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리는 사랑도 사랑일까

사랑은 헷갈리는 것이 아니야

by 오승하

오랜만에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점심 같이 하자는 말에 기분 좋게 후배와의 약속 장소를 찾아간다. 브런치 카페에 들어서니 이미 후배는 와있다.


"오랜만이네. 요즘 데이트 한다고 통 연락이 없더니, 설마, 오늘 청첩장 주려고 온 거니?"

후배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그동안 회사의 이야기와 나의 육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겨운 시간은 금방 흘러간다. 브런치 식사 후, 따스한 아메리카노를 사이에 두고 앉아있다. 잠시 후에 후배는 말문을 연다.


"선배, 사랑이 뭘까요?"

"사랑.. 갑자기 그것이 무슨 이야기야. 앞뒤 다 자르고..."

"수천 씨요. 연락이 드문 드문 돼요? 설사 연락이 되어 만나도 예전 같지 않고요.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후배 얼굴이 그동안 마음고생을 했는지 어둡다. 세상의 모든 사랑이 다 아름답지 않다. 사랑에는 균형이 존재한다. 후배의 남자친구는 어느 순간부터 연락도 잘 안되고, 만나도 재미없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일찍 헤어진다고 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 시간이 길어진다고 했다. 이해하려고도 해 보았고 기다려도 보았는데, 모든 사랑이 다 이런 것일까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고 했다.


문득 나의 20대가 생각난다. 나에게도 20대 풋풋한 사랑이 있었다. 딱히 무엇이 좋았는지 물어보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냥 좋았다. 하루 일과를 보내고 나면 저녁에 데이트할 생각에 저녁이 기다려졌고, 애꿎은 사무실 시계만 보았던 기억이 있다. 일상 속에서 만나도 무엇이 그리 좋았는지 매번 수다를 떨고는 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면서 손으로 내손을 무심히 잡았던 순간들이 있었다. 첫눈이 오는 날 손을 덥석 잡아 자신의 코트 주머니에 쑥 집어넣고 군밤 한 봉지 들고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던 기억이 있다. 설렘이었다. 이 길 끝에 법원 있다는 말에 그럼 가서 우리 혼인 신고하자고 했던 남자와 지금 나는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육아맘이 되었다.


나에게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언제 왔는지 모르게 와서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열정적으로 싸워도 관심이 있고, 애정이 있어 싸우는 시간들이 사랑이었다. 그런데 후배의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서로의 공통의 관심사도 없고, 취미도 없다. 연락도 잘 안된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았는지 물었다.


"물어보았지요. 혹시 고민이나, 나에게 서운한 일이 있냐고요?"

"용기 있네. 직접 물어보고, 뭐라고 하는데...?"

"없데요. 그냥 사는 것이 재미가 없다고만 해요...?"

"만남이 매번 즐거울 수는 없지만, 연락도 예전 같지 않고, 만나서도 핸드폰만 보는 남자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될 것 같아. 더군다나 전과 다르게 잘 웃지 않고 만남을 피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어쩌면 이미 사랑이란 단어가 멀어진 것일 수도 있어. 지나친 집착도 문제지만, 관심이 예전 같지 않아서 연락도 잘 안되어 불안하고 답답한 감정을 상대에게 느끼는 하는 사람이라면, 다시 생각해 볼 필요는 있어. 사랑은 배려가 전제되어야 하거든. 물론 내가 아는 사랑은 그래. 그런데 미영이가 느끼는 사랑은 배려가 부족한 것 같아. 적어도 미영이가 나를 찾아와서 물어서 이야기하지만, 사랑은 헷갈리는 것이 아니야. 상대를 사랑한다면 불안하고 답답하게 만들면 안 되지. 무슨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이미 용기 내서 물어보았으면 천천히 시간을 두고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았으면 해.?"


후배의 돌아가는 모습이 안쓰럽다. 다른 한편으로는 더 좋은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용기를 낸 미영이에게 계속 말을 안 하고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기다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싯점에서는 적당한 선을 긋고 다른 인연을 만났으면 한다. 우리의 삶은 무한하지 않고 유한하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감정은 편안하고 행복한 것이다. 행복은 어떤 결과물이 아니다. 행복은 사랑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만남에 있어서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특히 결혼을 생각하는 연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내가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것이다. 결혼은 생각보다 큰 고비를 많이 넘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연인과 부부가 되는 가장 기본적인 감정은 평안함이다.


만나서 편안한 사람 따스한 사람과 이 세월을 보내도 우리의 시간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만나는 순간 사랑으로 풍요롭게 가득 채웠다면, 이제는 남김없이 추억을 남기고 하나씩 덜어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핸드폰을 열고, 사진 정리, 가지고 있던 선물 정리, 지갑 속에 함께 갔던 영수증 흔적까지 하나씩 덜어내다 보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한 사랑도 결국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했던 시간 혹은 만났던 시간만큼 헤어지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흘려보내는 인연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헷갈리게 하는 사람과는 더는 관계를 유지하기보다 적절한 거리를 두는 것이 건강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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