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가 되지 않아도 돼

이 시대의 여자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림책

by 함박

옛날과 달리 지금은 여자가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중세시대만 해도 여자가 직업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유일한 살 길은 부자집에 시집가는 것 뿐이었다. 여성의 이름으로 책을 내면 팔리지 않을까봐 남성처럼 보이는 필명을 사용했던 이야기를 떠올리면, 지금은 여성의 지위가 많이 올라갔고, 우리의 어머니 세대보다도 훨씬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시대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는 여전히 가부장제에 길들여진 어떤 순종 같은 것이 남아 있는 듯하다. 지금 내가 이렇게 전업주부로, 전형적인 '엄마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때로는 억울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스스로가 비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저런 생각을 안고 딸들을 키우다 보니, 마음이 더 복잡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글에서는 딸을 키우는 부모라면 한 번쯤 꼭 함 께 읽어보면 좋을 것 같은 그림책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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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이 봉지 공주』

글 로버트 문치 | 그림 마이클 마르첸코 | 비룡소(1998)


보통 옛날 이야기를 보면 공주가 곤경에 처하면 왕자가 구해주면서 이야기가 마무리 되는데, 이 책은 정 반대의 이야기다. 용에게 납치된 왕자를 공주가 스스로 구해낸다. 심지어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고, 오히려 공주를 깎아내리는 말을 하는 왕자에게 통쾌한 이별을 선언한다. 이 책은 우리가 그려온 공주의 이미지에 대해 묻는다. 고정관념을 깨는 그 반전이, 오래도록 유쾌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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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메리는 입고 싶은 옷을 입어요』

글·그림 키스 네글리 | 원더박스(2019)


옛날에 여자가 입는 바지라는 것은 없던 시절, 당당하게 바지를 입었던 '메리 에드워즈 워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그림책이다. 시대의 관습에 용감하게 도전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여자 옷', '남자 옷'이라는 고정관념에 질문을 던진다. 다양한 공주 이야기 속에서 소위 '여자다움'에 집착하는 아이의 모습이 걱정된다면, 이 책을 같이 읽어보면서 '나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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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올리비아는 공주가 싫어!』

글·그림 이안 팔코너 | 주니어김영사(2012)


'올리비아'라는 귀엽고 당찬 돼지 캐릭터가 주인공인 그림책이다. 인기가 많은지, 올리비아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책 시리즈가 꽤 여러 권이 나와 있는데, 이 책은 특히 '공주'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볍고 유쾌하게 비튼다.

‘넌 언제나 나의 작은 공주님’이라고 말하는 아빠에게 "모든 아이가 공주가 된다면 공주는 더 이상 특별한 게 아니에요"라고 하는 올리비아. 친구들은 모두 공주가 되고 싶어하지만, 올리비아는 한참 고민한 끝에 '여왕'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이 책은 '모두가 좋아하니까 나도'라는 선택이 아닌, '나는 뭘 좋아하지?'라는 질문을 던져보게 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여자는 치마', '분홍색은 여자 것' 같은 고정관념을 심어주지 않으려고 나름 신경을 썼다. 하지만 어느 순간, 여자아이가 공주를 좋아하는 건 단순히 사회가 주입한 이미지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의 딸들은 공룡이나 자동차 장난감은 아무리 사줘도 거들떠보지 않았으며, 예쁜 악세사리를 보면 마치 반짝이는 보석을 발견한 까마귀들처럼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어쩌면 이런 취향은 어느 정도 유전자에 새겨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공주처럼 행동하는 것이 언제나 바람직하다고 여기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반대로, 너무 '중성적인 것'만을 고집하는 것도 또 다른 억압일 수 있다. 중요한 건, 무엇이든 자기답게 즐기고 선택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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