스트인 사람 때문에 보내었던 나의 삶이 떠오른다. 지금은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린다. 나에게 민화는 여전히 행복한 선택이 되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헷갈리는 사랑도 사랑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