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의 진로고민
벌써 전업주부가 된지 만 7년이 되어간다. 쌍둥이를 출산하며 퇴사를 했다. 이제는 회사를 다녔던 3년이 넘는 시간보다 회사를 다니지 않은 시간이 두 배가 넘는다. 이렇게까지 오래 쉴 줄은 몰랐는데… 물론 마냥 쉬기만 한 건 아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데 전념했고, 나름대로 취미생활도 꾸준히 하며 생산적으로 지내려고 애써왔다. 아이들이 좀 크니까 예전만큼 손이 가지는 않고, 남편의 수입으로도 우리 집은 굴러간다. 하지만 나는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생활비에서 내 물건, 내 옷 사는 게 눈치가 보여서 돈을 벌고 싶었지만, 지금은 내 자존감과 가족들에게 떳떳하기 위해 돈이 벌고 싶다. 우울감이 세게 찾아올 때는 내가 남편이 번 돈만 빼먹고 사는 기생충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엄마는 뭐하는 사람이에요?“
이 질문을 아이들에게 들었을 때, 나의 철렁이던 심장과 머뭇거림이 아직도 기억난다.
“으응? 엄마는 너희 키우고~ 집안일도 하고~ 그림도 그려서 사람들한테 팔고~ 하는거 많지!”
당당한듯 이야기했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돈을 거의 벌지 못하니까.
이따금씩 직업을 적어야 하는 일이 생기는에, 거기에 ‘전업주부’라고 왜 이렇게 적기가 싫은지… 사람이
왜 이렇게 작아지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적을 게 따로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SNS계정을 키워보려고 애쓰기도 했고, 부업으로 돈을 벌어보려고 시도해보기는 했지만… 간절하지 않아서일까? 노력이 부족했던 것일까? 막상 ‘이렇다’ 할 성과-특히 경제적인 부분에서-가 없으니까 점점 내가 시간을 헛되이 낭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것 저것 쑤셔보며 깔짝대기만 할 뿐인 나는, 정말 다른 직업인이 되고 싶은 게 맞나? 돈이 벌고 싶기는 한걸까? 이 정도 노력밖에 안 하면서? 나는 그저 ‘지망생’이길 원하는 게 아닐까? 나 자신에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계속 인스타에 만화를 올리고 있지만, 드문 드문 올리니 팔로워 수는 늘 생각을 하지 않고 요지부동. 당연히 광고는 들어오지 않고, 그러니 수입은 없고. 계정을 겨우겨우 가늘고 길게 유지하는 수준이다. 그럼 나는 과연 ‘만화가’라고 불릴 수 있는걸까?
나만의 그림과 글을 쓰고 싶어서 브런치 작가 신청해서 합격을 했다. 하지만 창작물을 꾸준히 올리고 있지 못하다. 그러니 당연히 출간은 꿈도 못 꾸고 있다. 나는 ‘작가’라고 불릴 자격이 있을까?
스마트스토어에서 내가 제작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나름 꾸준히 판매가 되고 있지만, 교육기관에서도 종종 주문이 들어오지만, 용돈 수준도 안 되는 적은 돈을 벌고 있는 나는 ‘1인 사업가’라고 불릴 수 있는걸까? ‘직업’이라고 말할 수 있을만한 상태가 되려면 얼마를 벌어야 할까?
뭐라도 지금보다 더 열심히, 더 전략적으로 해서 성과를 내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문제는 내게는 ‘더 열심히‘ 할 의욕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거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한 그 때부터 생긴 혼자만의 자유시간에는 ’생산적인 것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고, 지금도 조금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그 강박은 남아있다. 병에 걸려 골골대고 있는 상태가 아니면 낮잠은 고사하고 웬만하면 누워있지도 않으려 했고, 누워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면 어김없이 죄책감이 찾아왔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그렇다고 의욕만큼 몸이 부지런히 움직여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꾸역꾸역 4년여 동안 지내다보니 정신적 번아웃이 온 것 같았다. 가끔(아니 자주?) 지칠 때는 그냥 마음 편하게 아무것도 할 생각 하지 말고 전업주부 일에나 전념하면서 만족하고 살까 싶기도 했다. 노력도 안 하고 기대도 안 하면 실망할 일도 없으니까 그러나 알고 있다. 그렇게 살면 분명 후회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무언가를 이뤄내야만 나를 어떤 직업으로서 부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돈이든 뭐든 어떤 기준에 도달해야지만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의미를 가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준은 실체가 없다.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다. 그러니 끝없이 나를 남들과 비교하며 정신적으로 밀어붙이게 된 게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니, 순서가 틀렸다는 생각이 든다. 엄청난 성과를 내서 뭐가 되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뭐라고 부를지 정해야 뭐가 될 수 있다. 나라도 나를 믿어줘야지. 지금부터 꾸준히 하면 ‘뭐라도’ 되겠지. 뭐라도
되기 위해 오늘도 나는 책상에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