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지나고 나면 깨닫는 것들

회사를 너무 사랑하면 회사원에게 생기는 일들

이번화는 조금은 보통의 회사원 분들에게 공감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제목에서 말한 바와 같이 회사원이 회사를 너무 사랑(?)할 때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회사라는 곳은 평소에 공기와도 같이 내 생활의 일부로 당연하게 있는 것이라 월급도 당연한 것일 뿐더러, 오히려 다른 회사와 비교하거나 같은 상대적으로 편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거나, 내가 일하는 것에 비해 나를 대우해주지 않는 것 같을 때는 불만이 쌓이는 곳이라 사랑하는 관계가 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S사를 퇴사하기 전까지 1.5년 정도의 시간을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시간을 보냈는데 회사와 동료들이 다 함께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정에는 거의 신경쓰지 않고 업무에만 몰두한 시간이었다.

결론적으로 회사와 회사원 측면에서 보면 진행하고자 한 사업 계획을 진척 및 달성했고, 개인적으로는 커리어에 대단한 발전이 있었던 시간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놓치고, 건강도 많이 잃었던 시기였다. 온전한 평가는 더 먼 훗날에 할 수 밖에 없겠지만, 지금으로서는 40대 초중반을 살고 있는 아저씨로서는 여전히 삶에 있어 가슴 뛰고, 즐거웠던 순간을 꼽자면 그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회사를 사랑한 회사원의 1.5년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정신없이 바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1.5년간 하루일과는 굉장히 단조로웠는데, 기상 - 출근 - 업무 - 퇴근 - 수면 - 기상 의 반복이었다.

회사원들 다 그렇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게 사이 사이 시간에 운동을 한다던지, 자기개발을 한다던지는 전혀 없이 잠만 집에서 자고 출근해서 일하고, 야근 후 퇴근해서 씻고 잠들고, 다시 일어나자 마자 출근한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해내야 할 업무도 많았다는 뜻인데, 수행했던 업무에 대해서는 이전 화에서 몇차례 이야기 한 것들 이외에도 많은 일들이 해내야만 했다.

특히 23년에는 경영관리그룹의 많은 사람들이 이동이 있었고, 회계, 법무, IR, 구매 등이 같은 그룹에 팀으로 존재했지만 각 팀의 업무가 연결은 되어있을지언정, 누군가 대신해 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이동으로 인해 담당이 비는 순간에는 직접 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관리자로서 가지고 있던 책임감 중 한가지가 팀원들이 본인 커리어에 도움 되지 않는, 즉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임시로 땜빵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비는 일을 그룹내에서 나눠서 하는것을 원치 않았던 성향도 한몫 했던 것 같다.

그렇게 그룹 전체 관리, IPO/투자 직접 담당, 이동으로 인한 임시 업무 및 해당 담당 신규 채용을 위한 면접 등으로 가득찬 하루를 보낼 수 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 경영관리 특성상 누구일인지 모를 회사 내부 업무도 넘어오고, 대표나 이사회에서 확인하고자하는 자료도 작성해야 했으니 늘 야근, 주말 출근이 이어질 수 밖에 없던 나날이었다.


그럼에도 사랑하니까 괜찮았다.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기꺼이 새로운 일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간 구매 업무로 경력을 쌓고, 경영관리를 본격적으로는 처음하는 나를 믿어준 대표와 이사회, 구원투수 같이 등판한 나를 격려하고 어떻게든 함께 해내기 위해 도와준 다른 모든 부서 리더들과 시니어들, 무엇보다 부족한 점이 있어도 믿고 함께해주며 어떻게든 도와주고 걱정과 격렬를 해준 같은 그룹원들이 있었고, 서로를 사랑했던 시간이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오히려 그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스스로 채찍질해나가며, 함께 성공의 끝에서 과실을 누리자는 마음이 자발적으로 “으쌰으쌰”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해보자는 마음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성과들

IPO를 위한 각종 요건을 CFO가 없어서 못할 줄 알았지만, 주관사와 투자사 분들의 도움 그리고 그룹원들의 헌신, 개발팀의 노력으로 기술평가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재무모델링에서는 적시 현황을 영업과 PM이 공유해준 덕분에 매출을 예측할 수 있었고, 전사 모든 부서 직원들이 요청한대로 기안을 작성해주어 비용을 명확히 측정하고 예측했으며, 인사에서는 인건비에 forecasting까지 제대로 해내어 자료의 건전성을 높여주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데일리 모니터링해준 그룹원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과거와 현재를 분석할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다.

