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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소리 Jun 19. 2023

첫째 아이의 눈물

첫째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에 대하여

첫째로 태어난 게 제 잘못인가요?”     


   몇 년 전, 어느 초등학교에서 상담교사로 근무할 때 만난 아이가 울면서 나에게 했던 말이 아직도 마음에 아려온다. 당시 그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아래로 동생이 두 명 있었다. 모두 같은 학교에 다녔고, 맏이인 그 아이는 등하교를 할 때 동생들을 챙겨서 데리고 다녀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어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상담실에 놀러 온 아이는 상담을 하고 싶다고 했다. 요즘 왠지 모르게 짜증이 많이 나는데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아이에게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를 측정하는 그림검사를 해보게 했다.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면서 ‘너 스트레스가 엄청 많다고 느끼는구나’라고 말했다. 그러자 하얗고 갸름한 얼굴맑은 눈으로 늘 웃으면서 또박또박 야무지게 자기 생각을 말하던 그  아이가 한참 동안 눈이 퉁퉁 붓고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복받치게 통곡하며 우는 게 아닌가? 난 그저 그 아이의 우는 모습을 마음 아프게 지켜봐야 했다.     

  

   한참 울던 아이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아이는 맏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직 어렸지만 동생들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게 되었고, 동생들이 규칙을 지키지 않거나 서로 싸우는 일이 생길 때 대표로 부모님께 야단을 맞았단다. 동생들은 커가면서 이 아이를 만만하게 보고 자기 고집을 부리는 일이 많아졌고, 부모님께 야단맞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아이의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단다. 그럴 때마다 외로움과 억울함을 혼자 삼켜야 했다. 철없는 동생들과는 달리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이 아이는 마냥 해맑게 웃어야 할 10살의 나이에 뭔지 모를 불안과 화병을 마음에 새겨놓고 있었다.      


   첫째로 태어난 사람들은 대체로 책임감이 강하고, 자신의 욕구를 다 표현하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는 일에 좀 더 익숙할 수 있다. 아마도 첫째 아이로 태어난 숙명을 감당하기 위한 나름의 방어전략을 갖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마다 각기 사는 방법이 달라서 이런 성향을 건강하게 잘 활용하는 사람도 있고, 마음의 짐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내가 만난 아이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아이였기에 그 무게감이 더 크게 아이를 짓눌렀 것이다. 그 아이도 자신보다 어린 동생이 없었다면 아직 마냥 철부지로 귀여움을 독차지할 어린이가 아닌가. 동생보다 크다는 이유로 자유로운 어린이로 존재할 권리를 박탈당해야 한다면 아이 입장에서는 이보다 억울한 일이 있을까 싶다.      


자녀를 양육하고 관리하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지, 결코 같은 세대에 태어난 맏이의 몫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현장에서 상담교사로 일하면서 많은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이런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지만, 부모들은 부담을 준 적이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출생 순위에 따른 운명과도 같은 그 무게감은 상황에 따라서 성격에 따라서 그 정도가 천차만별일 것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책임을 지우려 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동생들을 챙기는 아이도 있고, 위의 아이처럼 과도한 책임감에 눌려 질식할 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 아이도 있다.


   그래서 부모들에게 권하고 싶다. 내 아이가 어떤 성격과 기질을 가졌는지,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달라고.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첫째 아이에게 동생들의 관리를 맡기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녀를 양육하고 관리하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지 결코 동생들과 같은 세대에 태어난 맏이의 몫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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