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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정나그네 Aug 29. 2016

예기치 않음에서 배우는 감사와 겸손

배낭여행을 통해 삶을 배우다

단 몇 분 후에 내가 어떤 일을 겪을지 난 알지 못한다. 그날도 난 어떤 상황을 겪게 될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예기치 않은 연착

사건 당일. 2시간 30분이면 런던에서 파리로 이동할 거라 생각하며, 스릴 넘치게 유로스타에 앉아 있던 날이다. 아슬하게 유로스타에 몸을 실으며, 무사히 열차를 탔단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왜냐하면, 늦게 유로스타를 예약하는 바람에 5~6만 원이며 끊을 열차를 16만 원이 넘는 돈에 끊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픈 가슴을 붙잡고, 안심하며, 1시간쯤 지났을 무렵일 까. 열차가 멈추어 서기를 반복하더니, 이제는 아예 멈추어 버렸다.

누군가 전선을 의도적으로 끊었다고 한다. 니스 테러 소식을 접한 이후라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차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다행히 2시간 반 열차를 8시간이 넘게 타며, 파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새벽 파리에서 그 수많은 택시 인파를 또 1시간 기다리며, 숙소에 도착했다.


#예기치 않은 여권 분실

정신없이 도착하여 아침을 맞으며, 그제야 짐 정리를 하며, 여권을 분실한 것을 함께 깨달았다. 배낭여행 두 번째 도시에서 이게 무슨 일인가. 분명히 유로스타를 타며 여권 심사할 때 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어느새 보니 여권지갑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28인치의 캐리어와 백팩과 작은 가방과 주머니까지 싹 다 뒤져보아도 진초록색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예기치 않은 넘어짐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허탈한 마음만을 안고, 숙소에서 대충 사진을 뽑아 먼저 경찰서를 방문했다. 경찰서 찾는 데만 2시간, 경찰서에서 사건 진술서를 받았는 데 별 의미 없어 보인다. 그리고 대사관을 방문했는데, 사진을 다시 제대로 찍어오라는 말에 또 다른 역으로 가서 사진을 촬영했다. 4시까지 하는 대사관이기에 사진을 찍고 보니 3시 50분, 급한 맘으로 다시 뛰어서 대사관을 가는 계단에서 쾅하고 넘어지면서 가방의 모든 물건이 쏟아졌다. 순간 서럽고 지치고 해서 눈물이 핑 나는 것이 아닌가. 또 오해영이 된 것만 같은 이 기분. 그래도 꾸역꾸역 짐을 챙겨, 대사관으로 도착해서 무사히 여권을 만들었다.



파리의 한국 대사관 앞에서 새로운 임시 여권과 함께.


#예기치 않은 사기

상한 마음 달래려고 홀로 에펠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멋진 배경과 자유로운 사람들을 맘을 달랬다. 왜 저걸 못 맞추지 하면서 도박 게임을 구경하던 중, 옆의 모인 사람들의 권유로 얼덜결에 게임에 참가했다. 옆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의 편으로 응원해져서 기분이 들떠 버렸다. 그렇게 잘 보이던 공이라 확신을 가지고 뚜껑을 열었는데, 다른 곳에서 공이 나오는 게 아닌가. 나의 20유로는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야바위에, 바람잡이에 당한 거였구나. 심상치 않은 하루다.


에펠탑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예기치 않음에서 오는 일상의 감사와 겸손함

정말이지 운수가 오지게 안 좋은 날이며, 또 오해영보다 슬픈 하루였다. 서글픔과 짜증을 충분히 표현하며, 지친 나를 스스로 다독이며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상하게 예기치 않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게 인생이기에 아무 일 없이 무탈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감사가 절로 나왔다. 일상의 소중함을 깊이 느끼며, 더 겸손해질 수 박에 없었다.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괜찮을 거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으며, 어떠한 일을 충분히 겪어 공감하기 전까지 섣부른 위로 역시 함부로 할 수 없다. 그저 충분히 지금 이 순간을 감사로 살아내며, 미래 앞에 겸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음을 배워간다. 


좋은 날, 일상을 감사하게 여기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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