회계팀장이 11월에 퇴사할 때는 다음 해 초로 예정된 지정 감사를 해낼 수 없을 줄 알았지만, 남은 직원들과 외부회계법인 PA를 받으며 새로운 회계팀장을 빠르게 채용하여 해낼 수 있었고, ERP 도입은 담당자들 이동으로 인해 내부에 기능별 부재가 있었으나 여러사람들이 조금씩 일을 더 맡으면서 함께 메꿔나가며 성공적으로 도입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감사함에 더해 개인적으로는 힘들지만 필요한 일들을 해내면서 커리어를 피봇해내고 있다는 기쁨이 힘듦을 잊게 해준 시간이었다.


그러나 잃은 것들

회사를 사랑한 시간만큼, 가족들에게는 충실하지 못한 시간일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러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지 못한 것이 지나고 보니 후회된다. 당시에는 모든 가장들이 그러하든 “이게 다 우리 가족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거야” 로 퉁쳤으니까…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등교는 무사히 해서 교실까지 찾아갈지, 친구들과 관계는 괜찮을지, 하교 이후에는 무엇을 시킬지, 양치질 잘 못해서 영구치가 썩지 않을지, 눈은 잘 보이는지, 학업성취가 어떤지 등등 학부모가 되면 신경 쓸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닌데, 그 모든 일을 와이프가 혼자 해야했고, 나는 집에 와서 잠만 자고 나가는 사람이었다. 아이가 피아노 콩쿨에서 상을 탈 정도로 피아노에 열심이었는데, 나는 집에서 아이가 피아노 치는것을 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집에 있는 피아노 역시 어린 시절에 취미 개발로 다들 한대 씩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업무로 인한 불규칙한 식사와 술자리 그리고 운동 부족으로 건강 역시 많이 잃었고, 퇴사 전쯤에는 내장쪽 문제로 인해 용종도 다수 제거하고, 혈X은 당연히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또다시 그런 순간들이 온다면

가슴 뛰고 즐거웠던 시간이었다는 표현을 서두에 했지만, 다시 그 순간이 온다면 기쁘게 최선을 다해 또다시 일하겠지만 다른 소중한 것을 희생하가며 일을 대하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가 살면서 그땐 정말 중요했었고 급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지나고 보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어도 되는 것을 알 되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에는 그 시절에 회사와 동료를 너무 사랑했던 것이, 그래서 가정에 상대적으로 충실하지 못했던 것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어도 됨을 지나고 깨달았는데 좀 덜 열정적이었다면 더 길게 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임시로 땜빵하는 것이 팀원의 커리어에 도움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도 실은 해당 직원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해당 업무를 버리고 다른 일을 할까봐 내가 걱정한 것에 가까웠고, 안해본 일을 떠맡아서 직접 관리했던 것도 적임자를 채용하는데 집중했으면, 더 전문성있게 빠르게 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회사와 동료를 사랑한다’는 마음이 경계 없이 확장되면서, 스스로의 역할을 무한대로 늘려버린 셈이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착각과 책임감 사이에서 스스로를 소모시켰으며, 회사 역시 한동안은 그 헌신을 즐겼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직은 언제든 대체 가능성을 찾아간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회사를 사랑하는 건 분명 소중한 태도다. 하지만 사랑이 균형을 잃으면, 회사원은 스스로의 경계를 잊고 삶 전체를 회사에 투자하게 되며 그 대가가 커리어의 성취와 보람이라면, 반대편 저울에는 건강,가족,삶의 여유가 올라간다.

이제는 알 것 같다. 회사에 대한 애정과 헌신이 오래 지속되려면, 스스로를 지키는 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 선을 넘지 않고도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고, 오히려 그래야 더 오래, 더 멀리 함께 갈 수 있다. 그래서 회사를 사랑했던 S사에서의 마지막 1.5년은 내게 가장 뜨겁고도, 동시에 가장 값비싼 배움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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