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 섹터 철도 네 번째 이야기
유동인구가 적은 곳에서 운행하는 제3 섹터 철도는 많은 잠재 승객들에게 눈에 띄게 해야만 하는 살아남을 수 있는 숙명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수많은 메이저 급 철도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제3 섹터 철도는 지금도 최대한 다른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제3 섹터 철도는 지역과 상생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그 일환으로 지역 캐릭터와 조합을 이룬 열차가 탄생했다. 열차 전체가 하나의 캐릭터로 둘러싸인 열차. 규슈 남부지역을 운행하고 있는 히사츠오렌지 철도의 구마몬 열차다. 이 열차는 외관부터 남다른 모습으로 같은 히사츠오렌지 철도 열차 내에서도 눈길이 가는 열차다.
히사츠오렌지 철도의 오렌지 색을 강조한 열차와 구마몬 캐릭터를 열차에 그대로 의인화시킨 열차 두 종류를 만나볼 수 있었는데, 그 가운데 첫 번째 열차의 경우 외관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역시 남다른 모습으로 승객의 뇌리에 깊숙이 박힐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일본에는 워낙 다양한 래핑으로 화려하게 꾸며놓은 열차가 많아서 외관이 화려한 구마몬 열차가 그렇게 튀어 보이는 열차는 아니다. 그러나 열차를 타보면 왜 이 열차가 정말 튀는 열차인지 실감할 수 있다. 우선 열차 내부도 외부 못지않게 구마몬으로 장식되어 있는 열차를 마주하게 되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한 좌석을 차지하고 있는 구마몬 인형이 아닐까 싶다.
도심을 운행하는 열차에서 좌석은 종착역에서나 비어갈 수 있을 정도로 매번 승객들의 치열한 눈치 싸움이 계속되는 장소지만, 열차 1량도 가득 채우기 힘든 제3 섹터 철도에서는 매번 승객이 차지한 좌석보다 비어있는 좌석이 더 많은 경우가 많다. 구마몬 열차는 자칫 공허할 수 있는 이런 공간을 구마몬 인형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이렇게 구마몬 인형이 차지한 공간은 열차에 탑승한 승객에게 자연스러운 포토존을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누구나 자유롭게 구마몬 인형과 사진을 담을 수 있는 이유는 애석하지만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이 그만큼 없다는 것을 대변해주고 있다. 하지만 웃고 있는 구마몬 인형의 모습처럼 언젠가 제3 섹터 철도도 많은 승객으로 웃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지금껏 운행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한편 지역과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은 다른 방법으로도 보여주고 있다. 이번에는 열차의 기본적인 모습은 그대로 두되, 액자나 벽보를 붙여서 열차를 좀 더 분위기 있게 조성하였다. 움직이는 갤러리를 보는 것처럼 지역을 감상하면서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는 일석이조 효과를 누리도록 한 점이 인상적이다. 액자는 언제든 새로운 것으로 대체할 수 있어서 큰 부담 없이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구마가와 철도는 열차 내부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이전의 열차에서 볼 수 없었던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테이블과 좌석을 갖춰놓은 배치에, 나무로 만든 외벽과 바닥이 마치 카페에 있는 것 같다. 특히 하트 모양의 손잡이는 이 열차의 숨은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한 장면이다.
일본 내에서도 추운 편에 속하는 지역을 운행하고 있는 산리쿠 철도는 열차 내부에 고타츠를 담아내기에 이른다. 고타츠는 겨울철 일본 가정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난방장치인데, 탁자에 이불을 덮어놓고, 그 안에 난방장치를 켜서 따뜻하게 하는 일종의 보일러와 같은 시설이다.
매서운 추위 속에 외풍까지 심한 열차 내부에서, 모든 좌석을 따뜻하게 하기에는 분명 난방비가 상당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열차 특성상 출입문을 자주 열고 닫아야 하기 때문에 실컷 따뜻하게 해 놓아도 금세 차가운 바람이 열차 내부를 습격한다. 이런 상황에서 마치 집에 들어온 것처럼 따뜻한 고타츠에 앉아있으면 열차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편안할 것이다.
