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 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
"뭔 가를 해야만 해! "
여행 중에도 이런 의무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미술관을 돌아다니다 보면 사진 찍기 바쁜 사람들로 붐빈다. 사진이야 인터넷에 찾아보면 무궁한데, 눈으로 담아가기도 모자란 시간에 카메라 때문에 더 정신이 없다. 작품을 감상하며, 느껴지는 그 감동을 담아가도 아쉬운 데 말이다.
길을 걷다가도 구글 지도를 손에 못 놓는 나를 보며, 거리의 풍경과 분위기를 놓치는 거 때문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나중에는 그냥 길을 잃어버리면 어쩔 테냐 그 안에서 또 거리를 느끼면 되는 거지 하는 맘으로 다녀버렸다. 꼬불꼬불한 길을 다니며 미로 속을 걸어가는 듯한 느낌으로 걷는다.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길을 잃어버리면 어쩔 테냐. 다른 길을 찾아 길을 걷는 과정을 즐기며 또 걸어가면 될 것들. 그 길이 주는 또 다른 맛이 있을 것이다.
뜨거운 태양의 나라, 스페인은 열정만큼이나 더워서 한낮에 땡볕을 걷다가는 쓰러질 것만 같다. 어디 가려고 하면 상점 문도 닫아버리고. 그 시간 같이 집으로 돌아가 씨에스타를 즐기며, 꿀잠에 빠져보는 것. 스페인의 문화에 함께 녹아드는 것이 그곳을 이해하고 느끼기 좋다.
여행 속에서 더 녹아들며, 여정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여행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그 가운데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새로운 너를 발견한다. 무언가를 꼭 하지 않아도 좋다. 매일매일이 쌓여가는 하루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하루가 의미 없지 않음을 배운다. 하루의 순간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할 때가 있는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이 마음을 잊지 않기로 다짐해본다. 무언가 하고 있지 않으면, 조급함으로 초조함으로 압박하기 시작한다. 이런 분위기에 이끌려 더 이상 무턱 대며 끌려다니고 싶지 않다.
당신과 나의 가치는 그 자체로 충분하니,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사진 찍기 바빠서 정작 작품을 놓쳐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