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을 늘 위축되고 자신감 없는 모습으로 기억한다. 가끔 나를 수용적인 눈으로 바라봐주는 친구 앞에서는 까불고 장난치며 내가 가진 이상주의자의 끼를 부렸던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대체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눈치 보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이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학교에 보내야 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불안이 극도에 달하여 아이를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 같다. 아마도 나처럼 내 아이도 학교에서 잘 지내지 못할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염려가 나를 사로잡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불안에 지나지 않으며, 내 아이는 나와는 별개의 삶을 살아가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나는 어느 날 아이 손을 잡고 상담센터를 찾아갔다. 나의 상담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 문제로구나.”
내 이야기를 들은 상담자는 나에게 상담을 받아볼 것을 권유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 문제로구나. 그때부터였다. 내 삶에 낯선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내 인생의 전환점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와 나의 문제를 구별하려고 애쓰고, 나의 관점으로 아이를 평가하는 일을 멈추고, 아이에 대한 불안이 올라올 때는 눈을 감고, 입을 닫고 내 마음을 살폈다. 그래도 불안이 가시지 않을 때는 ‘내 아이는 옆집 아이다. 내가 잠시 맡아서 봐주고 있다.’라고 생각하면서 불안을 견뎌냈다. 내 잣대로 아이를 건드리는 일을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든, 적어도 엄마의 문제를 대물림하여 자신의 삶이 아닌 뒤틀린 타인의 삶을 살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보통 부모들은 남의 아이를 바라볼 때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허용의 폭이 넓어지며 그 아이가 가진 장점도 어렵지 않게 발견하는데, 내 아이를 보면 장점보다는 단점이 먼저 보이고 걱정이 앞서고 불안해지기 쉽다. 아마도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가 되면 아이와 자신을 별개의 존재로 생각하지 못하고 아이의 실패가 곧 나의 실패로 여겨져서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기 쉽다. 자신이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내가 알고 있는 길을 아이에게도 알려주어 시행착오를 줄이고 싶은 욕심이 생기고 그것이 집착이 되어 아이에게 그대로 투사되곤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아이가 누려야 할 배움의 과정에서 얻는 희열과 즐거움을 박탈하고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겨주는 부모가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몇 년 전, 해외에 사는 한국인 2세들이 다니는 한국학교에서 2년간 근무한 적이 있다. 그때 만난 아이들은 무척 사랑스러웠고, 아이들 특유의 무조건적 사랑을 나에게도 흠뻑 나눠주었기에 나는 그곳에서 참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지금도 기억나는 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자신의 경험과 상상을 이야기로 꾸며서 재밌게 들려주는 재주를 가진 아이였다. 조금은 과장된 몸짓과 목소리 흉내, 때로는 그림으로 표현도 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참 재미있게 들렸다. 나는 늘 ‘넌 참 재밌게 이야기를 잘하는 재주를 가졌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엄마와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과장된 표현을 하는 것을 보면서 '거짓말을 잘한다, 까불고 진지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비난하고 체벌하여 아이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신과는 성격이 많이 다른 아이가 혹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진실하지 못한 사람으로 평가받게 될까 봐 걱정한 나머지 아이가 가진 빛나는 장점을 보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내가 아닌 남이다”
때로는 너무 가까워서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그럴 때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보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법이다. 학교에서 많은 아이들을 만나는 상담교사로서, 그리고 아이를 먼저 키워 본 선배로서 부모들에게 권하고 싶다. 내 아이가 맘에 들지 않고 못나 보이거나 문제가 있는 것처럼 불안하게 느껴진다면, 그 마음을 아이에게 쏟아내기 전에 한발 뒤로 물러서고 눈을 반쯤 감고 아이를 바라보라고. 그래도 마음이 흔들릴 때는 ‘이 아이는 내가 아닌 남이다’라는 불편한 진실을 마음에 새겨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