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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방랑객 Nov 10. 2019

보일 듯 말 듯 꼭꼭 숨어있는 노선

킷토선(吉都線) 첫 번째 이야기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은 후쿠오카가 위치하고 있는 규슈 섬이다. 일본의 큰 4개 섬 중 가장 서쪽에 위치한 이 섬은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되기 전, 과장을 덧붙여서 한국 관광객과 일본 현지인이 거의 1대 1 비율로 만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인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일본의 열차 방송을 잘 들어보면 규슈 지역 외의 지역에서는 일본어, 영어, 중국어, 한국어 순으로 안내방송이 나오는데, 유독 규슈 지역에서는 순서가 바뀌어서 일본어, 영어, 한국어, 중국어 순으로 안내방송을 많이 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인이 많이 찾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것은 규슈 북쪽이라 할 수 있는 5개 현에 한정된 이야기다.

  규슈 남쪽의 가고시마현과 미야자키현은 한국인은 물론, 외부인들을 보기가 쉽지 않은 지역. 그 가운데서 간선철도도 아니고 노선도 짧은 킷토선은 현지인들이 아니면 노선의 존재조차 알기 어려울 정도로 깊숙이 숨어있다. 킷토선은 이 노선의 시작과 끝 역인 요시마츠역과 미야코노죠역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만들어진 노선이다.

  이 노선은 킷토선이라는 이름 외에도 에비노고원선이라는 애칭이 붙은 노선인데, 고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을 보면 알겠지만, 상당히 높은 고지대로 올라가는 노선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노선이다 보니 특급열차는 기대하기도 어렵거니와, 2량 편성의 열차도 거의 볼 수 없는 그런 노선이다.


규슈 남쪽 중앙에 자리한 킷토선.


  킷토선은 규슈 남쪽 중앙을 횡단하는 짧은 노선이다. 이 노선의 양 끝으로는 간선철도인 닛포 본선과 일본인이 사랑하는 철도 중 하나인 히사츠선이 이어지고 있다. 안 그래도 인지도가 낮은 킷토선은, 닛포 본선과 히사츠선에 의해서 존재감이 더 없어져버린 것 같아 안타깝게 느껴진다.


킷토선의 시작 역이자 닛포 본선의 중간역인 미야코노죠역.


  킷토선의 시작인 미야코노죠역은 마치 동남아시아에 온 듯 가로수로 야자수가 심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서 우리나라도 이제 점점 열대성 기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보다 더 아래에 위치한 규슈 남쪽 지역은 이미 겨울에 눈 구경도 쉽지 않은 따뜻한 겨울이 시작된 지 오래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어있는 야자수는 이미 미야코노죠역보다 더 높이 뻗어있어서, 역의 규모가 아주 작게 느껴진다. 이 역이 환승역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로 작은 규모에 한 번 놀라고, 또 이 정도의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승객들로 붐빈다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어서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자동 개찰구가 없어도 아주 자연스럽게 승객들이 드나드는 미야코노죠역.


  행선지는 세 곳이지만, 열차 빈도도 뜸하고 승객도 많지 않기 때문에 도시의 그 흔한 자동 개찰구도 이곳에서는 사치처럼 느껴진다. 눈에 보이는 이 개찰구가 전부인 미야코노죠역. 이 분위기가 킷토선이 어떤 노선인지 말해주는 것 같았다.


킷토선을 운행하는 열차.


  킷토선을 운행하는 열차는 특별히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특징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노선을 달리면 열차도 그에 맞춰서 눈에 띄면 안 되는 것처럼 보였다. 비록 열차는 1량 편성이고 많은 운행이 불가능하지만, 이 열차를 기다렸던 승객들은 자신들의 일정을 모두 열차 시간에 맞춰서 열차에 올랐다.

  자주 다니지 않는 열차이기에 열차가 출발에 임박했을 때 허겁지겁 달려오는 승객을 볼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덕분에 열차는 정시 출발에 대한 걱정은 따로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킷토선 운행 열차는 행선지판이 고정되어 있다.


    킷토선을 다니는 열차는 중간 정차역에서 회송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선 전체에 걸쳐서 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열차 빈도도 낮은데 그마저도 통과하는 역이 있다면 그것은 역이 있으나마나 한 문제라서 모든 운행 중인 열차는 최대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운행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역명판이 없으면 이곳이 역인지 알 사람이 얼마나 될까?


  킷토선의 역은 거의 대부분이 무인역으로, 열차가 다니지 않으면 인적이 드물 정도로 한적하다. 특히 승강장과 마을을 나뉘는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서 정말 버스를 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많이 든다. 이 노선의 역들은 비록 상주하는 직원이 없지만 관리는 상당히 잘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지역 주민들의 세심한 손길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지역 주민들에게 있어서 역은 단순히 이동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 지역의 얼굴임을 말해주는 듯, 단 하나의 역도 동일하게 꾸며놓은 곳이 없었다. 말 그대로 그 누구의 지시도 없이 자율적으로 발 벋고 나선 결과가 아닐까 싶었다. 비록 외부 유입은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지만, 적어도 열차를 항시 이용하는 다른 지역 주민들에게 '우리 마을은 이렇다.'라고 알려주듯 말이다.


잘 꾸며놓은 역들. 그 어떤 역도 동일하게 꾸민 것을 볼 수가 없다.


  역과 마을의 담이 이렇게 허물어져 있다 보니 지역 주민들에게는 승강장이 곧 마을 광장이요, 다른 지역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이 된 것이다. 항상 같은 시간에 같은 승객들로 열차는 채워지지만, 그렇게 같은 일상의 반복으로 인해 서먹했던 서로의 관계가 친근한 관계로 발전하게 되고, 나아가 또 하나의 작은 사회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킷토선을 운행하고 있는 열차는 움직이는 사랑방이자 경로당의 역할까지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비록 행선지는 제각각이지만, 같이 있는 시간만큼은 공동체라는 동질감이 서로의 마음속으로 전달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마을에 있는 경로당도 사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그곳에 오는 사람들의 시간대는 제각각이다. 그러니까 움직이지 않는다는 차이만 있을 뿐, 킷토선 열차에서의 모습과 경로당의 모습은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아무리 사람의 손길이 닿는다고는 하더라도 인적이 드문 곳은 관리하는데 한계가 있다.


  물도 계속 흘러야 썩지 않는 듯,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이 계속해서 순환이 이루어져야 그 모습이 유지가 된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사람도 계속 유입이 되고, 또 다양한 세대가 한 곳에 지역사회를 형성해야 그 사회도 계속 일정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킷토선은 여느 시골 철도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유입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아직까지는 이 노선을 이용하는 승객들에 의해서 역 관리가 되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 관리할 수 있는 기간도 그리 길지가 않다. 가뜩이나 눈에 잘 띄지 않는 노선. 그 노선이 유지가 되려면 어떻게든 새로운 유입이 있어야겠지만, 현실이 그리 녹록지 않기 때문에 킷토선의 앞날은 사실 그렇게 밝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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