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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방랑객 Oct 29. 2019

신칸센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는 노선

츠가루선(津軽線) 두 번째 이야기

  한때 홋카이도의 관문으로 많은 열차들을 받았던 츠가루선은 그 역할이 시작된 지 불과 30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원래 일본 혼슈섬에서 홋카이도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철도가 없었다. 그곳을 대체한 것은 다름 아닌 배였다. 비록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어도 바다를 가로지를 수 있는 배가 있었기에 혼슈와 홋카이도는 단절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바다는 그렇게 쉽게 길을 내어주지 않는다. 기상이 악화되는 시기에 홋카이도는 진짜 사방팔방이 다 막혀버린 섬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하루 이틀은 괜찮지만 그 기간이 길어지면 고립이 되어서 물자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일본에서 한정판이 유독 많은 이유도 이런 섬나라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반영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철도가 끊긴 홋카이도를 이어주던 세이칸 연락선.


  배가 가진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무려 50km가 넘는 해저터널을 건설하기 시작한 일본. 그 터널이 바로 세이칸 터널이다. 이 세이칸 터널이 개통하면서 츠가루선도 큰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홋카이도를 드나드는 열차가 세이칸 터널을 지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했던 철도가 바로 츠가루선이기 때문이다.

  그 덕에 츠가루선은 홋카이도로 이어지는 관문역할을 하면서 그 역할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물론 츠가루선의 모든 구간에 걸쳐서 이 열차들의 혜택을 본 것은 아니다. 세이칸 터널과 접속이 이루어지는 구간까지만 열차들의 빈도가 높을 뿐, 그 외 구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세이칸 터널과 접속이 이루어지는 나카오구니역. 이 역을 기점으로 츠가루선의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 경계는 나카오구니역으로, 이 역을 기준으로 전기 설비가 갖추어진 전철구간과 그것을 볼 수 없는 비전철구간으로 나뉘기 때문이다. 전철구간은 홋카이도를 드나드는 열차로 항상 붐벼왔다면, 비전철구간은 간간히 열차를 구경할 수 있는 영락없는 시골 철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경계도 모호해져서 수송을 담당하던 여객열차는 더 이상 세이칸 터널을 통과하지 않게 되었고, 그 결과 일부 구간이라도 혜택을 보던 츠가루선의 전철구간도 비전철구간처럼 한적한 풍경으로 바뀌어버렸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역은 나카오구니역의 다음 역인 가니타역으로, 원래는 특급열차가 정차하던 역에서 이제는 보통열차만 다니는 평범한 역으로 위상이 많이 추락해버렸다.


보통열차만 볼 수 있게 된 가니타역. 넓은 승강장이 이 역의 높았던 위상을 대변해준다.


  그래도 이 가니타역은 특급열차 정차의 영향으로 인근 역에 비해 승강장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서 그런지 열차들의 중간 거점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츠가루선 가운데 규모가 큰 아오모리역을 제외하고 정차하고 있는 디젤열차와 전동열차를 한 번에 담을 수 있는 역은 가니타역뿐이다.


여객열차의 빈자리가 허전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해주는 화물열차.


  한편 츠가루선은 이제 여객열차보다 화물열차를 더 많이 볼 수 있는 노선으로 바뀌었는데, 세이칸 터널은 신칸센뿐만 아니라 이 화물열차도 통행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장면이다. 그렇게 길어 보였던 승강장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길게 달고 있는 화물열차로 인해 안 그래도 짧아 보이는 여객열차가 더 짧게 느껴진다.

  상대적인 것이 얼마나 큰 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바로 이런 모습이다. 츠가루선의 열차들은 다른 시골 철도에 비해 긴 편성으로 운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짧게 느껴지니 말이다. 주로 2량 편성으로 운행 중인 츠가루선은 비교 대상 열차가 화물열차라는 이유 때문에 다른 시골 철도의 열차들처럼 존재감이 미미할 수밖에 없다.


신칸센과 나란히 이어지는 츠가루선.


  츠가루선의 또 다른 변화된 풍경은 바로 신칸센과 나란히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드넓은 대지에 마치 제자리걸음 하듯 똑같은 풍경 속을 헤쳐나가는 츠가루선. 그러나 열차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속도의 최대치로 이 드넓은 대지를 달리고 있다. 그 밋밋함을 조금이라도 달래주기 위해서 신칸센이 멀찌기서 나란히 달려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두 열차의 속도 차이는 확연해서, 나란히 달리는 구간에서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운행시간 차이를 보인다.


츠가루선의 교행 장면.


  그 차이를 벌어지게 하는 요인 중 하나는 단선철도의 묘미인 교행 구간이다. 다른 노선은 여객열차 간 교행이 많지만 츠가루선은 여객열차와 화물열차의 교행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상당히 긴 화물열차가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교행 구간은 승강장을 한참 초과해서도 합류가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주로 화물열차가 여객열차를 위해 먼저 와서 정차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츠가루선은 그런 일반적인 모습도 벗어나서 오히려 여객열차가 화물열차를 기다리는 특이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화물열차가 정차 중인 여객열차를 통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노선의 주인이 화물로 바뀐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시간만 잘 맞추면 대지의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츠가루선.


  츠가루선은 거의 지구 경도와 평행하게 내려오기 때문에 서쪽 방향에는 일몰을 볼 수가 있다. 제법 긴 구간에 걸쳐서 이런 모습이 이어지기에 슬로비디오를 보는 듯 자연의 웅장한 모습을 구경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같은 시간, 속도가 빠른 신칸센에서는 저 모습을 여유롭게 감상할 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에 츠가루선에서의 느낌과 많이 차이가 난다.


아오모리역에 가까워지면 시골 철도의 이미지는 완전히 사라진다.


  츠가루선은 끝과 끝이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아오모리역으로 가면 갈수록 도시의 빼곡한 철도가 이어지면서 시골 철도라는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어진다. 물론 열차 빈도는 신칸센 개통과 함께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열차들이 아오모리역을 드나들고 있다. 그에 반해 반대편의 민마야역은 이름조차 생소할 정도로 알려지지 않은 역이며 동네 주민이 아니면 외지인을 찾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왕래가 드물다.

  츠가루선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반대편 구간을 다음 글에서 계속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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