이 역시 한 명이라도 더 태울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도시 철도에서는 사치스러운 시설이다. 하지만 한 명이 아쉬운 제3 섹터 철도에서는 이렇게 눈길을 끌게 만들어서라도 한 명의 승객을 더 유치하는 것이 그 어떤 철도 회사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좀 더 과감하게 열차 내부를 개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 나라에서 딱 4개의 역만 가질 수 있는 최극단 역 지위. 그 지위를 가진 노선 역시 최극단 역과 마찬가지로 4개의 노선만 가질 수 있다. 제3 섹터 철도지만 일본 최서단 역을 보유하고 있는 마츠우라 철도는 이런 상징성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노선이다.
마츠우라 철도의 시작인 사세보역의 입구는 다음과 같이 작게나마 일본 최서단 철도라고 계단에 표기하고 있다. 하지만 사세보역은 그저 시작일 뿐, 실제 최서단 역인 타비라히라도구치역을 가면 그 어떤 역보다 최서단이라는 표시를 많이 해놓았다. 사세보역 역시 JR 기준으로는 최서단 역으로, 여기서도 JR 노선 최서단 역이라는 표시를 볼 수 있다. 이를 기념하는 비석 또한 사세보역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원래는 여객철도를 위한 노선이 아니었지만, 여객 철도화가 되어 활용 중인 노선도 찾아볼 수 있다. 한때 석탄 운송이 성행할 때 철도 수송도 상당히 번창했는데,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철도가 헤이세이치쿠호 철도다. 우리나라도 태백선이나 충북선 등 석탄을 운반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통을 한 철도가 많은데, 일본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런 석탄 운반용 철도가 성행했다.
그러나 석탄 산업의 쇠퇴로 활용도가 많이 떨어져 버린 철도를 없애기보다 그 지역 주민들의 운송 수단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열차 편성이 긴 석탄 수송 열차를 수용하기 위해서 승강장도, 선로 시설도 대규모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노선은 지금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비록 이곳을 운행하는 열차는 1량 편성의 짧은 열차뿐이지만 제3 섹터 철도에서 보기 드문 복선철도(신칸센 개통으로 JR선이 제3 섹터 철도화 된 노선은 예외)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것도 진귀한 풍경이다.
원래는 없었던 시설이지만 여객철도로 전환한 이후 새롭게 만든 시설도 있다. 복선철도가 이어지고 있는 환경에서 마치 간이역인 듯 최소한의 시설만 갖춘 역을 보면 이런 부조화도 또 없을 것만 같다. 신칸센 개통과 함께 제3 섹터 철도로 전환한 구간은 원래 열차가 많이 다니던 간선철도 구간이어서 전철화 공사도 진행된 상태지만, 석탄 수송이 목적이었던 헤이세이치쿠호 철도는 복선철도지만 전철화 공사도 진행되지 않은 채 개통 초기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열차만 계속 새로운 차량으로 바뀌고 있다.
최근 기상 이변으로 인해 많은 수해를 입은 규슈 내륙 지역은 주민들의 발인 철도 교통도 그 피해를 피할 수 없었다. JR은 물론 제3 섹터 철도까지, 규슈 내륙 지역을 운행하는 철도는 운행 중단의 시련을 겪었거나, 지금도 겪고 있는 중이다.
시간이 오래 흘렀음에도 만만찮은 복구 비용으로 인해 반쪽 철도가 되어버린 미나미아소 철도. 그나마 운행이 가능한 구간은 그나마 유동인구의 유입이 있는 JR과의 환승도 불가능해서 반강제로 완전히 독립된 노선이 되어버렸다. 이처럼 접근성도 극도로 떨어져 버린 미나미아소 철도는 이대로 운행을 포기해버릴 수도 있지만, 1%의 희망만을 가지고도 그 어떤 철도보다 열심히 운행을 이어나가고 있다.
여기에는 창문이 개방된 토롯코 열차는 물론, 앞서 언급한 구마몬 열차보다도 더 화려한 래핑열차를 투입해서 철도를 좋아하는 마니아층과 지역주민들의 관심을 끄는데 노력하고 있다. 유채꽃과 벚꽃이 만개한 봄에는 이 열차를 담고자 멀리서도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니, 최악의 상황에서도 어느 정도 성과가 있음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