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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방랑객 Nov 02. 2019

츠가루 반도 최북단을 이어주는 노선

츠가루선(津軽線) 세 번째 이야기

  츠가루 반도를 종단하는 츠가루선은 열차 빈도에 비하면 열차편성이 긴 편이다. 끝을 향해 달리는 시골 철도는 대부분 1량 편성으로 운행하고 있다. 그 1량 편성임에도 불구하고 좌석을 가득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 열차 빈도가 더더욱 줄어들게 되었고, 열차 탑승이 힘들어진 승객들이 다른 교통수단을 선택하면서 열차 운행은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 이런 악순환의 반복으로 결국 노선 폐지까지 이어지고, 그렇게 시골 철도는 또 지도상에서 사라지는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어진다.

  그런 측면에서 바라볼 때 츠가루선의 2량 편성은 시골 철도라기에는 상당히 규모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노선의 역들은 대부분 무인역이지만 차내 승무원이 있어서 흔히 볼 수 있는 정리권도 발행하지 않는다. 열차에 오른 승객들의 검표를 진행하는 승무원의 모습에서 영상에서 보던 우리나라 철도의 과거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불과 10여 년 전 복선 전철화 공사가 진행되기 전 경전선에서 실제로 차내 검표가 이루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츠가루선 열차.


  2량 편성으로 다니고는 있지만 열차에 승객을 가득 채우는 모습을 보기는 힘들었다. 어쩌면 승객이 적기 때문에 승무원이 누가 탑승하고 누가 내리는지 빨리 파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열차 내부는 고정식 좌석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지금 열차에서 보기 어려운 90도 등받이를 가진 의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의자들이 워낙 좋아지다 보니 츠가루선 열차의 이 등받이가 신선한 문화충격으로 와 닿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열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푹신푹신한 쿠션감에 팔걸이까지 갖춘 이 좌석이 소파보다 더 편하게 느꼈으리라. 그만큼 사람은 자꾸 편한 것만 찾고, 또 금세 익숙해져 버려서 예전 것을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다.


승강장과 마을의 경계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인 츠가루선의 역들.


  한편 츠가루선의 역은 마치 가정집을 보는 듯한 역사(驛舍)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예전에는 꽤 많은 승객들이 이 노선을 이용했음을 추측해볼 수 있는 장면이다. 비록 지금은 무인역으로 바뀌어서 그 누구도 이 역사에 상주하고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방치해놓은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동네 주민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츠가루선의 얼굴인 역사를 자기 집과 같은 마음으로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과 마을의 경계가 허물어졌음은 주변에 설치된 울타리가 말해주고 있었다. 그 누구도 쉽게 넘나들 수 있는 울타리는 이미 본연의 역할을 상실한 지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몇 없는 승객을 위해 열차 시간에 맞춰 다니고 있는 마을버스.


  츠가루선은 비록 하루에 다섯 편의 열차가 왕복으로 운행하고 있지만 이 열차의 운행 시간에 맞춰서 마을버스까지 다닐 정도로 동네 주민들의 생활 패턴이 츠가루선 열차에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매일 반복되는 열차 운행이지만 이 열차로 인해 멈춰있는 것만 같은 마을도 같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츠가루선은 허허벌판을 달리는 것 같지만, 역이 있는 곳은 그래도 제법 큰 마을이 형성된 것을 볼 수 있다. 비록 도시공동화가 심해져서 빈집이 속출하고 있지만, 승객들이 있는 것을 보면 아직 노선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도심에는 열차 시간에 맞춰서 동네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츠가루선의 존재감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조금 걱정되는 부분은 승객 대부분이 7, 80대로 보이는 어르신들이라는 점이다. 도시공동화만큼이나 시골 철도의 영업을 어렵게 하는 것이 젊은 층의 유입이 단절되어버린 것이다. 유동인구가 점점 줄어들다 보니 철도 영업에도 미치는 영향이 점점 악화되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나마 관리가 되고 있는 역들도 과연 언제까지 저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시간이 멈춰버린 듯 너무 한적한 풍경의 연속인 츠가루선.


  그나마 역을 벗어나면 마을조차 볼 수 없는 광활한 대지의 연속이다. 이렇게 땅이 넓은데 사람들은 왜 좁은 땅에서 그렇게 아등바등 살려고만 할까? 자연은 공평하게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고 어느 곳이든 공평하게 퍼져서 서식지를 형성하고 있는데 말이다.


츠가루선의 끝인 민마야역.


  츠가루선을 끝까지 올라가면 민마야역이 나온다. 이 역에는 츠가루 반도의 최북단역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혼슈 섬의 최북단이 아닌 이유는 또 다른 반도의 시모기타 반도의 오미나토역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북단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는지 츠가루 반도의 최북단역이라는 이름으로 대신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일본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도 의미를 잘 부여해서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철도를 사랑하는 일본인들의 관심을 유발하고 찾아오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다.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시골에서 지역 활성화를 위한 지름길이 철도라는 것을 주민들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과연 이 한적함의 연속인 츠가루선에서 다시 예전과 같은 활기찬 모습을 찾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그 날을 기다리며 츠가루선은 오늘도 동일한 시간에 맞춰 운행하고 있다. 물론 열차의 움직임에 맞춰 주변 동네들도 하나 둘 똑같은 패턴으로 움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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